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하러 미용실 가면 재미없지"

[현장] '균일가격'에 밀려 어려움을 겪는 '동네 미용실'의 활로 찾기

등록 2007.09.13 08:37수정 2007.09.13 10:26
0
원고료로 응원
단돈 2만원에 파마, 염색, 코팅이 가능한 프랜차이즈형 대형 미용실들의 공세로 운영난을 겪거나 문을 닫는 소규모 ‘동네 미용실’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8만6878개였던 전국 미용실 숫자가 2006년에는 8만1585 개로 줄었다.

서울 강동구 성내2동 골목 한편에 있는 이건숙(58)씨의 ‘비전 헤어샵’ 역시 여느 동네 미용실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서울 강동구 성내2동 골목에 있는 이건숙(58 )씨의 동네 미용실 '비전 헤어샵'.
서울 강동구 성내2동 골목에 있는 이건숙(58 )씨의 동네 미용실 '비전 헤어샵'. 손기영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아 밤늦도록 일을 해도 힘이 들지 않았지. 그냥 ‘미용’이 내 천직인 것 같아 즐거웠어. 그런데 요즘엔 사람이 적어 그런지 일할 기분이 잘 안나. 괜히 한숨만 나오고 가게 문 일찍 닫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야.”

미용학원이라는 게 없던 32년 전, 이씨는 아는 언니 미용실에 견습생(속칭 ‘시다’)으로 들어가 미용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5년 뒤 영등포에 ‘영지 머리방’이란 자신의 첫 가게를 열었고, 미용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언니네 미용실에서 시다로 일하면서 구박도 받고 눈물도 많이 흘렸어. 언니 애기 봐주고, 청소하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찬물에 수건 빨고…. (쓴웃음) 그래도 미용기술 배워 내 가게를 냈을 때는 세상 부럽지 않았지. 그리고 미용실이 잘됐을 때는 한 달에 300만원을 벌었을 때도 있었어. 근데 지금은 한 달에 30만원 벌기도 빠듯해. 그 때가 정말 좋았지….”

이씨가 잠시 회상에 잠겨있는 사이 동네 주민 황선옥(55)씨와 길종선(52)씨가 가게에 들어왔다. 조금은 가라앉았던 미용실 분위기가 동네 아줌마들의 입심으로 다시 활력을 찾았다.

 동네 미용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단골손님들. 왼쪽에서부터 유정아, 황선옥, 김금순, 길종선씨.
동네 미용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단골손님들. 왼쪽에서부터 유정아, 황선옥, 김금순, 길종선씨. 손기영

황선옥:
“언니 나 오늘 머리 좀 자르려고 하는데, 이제 추석도 다가오고 그래서…. 이쁘게 좀 해줘.”


길종선: “나는 그냥 선옥 언니 따라왔어. 집에 있기도 심심하고. 요즘 들어 마음이 답답해서… 그냥 언니들이랑 수다나 떨려고.” (웃음)

잠시 후 동네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가던 유정아(56)씨, 김금순(57)씨도 가게에 들어왔다. 무거웠던 이건숙 원장의 표정에 미소가 맴돌았다. 이씨는 손수 만든 아이스커피를 아주머니들에게 건넸다. 어느 덧 10평 남짓한 ‘비전 미용실’은 손님들로 꽉 찼다.


단골손님인 아줌마들에게 동네 미용실의 매력과 이곳을 찾는 이유를 묻자, 대답은 명쾌했다.

유정아: “난 아까 마트에 들러 장보고 왔는데, 날씨가 더워서 언니 미용실에 들러 시원한 커피나 한잔 마시려고 왔어. 평소에 머리를 하지 않더라도 미용실에 들르면 오늘처럼 차도 한잔 마실 수 있고, 가끔 건숙 언니가 밥도 시켜주고 그래. 동네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만 하고 가는 곳이 아니라, 맘 편히 쉬다갈 수 있는 ‘친언니 집’ 같은 곳이야.”

황선옥: “지금 머리 하러 왔는데, 그냥 자리에 앉으면 언니가 다 알아서 해주니깐 좋아. 여기에 자주 와서 그런지. 원하는 머리모양을 다 알거든. (웃음) 다른 데 가면 내 스타일도 잘 모르고 머리 하고도 마음에 안든 적이 많았지. 동네 미용실은 손님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잘 알아서 좋은 것 같아.”

길종선: “예전에 딸내미가 하도 싸다고 해서 '균일가격' 미용실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어. 근데 의자에 앉으니깐, ‘머리 어떻게 하실 거예요’라고 묻더니, ‘수고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고 끝나는 거야. 무슨 로봇한테 머리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삭막하더라고. 그 다음부터 절대 거기는 안가지, 어색해서.” (웃음)

김금순: “맞아. 동네 미용실에 와서 사람들하고 편하게 ‘수다’ 떠는 재미는 다들 알 거야. 남편, 자식들 이야기,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 이야기, 재테크 이야기 등등… 여기에서 수다 떨고 나며 하루 스트레스가 다 풀려." (웃음)

 황선옥씨가 머리를 하고 있다. 옆에는 '비전 헤어샵'의 원장 이건숙씨. 황씨는 동네 미용실의 매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점을 꼽았다.
황선옥씨가 머리를 하고 있다. 옆에는 '비전 헤어샵'의 원장 이건숙씨. 황씨는 동네 미용실의 매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점을 꼽았다. 손기영

동네 미용실은 머리를 하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다가 간단히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 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방’으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동네 미용실은 ‘균일가격’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다. ‘비전 미용실’의 경우만 하더라도 파마를 하려면 2만5천원~3만원을 줘야 한다. 그리고 남성커트의 가격은 7천원이다. 또 대부분의 단골손님들은 40·50대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손님들은 동네 미용실을 찾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방안을 묻자 이건숙 원장은 크게 한숨을 쉬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씨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솔직히 가격은 거기(프랜차이즈형 미용실)를 따라가지 못하지. 왜나하면 균일가 미용실들은 파마 약 같은 미용재료들을 일괄적으로 아예 공장에서 가져오거든. 우리 집에 들어오는 재료값이 1000원이라고 하면, 거기는 200원에서 300원 밖에 안 들어. 대형마트보다 비싼 구멍가게의 가격 꼴이지…. 

그렇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 ‘쿠폰’을 만들어서 횟수를 채우면 공짜로 머리도 할 수 있고 아직 여유는 안 되지만 젊은 미용사를 고용해, 앞으로 젊은 손님들의 취향을 잘 맞추려고 할 거고.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족 같은 정겨운 분위기에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예전처럼 동네 미용실이 살아 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웃음)       

 동네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점점 삭막해지는 이웃간의 정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동네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점점 삭막해지는 이웃간의 정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손기영

코끝을 스치는 파마 향냄새 구겨진 이름 모를 예쁜 조화들
한쪽 편 윤기 나는 모조과일들 오래된 친구처럼 잘 어울려 보여.
다른 건 다 먹어도 나이는 먹지 말아야 한다는 멋쟁이 할머니
그럴 수가 있나 가는 세월을 누가 무슨 수로 잡겠냐는 머리 ‘히끗’ 할머니
정겨운 오후한 때 우리 동네 미용실 내 얼굴에 미소를 지게 하네.
이 모든 풍경들이 사진 속 추억되어 언제가 내려 보며 좋아 하겠지.
- 박하림 <우리 동네 미용실>


박하림의 노래처럼 동네 미용실의 하루풍경은 정겨웠다. 하지만 ‘가격’을 무기로 불어 닥친 시장논리는 차가웠다.  ‘비전 미용실’ 이건숙 원장은 동네 미용실을 ‘인간 복덕방’이라고 비유했다. 복덕방이 동네에서 매물로 나온 주택이나 땅을 원하는 사람들한테 중계해주는 것처럼, 동네 미용실은 점점 삭막해지는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을 이어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는 점.

오늘 하루 동네 미용실을 다녀간 사람들은 이웃 주민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 하고 차도 마시며, 따뜻한 ‘정’을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동네 미용실에서만 받을 수 있었던 ‘특별 서비스’였다.   
#동네미용실 #균일가격미용실 #미용실 #성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