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산사음악회
사람들 가슴엔 행복파도가 너울

낙산사는 뭇사람들의 정성과 불심의 결정체, 불심사리

등록 2007.09.10 14:13수정 2008.04.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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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저녁, 산사음악회가 열리는 낙산사에는 하늘이 이적을 보였다. 벅차오르는 기쁜 감정을 어쩌지 못해 붉어지는 눈시울처럼 무대가 되는 원통보전의 서녘하늘이 붉게 물들고 붉은 빛이 원통보전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 임윤수


하늘이 이적을 보이고 있었다. 벅차오르는 감정, 넘쳐흐르는 기쁨을 어쩌지 못해 붉게 눈언저리 물들이던 님의 모습처럼 오늘의 감동을 감출 수 없다는 듯 낙산사의 서녘하늘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처럼 시시각각으로 하늘이 변한다. 화마에 그슬린 숯검댕이처럼 검은 빛 먹구름이기도 하고, 홍예문에 드리운 쌍무지개처럼 고운 빛이기도 하다.


9월 8일 저녁 7시, 산사음악회가 시작됨을 알리는 오프닝멘트가 시작되는 순간, 무대의 배경이 되고 있는 낙산사 원통보전 뒤쪽하늘이 붉게 물들어 갔다. 찔끔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저녁노을, 먹구름 뒤에 감춰졌던 저녁노을이 새로이 복원된 원통보전을 향해 붉은 광선을 한 아름이나 쏟아붓는다.

파도는 너울너울, 가을바람은 산들산들

낙산사의 산사음악회는 관람객들보다도 파도가 먼저 찾아왔다. 푸르기만 했던 파도가 하얀색 도포를 입고 너울너울 찾아 들었다. 바닷가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어이된 일인지 집채만한 파도가 낙산사가 있는 오봉산 자락으로 너울너울 찾아 들었다. 바다를 관하고 있는 해수관음의 발걸음인 양 소리도 없고 바람도 없었지만 성큼성큼 한 발걸음으로 너울너울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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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음악회가 열리던 날, 오봉산 자락은 흰색도포를 입었고, 해수관음은 너울거리는 발걸음으로 너울파도를 타고 찾아왔다. 홍련암 전경 ⓒ 임윤수


파도가 박수를 치고 파도가 춤을 춘다. 산사음악회를 축하하고, 그 흥겨움을 일찌감치 알고 있다는 듯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다가오더니 바닷가에 다다라서는 장삼자락 펄럭거리며 춤사위를 갈무리하듯 너풀너풀 솟아오른다. 솟아오른 파도는 박수를 친다. 검푸른 바다색이 하얗게 멍이 들도록 철썩철썩 박수를 치며 오봉산으로 찾아들었다.

온통 하얀색이다. 바다도 하얗고, 거무튀튀하기만 했던 바윗돌들도 하얀색이다. 밀려오는 너울 파도는 바다에만 하얀색 도포를 입히는 게 아니라 바닷가 바위들에게도 예복인 양 하얀 포말을 입힌다.


산사음악회가 시작되려면 아직 너덧 시간은 있어야 한다. 낙산사를 찾으면 언제나 그랬듯 의상대와 홍련암을 찾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속삭임처럼 산들거리는 몸짓으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코스모스가 흔들거리고, 키다리 억새가 휘청거리는 모습에서 가을바람이 산들거리며 걷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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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전에서 친견할 수 있는 진신사리에는 이렇듯 기도와 염불소리가 끝이지 않는다. 진신사리를 확대시켜 주는 확대경에 기도하는 스님의 상을 맺었다. ⓒ 임윤수


바다가 하얀색이다. 산더미 같이 밀려오던 파도가 홍련암 바위굴, 관음굴로 들어가며 요란스럽게 입을 맞춘다. 철썩거리는 입맞춤 소리가 꽤나 요란스럽다. 침방울이 하얗게 튀어 오르도록 그들의 입맞춤은 끝없이 반복된다. 하얗게 튀어 오른 침방울이 사람들에게로 내려앉는다. 짭짤한 피부를 가졌지만 감탄과 탄성을 실어 달콤한 맛이 되어 사람들 입으로 내려앉는다. 사람들 마음도 하얘진다. 뒤숭숭할 만큼 복잡했던 마음일지라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108번뇌쯤 다 씻어 내린 듯 하얀 표정들이다.


마음이 요사스럽다. 철썩거리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너울파도를 타고 성큼 들어와 있을지도 모를 해수관음상을 참배하고 싶어진다. 해수관음상이 있는 언덕으로 가는 길, 보타락 뒤쪽에 있는 연못 바위엔 자라 한 마리가 올라와 있다. 먼저 좋은 자리를 잡아 산사음악회를 잘 구경하겠다는 듯 일찌감치 바윗돌에 올라 앉아 두런두런 주변을 살피고 있다.

해수관음상이 있는 언덕엘 오르니 마음이 후련해진다. 탁 트인 시야에 의상대는 물론 동해안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여전히 검푸른 색이지만 해안가는 분명 흰색이다. 산사음악회가 열리는 오늘은 바닷물조차 하얀 도포를 차려입어야 낙산사를 찾을 만큼 경사스럽고 기쁜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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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선 주인공에게 비추던 조명등처럼 눈부신 광선줄기가 해수관음보살상으로 쏟아진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말하듯 진득한 먹구름 속에서 한 줄기 햇살이 곤두선다. ⓒ 임윤수


진득한 먹구름 속에서 한 줄기 햇살이 곤두선다. 무대에선 주인공에게 비추던 조명등처럼 눈부신 광선줄기가 해수관음보살상으로 쏟아진다. 어둠에서 발견한 한줄기 햇살만큼이나 또렷하게 비춘다. 저절로 손이 모아진다. 불심이 아니더라도 자연이 보여주는 그 오묘함에 저절로 손이 모아진다. 햇살줄기의 광명을 가슴에 비추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 나누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환희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낙산사 원통보전은 불심이 낳은 사리며 정성이 이룬 결정체

뭇사람들의 정성과 불자들의 불심이 일궈낸 원통보전, 낙산사에서 고갱 같은 원통보전 앞에 마련된 무대에선 조금 있으면 시작될 산사음악회 리허설이 한참이다.

준공을 며칠 앞둔 원통보전은 물론 이미 완공되었거나 공사 중인 전각, 복원 된 낙산사 동종은 불심과 정성이 이루어낸 사리(舍利)다.

수행자의 길을 걷다 열반에 든 고승, 한 평생을 구도와 고행의 길만을 걷던 수도승을 다비하였을 때 구도와 수행의 결정체가 영롱한 사리로 남아 흔적을 남기듯 천년고찰 낙산사가 화마에 전소 되었을 때 발을 동동 구르던 안타까움, 복원다짐하던 불심, 추억을 더듬어가던 정성과 끊이지 않던 스님들의 기도가 영근 하나의 결정체이니 낙산사 원통보전이야 말로 불자들의 불심이 남긴 사리며 국민들의 정성이 담긴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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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복원된 원통보전엔 경보스님의 필적으로 현판이 걸려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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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도 산사음악을 즐기려는 듯 새로 복원된 원통보전 지붕에 날아와 앉았다. 혹시 낙산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파랑새, 극락조는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 임윤수


구도의 길로 들어선 수행자가 아침 도량석을 돌며 목탁을 울리던 마음, 조석예불 때 올리던 108배, 지극한 마음으로 염송하던 염불소리가 모여 한 과의 영롱한 사리로 드러나듯 불자들의 마음이 원통보전이라는 사리, 홍예문이라는 사리, 낙산사 동종이라는 사리로 만인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불심의 사리이며 정성의 결정체 중 고갱이라 할 원통보전 앞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린다고 하니 삼라만상의 생명들이 다 모여든다. 바다생물은 홍련암 앞으로 모여들고, 연못 속 자라는 바위 위에 자리를 잡더니 허허롭게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는 새로 복원되는 원통보전 용마루에 자릴 잡으니 혹 저 새가 낙산사 창건전설에 나오는 관음조는 아닌가하고 생각된다.

발걸음은 사뿐사뿐, 마음들은 얼싸절싸

해수관세음보살님은 너울 파도를 타고 찾아오고, 가을바람은 산들거리며 들어오더니 처처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은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원통보전 앞으로 몰려든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엄청나다. 가까운 속초에서 커다란 행사가 있어 혹시 관람객수가 적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우려의 소리 들리더니 그건 완전 기우였다. 도리어 속초에서 행사가 없었으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곤란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의자가 모자란다. 그 엄청나게 마련된 의자가 턱 없이 모자라니 일찍 온 사람들은 앉고 늦은 사람들은 장승목이 되어 서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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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 앞마당을 꽉메운 수천 명의 사람들 가슴엔 행복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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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가 방광을 하니 오봉산 자락이 광명천지다. ⓒ 임윤수


사람들 표정은 기쁨 그 자체다. 산사음악회엘 참가하겠다고 낙산사를 찾았을 때, 산들바람이 부는 바닷가, 고즈넉함이 뚝뚝 묻어나는 산사를 찾았을 때 한 사람도 빠트리지 않고 말랑말랑한 절편과 음료수 한 병, 동심까지 실을 수 있는 야광봉까지 듬뿍 선물로 주니 음악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횡재한 기분들이다.

정말 송곳 하나 꼽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행사장이 빼곡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막 행사가 시작되고 있을 때 원통보전 뒤쪽 하늘에서 방광을 한다. 하늘만 붉은 색을 띠었던 게 아니라 붉은 빛이 원통보전으로 쏟아졌다. 기쁜 감정을 어쩌지 못해 눈시울이 붉어지던 많은 사람들처럼 낙산사의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늘조차 붉게 물들였나 보다. 지나간 일이지만 두 눈 멀뚱하게 뜨고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가는 낙산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망해 하고 아파했던가? 그 황망함을 딛고자 티끌 같은 정성을 모으고, 그 티끌 같은 정성이 태산 같은 동종이 되고 전각들로 하나 둘 피어남을 보았을 때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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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도 산사음악회를 관람하듯 지긋한 눈빛으로 관조하고 있었다. ⓒ 임윤수

만감이 교차하는 만큼이나 우여곡절 끝에 그 자리, 화마의 생채기로 가장 아프게 남아 있던 그 자리에서 오롯하게 복원되는 전각, 원통보전을 눈앞에 두고 감미로운 음악회를 열어가려니 복받쳐 오르는 감정만큼 기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당연한 기쁨에 하늘조차 이적을 보이는 모양이다.

사람들 가슴에도 행복한 파도 너울너울

어스름이 깔리고, 방광(放光)이라도 하듯 원통보전이 아름다운 단청 빛을 뿜어내니 오봉산 자락에는 천상의소리가 시작된다. 밤중,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는 모든 사람들을 심취하게 만든다. 작은 규모의 산사음악회도 아기자기함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만 그 웅장함, KBS 관현악단 수십 명이 연주하는 그 웅장함과 섬세함에 관람객들이 빨려 들어가는 분위기다.

산사에서 듣는 음악소리는 사람들 마음을 웃게 만들고 사색하게 만든다. 아련한 전설처럼 길게 이어지는 곡조, 숨 막힐 듯한 처량한 음색이 숨 가쁘게 만드는가 했더니 사람들 표정이 멍해진다. 뭔가에 홀린 듯 깊이 빠져 있는 표정들이다. 천상의 소리가 되어 산사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취해 잠시나마 삼매에 든 표정들이다. 삶의 고단함, 억겁의 번뇌쯤 깡그리 잊어버린 무색무취한 표정들이다. 오로지 들리니 들을 뿐이라는 표정들이다.

음악에 심취해 있다가도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우레 같은 박수를 친다. 깜깜한 하늘에서조차 그 기쁨, 그 환희가 하얀 빛으로 뚝뚝 떨어질 만큼 행복한 마음으로 박수들을 친다. 출연자들이 바뀔 때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음색과 분위기는 가을바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분다.

구구만리 머나먼 길을 떠돌아다니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의 발걸음을 떠올리게 하는 망부석이 들려오는가 했더니, 추임새 같은 에루와라는 노래가 들려온다. 가을바람이 물들여가는 단풍만큼이나 출연자들도 다양하다. 입담을 질펀하게 쏟아내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판소리로 이어지는가 했더니 산사의 밤에 울리던 노랫말은 어느새 찔레꽃향이 되어 사람들 가슴에서 아름아름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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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떠나간 뒤에도 관음의 미소는 홍련암과 의상대는 물론 오봉산자락에 너울파도로 머물고 있었다. ⓒ 임윤수


구도의 결정체인 사리를 더 영롱하게 해 줄 것 같은 연화대 불꽃, 그 연화대 불꽃만큼이나 뜨겁고 화려하게 피어오르던 음악소리와 환호소리가 맺음말로 적멸에 든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산들거리는 가을바람을 뒤로 하며 일주문을 나서는 사람들 발걸음엔 행복한 파도가 너울춤을 주고, 감미로운 감상이 산들거리고 있었다.

부처님도 놀랐을 거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는 불심의 뜨거움에 화들짝 놀랐고, 이렇듯 환희로운 밤을 함께 하는 지혜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며 행복해 하셨을 거다. 뭇사람들의 정성과 불심이 결정체인 불심사리, 천년고찰을 뒤로 하며 만년고찰로 이어나갈 낙산사의 가을밤은 관음의 미소로 깊어만 간다.

덧붙이는 글 | 낙산사 산사음악회 실황은 추석전날(24일) KBS1에서 12시부터 특집으로 방영됩니다.


덧붙이는 글 낙산사 산사음악회 실황은 추석전날(24일) KBS1에서 12시부터 특집으로 방영됩니다.
#낙산사 #산사음악회 #홍련암 #의상대 #추석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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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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