선거중립, JP는 되고 DJ는 안되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등록 2007.08.31 11:21수정 2007.08.3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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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후보자가 전직 대통령이나 원로 정치인들을 방문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선거 중립'을 부탁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회적으로 답변한 것으로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이명박: 각하께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신 만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라.
김대중: 내가 알아서 잘 판단해서 하겠다.

도대체 '선거 중립'이라는 말이 무엇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한나라당과는 다른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발언 하나 하나가 반한나라당 정서를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가 부탁한 선거 중립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다음날 이명박 후보는 또 다른 원로 정치인을 방문했다. 그가 바로 과거 박정희 정권의 핵심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3김 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이다. 정계 은퇴 이후 최근 언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었기에 잊혀졌던 존재는 이명박의 대선 행보를 통해서 다시금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번의 만남은 두 사람에게 나름대로 소중한 만남이다. 김종필 전 총재로서는 국민들에게 잊혀졌던 존재인 자신을 방문한 것에 감격할 것이고, 이명박 후보로서는 정치역학적으로 박근혜와 가까울 수밖에 없는 김종필 전 총재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득을 얻을 수 있기에 상부상조하는 만남이 된 것이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이명박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비판을 하였다. 선거 중립을 거론한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 옳은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생각이 옳다면 김종필 전 총재 역시 선거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런데 김종필 전 총재가 이명박 후보에게 한 말들은 중립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좋은 나라가 돼야 될 테니까 이렇게 뒤에 물러앉아 있는 사람이라도 걱정이 안되느냐. 너무 노골적으로는 안 했지만… 정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꼭 대승을 해서 소신껏 나라를 위해 봉사를 좀 해주고 지도를 해줘야겠다."

"나는 평생 묵묵히 내 조국에 내 나름대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면서 생활을 해 왔는데 그런 사람으로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느냐."

"세상이 어렵지 않을 때가 있느냐. 어려울수록 지도자가 지도자다운 그런 지도를 해 줘야 하는 것이다."

"쉬운 일이 없다. 쉽게들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열 몇 명씩 한 당에서 후보들이 나오는 것을 보니 과거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대통령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나라당은 무게있게 당에서 의사들을 결정하고 선택했기 때문에 옆에서 보면서 여러 느낌이 있다."

"경선 과정에서 캠프가 지나치더라. 그래도 차원이 다른 위치이니 모두 포용하라. (경선과정에서) 후보가 잘 웃고 넘기더라. 소이부답하라. 신변을 조심하고 정권교체해서 새로운 국가질서를 만들어 달라."

이상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이명박 후보자에게 한 덕담들은 이명박 후보자가 꼭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라는 덕담이 주된 내용이다. 정치에 대한 조언과 대선 승리에 대한 바램이 적절히 조화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는 마지막에 "말씀 많이 해 달라"고 자신을 지원해 줄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했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부려먹어 달라"는 말로 화답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선거 중립을 부탁한 이명박 후보가 생각하는 선거 중립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 이외에 다른 후보를 지지하지 말라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어차피 정치판에서 완전한 중립은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을 이야기하였다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도 동일하고 일관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자의 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은 선거 중립적인 모습이 아니고, 김종필 전 총재의 모습은 지극히 선거 중립적인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관점이 반대라는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다는 것이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직 언론과 국민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존재이고, 김종필 전 총재는 거의 잊혀진 존재라는 사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는 선거 중립을 지켜달라는 말 대신에 앞으로 말씀 많이 해달라는 당부, 대통령 선거에 많이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미래의 정치에서는 청산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아전인수격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이 앞장서서 이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자신을 지지하면 선거 중립이고,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 선거 중립이 아니라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통하는 사회가 정치판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전인수격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가는 세상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다.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정치인과 언론의 농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살고 있는 정치인들과 언론에 대해서 오늘을 살고 있는 국민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한겨레,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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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김종필 #김대중 #선거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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