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53년 동안 '빨치산' 사랑하다 죽다

[화제의 책] 이념이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 여자, 이숙의>

등록 2007.09.04 18:27수정 2007.09.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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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격렬하게 전개된 좌우익의 이념 논쟁, 여기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좌파에 의한 우익학살, 우파에 의한 좌익 무차별 처단이란 참혹한 역사를 안고 있는 한국.


그 때문일까?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미국의 지원에 의해 우파자유주의 정부가 세워진 남한에선 '좌파' 혹은 '좌익'(또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은 '빨갱이'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단 채 무자비한 단죄의 대상이 돼왔다. 단죄의 고통은 비단 당사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연좌제'는 사회주의자의 가족들까지 서슬 푸르게 위협했다.

소설가 이문열의 아버지는 영국 유학 후 서울대에서 교원으로 일하다 월북했다. 그런 이력 탓에 젊은 날의 이문열은 공무원이 될 수도 비행기를 탈 수도 없었다. '좌익의 아들'에겐 그런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이문열의 소설과 발언에서 어렵잖게 찾을 수 있는 '좌익 혐오'의 그림자가 상당 부분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연유한 것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가 김원일과 이문구(2003년 영면)의 경우도 유사하다. 두 작가의 부친은 각각 남로당 경남도당과 충북 보령군당의 고위 간부였다. 월북하거나, 한국전쟁 당시 우익에 의해 학살된 아버지의 좌익활동 경력 탓에 두 사람을 비롯한 그들의 가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다.

그로부터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김원일은 아직 술자리에서조차 아버지의 이름을 쉬이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문구는 남한의 주류세력인 우익들에게 자신의 소설이 모나거나 뾰족해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이젠 대가(大家)라 불러도 좋을 둘의 문학은 바로 이 무서운 자기검열 속에서 만들어진 통곡의 산물이다.


불과 10~20년 전까지 남한의 상황이 이러했음에도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이념을 위해 그것도, 좌파 사회주의 이념을 위해 총을 들고 산으로 들어간 '빨치산'의 아내였음을 자랑스레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어떻게 봐야 할까?

소설보다 극적이고,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이 여자'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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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인


여기 한 여자가 있다. 1926년에 태어나 당시 여성으로선 최고 교육을 받고 국민학교 훈도(교사)로 일하던 이숙의(2000년 영면). 1946년 3·1절 기념행사에서 헌헌장부의 풍모를 지닌 좌익청년 박종근을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 결혼 6개월만에 남편을 북으로 보내고 죽는 그날까지 그 남자만을 그리워한 아내.

최근 출간된 <이 여자, 이숙의(삼인)>는 바로 이 여자, 이숙의가 자신의 삶을 조목조목 기록한 책이다. 소설보다 극적이고,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이 자서전은 역사와 이념이 한 인간에게 던져준 축복과 고난에 대한 면밀한 기록이기도 하다.

화장 안 해도 살결 곱고 입술 붉던 아리따운 스무 살 처녀 이숙의가 박종근을 처음 만난 건 해방 직후. 단박에 서로에게 매료당한 둘은 이숙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는다. 인텔리겐치아 신여성과 독립운동가 출신 좌익이론가의 결합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알뜰히 아끼던 두 사람의 행복은 짧았다. 복잡해진 남한의 상황을 피해 북한으로 간 박종근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장교로 참전했고, 전황이 어려워지자 빨치산을 조직해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가 토벌대와의 교전 중 사망한다. 월북 사회주의자의 아내인 이숙의가 당시 겪었을 냉대와 멸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남편의 사망이 확인된 후 교사로 복직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데 남은 평생을 바치겠다'던 이숙의의 희망은 자주 좌절됐다. 1959년엔 간첩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정희가 이끄는 유신정권 시절. 이씨가 꿈꾸던 '전인교육'은 실현될 수 없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했다.

1977년 외동딸 박소은이 결혼해 살고있는 독일로 갔다. 아버지의 뜨거운 피를 받았기 때문일까. 딸은 천리 먼 곳 독일에서 현지 유학생들과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통일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딸과 함께 일상의 안온함에 묻혀있던 이숙의가 자신의 삶을 글로 남기려는 몸짓을 시작한 건 1990년. 이후 그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은 대부분 '자서전'을 쓰는 데 바쳐졌다. 그리고,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7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남편의 진심을 듣던 바로 그날, 그가 있는 하늘로...

<이 여자, 이숙의>는 흔히 말하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신파조의 책들과는 거리가 멀다. 자서전에 사용된 문장은 간결하고 간명하다. 그 문장의 힘은 독자들이 싸구려 감상에 빠져들게 그냥 두지 않는다. 가장 슬픈 일을 말하면서도 스스로는 그 슬픔에 함몰되지 않는 의연한 태도가 읽힌다는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남편 박종근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1950년대의 일상을 서술하는 이숙의 기억력은 청년의 그것 못지 않다.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것이 60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젊은 날 그가 얼마나 영민한 사람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책이 가진 미덕은 또 있다.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조선인민군 장교였던 사람의 아내가 썼음에도 <이 여자, 이숙의>엔 이념적 편향이나 의도된 빨치산 미화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지켜야 할 객관성을 끝까지 견지했기 때문에 얻어진 성과이리라.

남편을 향한 애틋한 심사를 53년 한결같이 지켜온 이숙의. 그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는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 8월. 이숙의는 남편이 빨치산 사령관으로 활동할 당시 부하였던 사람 한 명을 만난다. 그는 곧 북송될 장기수 김익진. 그는 이런 이야기를 이숙의에게 들려준다.

"1951년 내가 태백산에서 받았던 마지막 명령이 바로 아주머니와 따님을 찾아서 북송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종근 사령관은 전투의 와중에도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병실에 누운 채 이 말을 전해들은 이숙의는 딸 박소은의 손을 붙들고 조용히 말했다. "얘야, 그 사람은 우리를 버린 게 아니란다, 그 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이숙의는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반 세기의 세월을 넘어 두 사람은 하늘에서 눈물바람으로 재회했을까?

이념이 아닌 '사랑에 관한' 진실된 기록

책의 서두에는 전 국회의원 정범구가 쓴 추천사가 실렸다. <이 여자, 이숙의>를 짧고도 명료하게 정의해주는 문장이 있어 아래 옮긴다.

'여전히 계속되는 분단 시대, 이 완고한 대립과 적대의 시대를 진정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구호이기보다는 구체적 개인들의 구체적 고민과 행복에 관심 갖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아닐까.'

그렇다. 영화 <애수>가 "전쟁은 결코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친 흑백의 교과서였다면, <이 여자, 이숙의>는 우리에게 "어떤 이념도 사랑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진리를 재확인시켜 주는 종요로운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여자, 이숙의> 출판기념회

일시: 2007년 9월 7일 오후 5시
장소: 연세대 알렌관 무악홀
초청인: 정범구, 김형수(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홍승권(삼인출판사 대표)
관련문의: 02)322-1845(삼인출판사)


덧붙이는 글 <이 여자, 이숙의> 출판기념회

일시: 2007년 9월 7일 오후 5시
장소: 연세대 알렌관 무악홀
초청인: 정범구, 김형수(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홍승권(삼인출판사 대표)
관련문의: 02)322-1845(삼인출판사)

이 여자, 이숙의 - 빨치산 사령관의 아내, 무명옷 입은 선생님

이숙의 지음,
삼인, 2007


#빨치산 #이 여자 이숙의 #박종근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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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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