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름방학을 맞아 전국에서는 일제히 많은 교사가 논술연수를 받았다. 또 논술교육을 학교의 특성화 사업으로 삼으려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학생들이 제대로 된 논술교육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교육에서는 논술학원과 과외가 성행하는 등 학생과 학부모의 많은 신뢰를 얻고 있다.
이에 현재 논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학생, 교사, 학원 등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고 공교육에서 올바른 논술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
취업준비생 김현이(가명·24)씨는 요즘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잘 되지 않아 고민이었던 그는 "독서를 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접하다 보니 사고도 넓어지는 것 같다"며 "학교 다닐 때 이러한 교육을 받았다면 내 삶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요즘 논술교육, 논술교육 하던데 정말 공교육에서 논술교육이 잘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이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좀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김현이씨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논술교육이 실제 공교육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고등학교 논술관련 교과... 문제풀이 시간으로 유명무실
결론적으로 취재를 위해 만나본 많은 학생과 교사들은 모두 체계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는 논술교육의 부재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통합논술이 강조되고 문과, 이과의 구분을 넘어선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가 요구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논술교육은 학생, 교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현재 공교육에서 정규 수업을 통해 논술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국어과 교과로는 '독서, 작문, 화법, 문학, 문법, 국어생활'이 있다.
이 과목들은 국어과 심화선택과목들로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이 중 3~4과목을 선택해 실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고3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이들 교과서 및 관련 학습자료로 공부하지 않는다. 많은 학교가 교과목의 본래 특성에 따른 수업 대신, '수능 언어영역' 대비 문제집 풀이를 하고 있다.
이처럼 논술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논리적 사고력, 창의성 등을 강조하고 있는 시대상황과 논술을 주요 전형요소로 반영하는 대학입시제도가 공교육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능력을 신장시키는 논술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많은 학생과 교사의 귀감이 되는 논술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학교가 있다. 서울의 성남고등학교, 동북고등학교가 대표적이다.
성남고와 동북고의 논술교육의 노하우를 직접 배우고자 전국 곳곳의 교사들은 방학 등을 이용, 교사연수를 통해서 이들 학교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특히 두 학교의 논술담당 교사인 성남고 강호영 교사와 동북고 권영부 교사는 지난 1월 좋은교사운동에서 마련하고 전국 초중고 교사 400여명이 참석한 '2007 겨울 자율연수'에서 '통합논술 정면 돌파하기'의 강사로 나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성남고] 교사 개인의 희생과 열정만으론 어려워
"학교차원에서도 논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곧 이를 책임질 논술담당 교사를 뽑을 예정이다. 그러나 통합논술 시대에 교사 한 명을 뽑아 논술 전부를 담당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다" - 경기도 A고교 교사 A씨
이처럼 대부분의 학교가 논술담당 교사 개인에 초점을 맞춰 논술교육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성남고등학교는 학교 전체 교육 체제 속에서 논술교육을 위한 환경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먼저 성남고는 논술의 가장 기본인 '독서'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달의 책을 의무적으로 1권씩 선정, 모든 학생들은 1년에 총 1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특히 방과 후 논술심화반을 통해 심층적인 논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논술심화반의 수업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먼저 수업 도입부분에 수업주제와 관련된 광고 등의 다양한 교수매체를 제시한다. 이어 교사는 수업주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후 학생들은 15분 정도 안에 이에 대한 500~600자 정도의 글을 쓴다. 이어 각자 쓴 글을 바탕으로 교사가 사회자가 되어 토론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쟁점을 파악하며 때로는 교사가 문제의식으로 가지고 있던 쟁점을 제시하여 토론을 더욱 활발하게 한다.
이처럼 논술주제에 대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면 논술심화반의 80분 수업이 그 배인 160분에 걸쳐 이루어지기도 한다.
성남고 강호영 교사는 "우리는 '사람'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며 "논술교육을 잘 한다고 평가 받는 교사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만약 이들이 빠지게 되면 그 학교의 논술교육은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성남고의 논술교육은 스타교사가 없어도 티가 안 나는 체제라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성남고는 논술업무를 담당하는 교사에게는 과중한 부가적인 업무를 주지 않아 이에 전념하게 하고 있으며 첨삭전문교사 2명을 따로 두기도 하는 등 학교차원에서 논술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강호영 교사는 "학교의 튼튼한 체계가 있어 그 틀 안에서 누구나 들어가 논술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라며 "논술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얼마든지 바뀌어도 되고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즉, 교사 개인의 자질보다는 수업준비, 지도의 어려움, 첨삭 등을 다 감안할 수 있는 사람의 의지가 필요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동북고] 사회와 소통하고 자신 표현하는 것이 목표
"논술교육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어과뿐 아니라 모든 과목의 교사가 논술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공부를 해야 하는데 교사의 인식이 이를 못 따라가고 있다"며 일부 학교에서는 "수학, 과학 교사인 내가 왜 논술교육을 해야 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 인천 B고등학교 교사 B씨
'통합논술'이 뜨고 있다. 기존의 생각처럼 논술이 단지 국어과에만 국한해 이루어지는 것이란 생각은 옛말이다.
경제, 윤리, 수학, 과학 등 다양한 과목의 교사가 모여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하게 사고 할 수 있는 시각을 키워주는 서울 동북고등학교 통합논술팀. 이들은 이미 2권의 책을 낸 베테랑이다.
처음 교사 한 팀으로 이루어진 통합논술팀이 점차 학교 내에서도 공감을 얻어 많은 교사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동북고등학교에는 인문사회 2팀, 인문사회+수리과학 1팀, 수리과학 1팀 총 4팀의 통합논술팀이 운영되고 있다. 기존 논술교육의 특정과목만 중시하는 관점이 아닌 이를 넘나든 통합적인 운영을 중시하는 것이다.
통합논술팀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동북고 권영부 교사는 "논술을 입시로 이용하기보다는 이를 뛰어넘어서 사회와의 소통으로 생각하고 창의적,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강조한다"고 했다.
통합논술 및 NIE(신문활용교육)교육 전문가로도 유명한 권영부 교사. 그가 이러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연구활동 및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대학 졸업 후 10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교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가르칠 경제 교과서를 보니 제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교과서와 똑같아 너무 놀랐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시대가 계속 변하는데도 학생들에게 지식 위주의 고정된 개념만 가르치는 교육을 벗어나고자 다양한 시도를 시작한다.
현재 권 교사는 방과 후 통합논술 시간 외에도 자신의 과목인 경제시간에도 논술접근 수업을 하고 있다. 지식과 개념 위주의 접근방법이 아닌 '읽기와 쓰기로 익히는 경제' 수업이다.
그는 교재를 직접 만들어 수업시간에 이용하여 학생들이 논술의 기본자세를 갖춘 능력을 배양하게 한다. 또한 수업 마무리로 신문활용교육을 한다. 이 교육을 통해 수업내용을 시사적인 문제와 연결해 폭넓은 사고를 갖출 수 있으며 계속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교재를 개정하는 데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책 출판준비와 현직교사 대상의 연수로도 바쁜 그는 "동북고 통합논술팀의 논술교육에 대한 강연을 듣고 많은 교사들은 논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논술교육은 국어교사만이 하는 것이고 논지를 분석하고 글쓰기 형식에 치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교사들도 강의를 들으면서 논술교육에 '이렇게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구나'하고 인식의 전환을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7.09.12 10:01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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