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폐지, 바뀐 농촌 현실 담지 못해

여전히 대가족 중심 제도, 여전히 '정'에 기댄 모습 그려

등록 2007.09.02 19:11수정 2007.09.03 10:04
0
원고료로 응원
a

여전히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의 모습만을 고집하는 농촌 드라마 ⓒ KBS



1990년 9월9일 첫 방송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드디어 종영될 예정이다. 우리네 농촌 드라마의 상징으로 유일한 농촌드라마인 이 작품은 줄곧 농촌의 삶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 등을 담아왔다. 하지만 농촌사회가 점점 도시화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결국 종영이 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농촌사회를 근간으로 산업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과거 TV에서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단연 인기도 높았다. 일례로 20여 년 동안 사랑 받아온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출연진들의 교체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집필작가만 해도 여러 명이며, 그간 담은 내용 또한 상당했다. 물론 마지막 종영에 이르러 소재 고갈과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한계를 느끼며 종영되었다.

그 상대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있었고 1990년대부터 쌍두마차로서 우리 농촌 사람들의 삶을 그려왔다. 하지만 역시나 <전원일기>처럼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종영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지금 농촌드라마의 지향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증명해주는 셈이다. 즉, 현실과 비현실 속 사이에서 서성대다가 시청자들의 구미를 맞추지 못해 상징적인 역할만 수행하다,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 제도 이데올로기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1990년 시작해 세 번의 변화를 맞았다. 김상순 서승현 등이 주연으로 나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애환,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공동체 삶의 모습을 담았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네 근간은 농업사회의 틀이 무너지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러한 전통적인 삶의 모습들이 훈훈한 감동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 이후 김무생, 남능미가 주연으로 나서며 조금씩 현대화되는 농촌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때는 점차 농촌도 현대화되면서 조금씩 농민들의 삶에 변화가 오고,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가족의 모습에도 변화가 감지된 시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어느 정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백일섭, 윤미라가 등장해 만들어 가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어떠한가? 앞서 두 시기에 해당하던 때와는 또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다. 시청자들도 그러한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농촌보다는 도시 생활에 익숙하며, 사고습관, 가치관도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현대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 볼 때 역시 농민들의 모습도 과거와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가족의 모습을 주축으로 이웃 간의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농촌의 모습이 여전히 전통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고 해도 이제는 대가족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식들은 저마다 도시로 나가 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윗세대들이 그곳에 남아 그 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대가족 중심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자체부터 과거의 인물 구조에 지나치게 기대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어떠한 당위성을 가지고 우리의 사회가 그러한 전통적인 가족 제도로 회귀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면 어쩔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운 보수주의', 혹은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로의 회귀'를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그려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드라마의 에피소드는 이미 사라져버린 가족의 모습으로부터 빚어는 과정을 갈등과 화해라는 원칙을 내세워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웃 간의 모습도 여전히 ‘정’이라는 정성에 기댄 채 그것이 정석이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녀를 차별하는 내용도 많으며, 그러한 전통적인 가정을 하나의 이데올로기 마냥 그려내면서 변화된 농촌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드라마 상에서는 여전히 1980, 90년대의 농촌의 모습이 살아 있다.

a

농촌의 현실은 사라지고 감성만이 남아 공감하기 어렵다. ⓒ KBS


현실의 문제는 '나 몰라요!'

주인공들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이렇다 보니 내용적인 측면에서 역시나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위시로 삼대가 모여 사는 가족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가족들이 세대차를 극복하지 못해 벌어지는 갈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해답은 바로 순종이며, 갈등을 화해하는 방식도 전근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웃끼리 소통하는 부분에도 재차 소재가 반복되면서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이어지고 색다른 이야깃거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그저 외피만 집중하고 진정으로 농민들이 처한 현실, 농촌이 나아가야 할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결국 '상징성' 혹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은 드라마로 전락한 요인이 되고 있다.

사실 농촌이 현대화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농촌에서 살아가기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다. 거기에 FTA, 농산가격문제, 농산물의 산업화 등 현실에서는 여전히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다.

물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도 이러한 문제들의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그려내는데 보다 적극적이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자세로 그저 외피만 그려, 농민들이 그러한 문제들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농민들의 모습이 우리의 피부로 와 닿을 수 있었을까? 그것을 따진다면 '전혀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그 이유는 그러한 사회적인 문제들 혹은 농촌의 현실은 그저 주인공들의 애환을 통해 감동을 선사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러한 문제들을 깊이 있게 그려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감성적으로 흘러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결국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점차 현실의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리고, 그 안에는 여전히 구시대에서 살아가는 농민들만이 남게 되었다. 때문에 앞서 두 시기에서 담아냈던 농민들의 진한 애환 혹은 정서 등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렇다고 현실에 초점을 맞춰 다 함께 우리 농민들을 되돌아봐줄 만한 여유를 만들어 주지도 못했다.

따라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종영되는 것은 마땅한 순리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후속작으로 농촌드라마를 만들어 방송하겠다고는 하지만 출연진들이 달라진다고 해서 농촌드라마가 제대로 우리에게 작용할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변화와 현실의 문제점을 등한시하고 비슷한 소재로 재차 반복한다면 결과적으로 새로운 농촌드라마도 하나의 상징에 불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기 티뷰기자단 응모


덧붙이는 글 2기 티뷰기자단 응모
#드라마 #대추나무사랑걸렸네 #전원일기 #농촌드라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5. 5 [단독] 김건희 이름 뺀 YTN 부장 "힘있는 쪽 표적 될 필요없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