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새로운 유기견을 데려왔다."
지난 일요일 오전 <TV 동물 농장>을 보다가 마음 한 구석이 쓰려왔다. TV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은 기회가 있으면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었다. 일단 재미있었다. 인간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동물들도 좋아하고 싫어하고 사랑한다는 감정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일요일 오전 안 놀아주는 아빠를 대신해 TV 앞에 앉은 아이들에게도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호감을 갖게 했다.
<TV 동몰 농장>을 보고 떠오른 '다마고찌' 게임
그런데 아쉽게도 지난 주 일요일(9일) 오전의 <T. V 동물 농장>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평소 이 프로그램이 가진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따뜻한 시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다른 때 같았으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절대 생각나지 않았을 경험들이 떠올랐다. 바로 '다마꼬지'라는 게임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다마꼬지'는 어렸을 때 인기를 보았던 게임기 속에서 병아리를 키우는 게임이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제 시간에 밥을 주고 사랑을 주고 하는 게임이었다.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캐릭터가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한동안 아이들에게 꽤 인기를 모았지만 당시 언론은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죽으면 껐다 켜기만 하면 되기에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어른들은 '참 별 거 가지고 걱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배우는 입장이 아닌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된 지금은 당시 어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
나 역시 요새 초등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논술 교재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아이가 강아지가 죽자 이랬다고 한다.
'저거 건전지 다시 넣으면 되잖아.'
생명을 가진 강아지가 죽었는데 건전지를 넣으면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는 시대라니. 그리고 그것이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니,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려주는 <TV 동물 농장>은 기계에 둘러 싸여 사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적극적으로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다. 한 아이돌 그룹이 그 프로그램에서 맡고 있는 코너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실 처음 이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이 한 코너를 맡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동물의 주인이라면 대부분 동물에게 관심이 집중이 된다. 그러면 <TV 동물 농장>이 갖고 있는 동물에게도 감정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미덕이 아주 잘 발휘된다.
아이돌 그룹이 애완 동물을 돌볼 시간이 있을까?
그런데 만약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 동물의 주인이라면 주객이 전도될 가능성이 높다. 동물보다 아이돌 그룹에게 관심 많이 가서 이 프로그램이 원래 갖고 있는 미덕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 아이돌 그룹이 맡은 코너가 버려진 강아지들을 데려다 사랑으로 보살핀다는 것이었기에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연예인을 굉장히 좋아하고 우상시 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연예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본보기가 될 것이고, 동물에게 인간들이 굉장히 친절한 편인 이 프로그램의 특성상 분명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아이돌 그룹이 맡고 있는 코너를 보면 볼수록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은 어찌 막을 도리가 없었다.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유기견을 데려다 같이 지낸다는 설정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예전처럼 개를 식용으로 바라보는 사람 뿐 아니라 이제는 개를 한 식구처럼 여기는 인구도 많아졌다. 그 때문인지 고아들을 데려와 보살피는 사람처럼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기견을 데려와 정성껏 돌봐주는 애견인들의 모습도 종종 엿볼 수 있다.
그런 블로그 글을 자세히 보면 사람도 한 번 버림받으면 사랑에 목말라 하듯 유기견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어떤 유기견은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고 과도하게 애교를 부리고, 또 어떤 유기견은 풀이 죽어 우울증 비슷한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결국 어떤 형태의 유기견이든 중요한 것은 상당한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굉장히 바쁠 수밖에 없는 연예인이 그만한 시간이 날까? 하긴 애견인들도 자기 생활이 있는 만큼 개 옆에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것이 크게 문제 되지는 않겠지. 그렇게 첫 번째 의문 부호를 애써 떨치고 나니 또 다른 의문 부호가 곧바로 따라 붙었다.
아픈 강아지를 꼭 촬영에 참가 시켜야 했을까?
이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에게 맡겨진 강아지 때문이었다. 이 강아지는 병을 앓고 있었다. 화면상으로 아이돌 그룹 멤버가 그 강아지를 굉장히 걱정하는 모습이 나왔다. 물론 그 멤버가 정성스레 보살펴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중환자들에게는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까운 친지 이외에는 잘 못 들어가게 하지 않는가. 개한테도 그랬어야 하는가 아닌가 싶다. 이 아이돌 그룹 멤버는 여러 명일 뿐 아니라 코디 등 식구들까지 하면 적지 않은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들 것이다. 그렇다면 아픈 이 강아지가 제대로 된 안정을 취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그 아픈 개가 촬영을 위해 꼭 참여했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촬영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도 개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 아니었을까? 스트레스가 건강한 사람에게도 큰 병이듯 동물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면 병을 가진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놓이면 더욱더 힘들어 할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니겠는가. 게다가 촬영이라는 것이 단 몇 분 만을 위해서 몇 시간씩 찍을 때도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그 아픈 강아지가 꼭 소화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다행히도 아픈 강아지는 동물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어 두 번째 의문 부호를 뗄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의문 부호가 떼이기 무섭게 아주 커다란 세 번째 의문 부호가 따라왔다.
강아지가 입원하고 나서 얼마 후 동물 병원에서 그 강아지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그 소식을 듣고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자 나도 마음이 아팠다. 어려서든 커서든 강아지를 한 번이라도 길러본 사람이 있다면 몇 년간 같이 해오던 강아지가 자신의 곁을 먼저 떠날 때 얼마나 슬픈지 잘 알 것이다. 감성이 예민한 여성들의 경우 펑펑 울기도 한다. 그들도 분명 슬펐으리라.
"00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새로운 유기견을 데려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얼마 후 이 아이돌 그룹의 또 다른 멤버가 아픈 강아지를 먼저 떠나보낸 멤버에게 또 다른 유기견을 선물한다. 그리고 뜨던 이 말.
"00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새로운 유기견을 데려왔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동료 멤버의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새로운 강아지를 데려온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이 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강아지는 한 번 죽으면 다시 껐다 켜서 시작할 수 있는 '다마꼬지' 게임기의 병아리가 분명 아니다. 한 번 죽으면 그와 똑같은 생명이 그 강아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울해하는 멤버를 위해 또 다른 강아지를 데려왔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상처가 그렇게 빨리 치유되는 것일까? 아니면 촬영을 위해 또 다른 강아지가 필요했기에 한 강아지가 세상을 뜨자마자 결원을 보충한 것일가?
결국 이 강아지가 죽으면 두 번 세 번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끊임없이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이렇게 끌고 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TV 동물 농장>의 최대 장점이 '동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면 그 강아지가 죽었을 때 보다 진지하게 다루어주는 게 옳았다.
아이들에게도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볼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그런데 그런 고민은 거의 없어보였다. 강아지 한 마리가 죽자 (그것이 그런 의도가 있든 없든) 그를 대신하기 위해 온 것처럼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 이것은 <T. V 동물 농장> 특유의 따뜻함 보다 <다마꼬지>의 차가움과 더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되자 이쯤에서 가장 컸던 의문 부호가 더 커진 의문 부호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 코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일까?', 버려진 강아지들을 사랑으로 돌보자고 주장하기 위해서? 아쉽게도 대답은 '아니다'였다. 버려진 강아지를 사랑으로 돌보기 위해서 아이돌 그룹이 코너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오히려 버려진 강아지를 돌보는 아이돌 그룹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코너가 시작된 듯 했다. 즉, 이 아이돌 그룹을 위해 유기견들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내가 잘못 느낀 것일까? 잘못 생각한 것일까? 내가 지난 주 방송을 보고 그렇게 느낀 것이 오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다음 주 <TV 동물 농장>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TV 리뷰 기자단 응모 기사 입니다.
아이돌 그룹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그룹명 대신 '아이돌 그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007.09.10 15:03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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