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추리무협소설 <천지> 273회

등록 2007.09.14 08:11수정 2007.09.1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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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철담 그 친구가 함곡에게 전하라고 했던 것인가?”

중의가 소매에서 혈서를 꺼내들고는 운중 앞으로 펼쳐 놓았다. 탁자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혈서에 가 멎었다. 보주나 성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장문위는 가슴이 뜨끔했다. 저 안에 자신의 이름과 피로 찍은 자신의 장인이 들어있다.


“이건.....?”

보주가 매우 흥미롭다는 듯 혈서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리고는 중의와 성곤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재미있군. 나는 이것에 대해 철담에게 얼핏 들은 것은 같지만 직접 본 적이 없네.”

“내가 함곡에게 보낸 것이네. 회의 신물인 세 송이 목단화와 같이.....”

성곤이 나섰다. 철담이 운중에게 부탁을 하려 했지만 거절할 것 같자 성곤에게 부탁을 했던 일이다.


“그것이 결국은 자네 손에 들려있구먼.... 세상일이란 이렇듯 묘하단 말이야.... 절대 밝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아주 쉽게 밝혀지니 말이야....”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중의는 그 말이 비수처럼 자신의 가슴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 이 자리만 해도 자신의 아들이 있다. 누구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그 비밀을 이미 운중이 알고 있다. 어쩌면 성곤도 알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운중에게만큼은 감추고 싶은 비밀.... 아니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감추어야 하는 비밀이 있다. 아무리 친구라 하지만 운중은 절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치자 중의는 떨쳐버리려는 듯 헛기침과 함께 다시 말을 돌렸다.

“험험.... 다시 한 번 더 묻겠네.... 설중행이란 아이... 정말 자네 아들이 아닌가?”

어제 운중이 부인했음에도 아직까지 의구심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또한 이것은 확실히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의 잘못은 뒷전으로 미루고 오우 중 아들이 자신밖에 없다면 눈물로 호소해서라도 도와달라고 할 참이었다.

“도대체 자네는 무엇을 알고 싶은가? 그 아이가 누군지 그렇게 알고 싶은가?”

운중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중의가 고개를 끄떡였다.

“솔직히 그러하네. 분명 자네와 관계있는 아이 같아서 그러네.”

“좋으이.... 나하고는 분명 관계가 있네. 내 사위가 될 아이이니까..... 또한...”

보주는 말을 잇기 전에 약간 뜸을 들였다. 궁수유의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일었다. 허나 그녀는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구룡 중 셋째인 혈룡의 자식이네.”

그 말에 좌중의 얼굴에는 경악에 찬 표정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구룡 중 혈룡의 자식이라니.... 그런 아이를 아미의 추천을 받아 어렸을 적 운중보에서 수학시켰단 말인가?

더구나 구룡의 신화를 종식시킨 동정오우, 그 중에서 동정호 군산혈전에서 천룡을 꺾어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인 운중보주의 입에서 그런 말이 태연하게 흘러나오는 것이 의아스러울 지경이었다.

“으음.....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군.”

중의는 신음을 흘렸다.

“나는 자네와 관계가 있는 아이인 것으로 착각해 그 아이의 몸을 벌모세수 시켜 주었다네. 그 융화되지 않고 충돌을 일으키던 폭발적인 진기가 바로 혈룡의 혈룡기(血龍氣)였군. 능효봉인가 하는 그 자식과 함께 움직일 때 알았어야 했는데....”

보주는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떠올렸다.

“그 녀석의 위협에 의한 것이 아니고...?”

비웃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능효봉인가 하는 자식의 정체를 운중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중의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억양도 약간 올라갔다.

“위협도 위협이지만 솔직히 자네와 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그 자식이 흘리더군. 자네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걸세. 이미 융화되지 않은 진기가 모종의 충격에 의해 폭발할 지경이었다네.”

“내가 자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허허... 나는 자네를 미워하고 싶지 않네.”

무슨 뜻일까? 이미 설중행에게 장난친 사실마저 운중은 알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운중의 동공 깊숙한 곳에서 잠시 비쳤다 사라지는 섬뜩한, 한편으로는 암울한 눈빛을 보았다.

“자네....?”

“말이 나온 김에 더 하기로 하지. 자네는 내 딸아이에게도 금제를 가해놓았더군... 부인하겠나?”

운중은 절대 추궁하거나 따지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친구들에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속내에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도 친구들에게는 결코 내색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가끔 그를 두렵게 만드는 요인도 되었다.

“부인하지 않겠네..... 하지만....”

중의는 자신의 속내와 감추고 싶은 행동을 운중이 이미 꿰뚫어 보고 있음을 알았다. 허나 그 역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특히 이 문제만큼은 자신의 탓만도 아니었다.

“그 아이의 몸에 혼원잠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변명할 텐가? 자네 딸이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발설하지 않았네.”

“하하핫핫.....!”

중의의 말에 운중은 갑자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웃어넘기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면에서는 중의의 말이 어이가 없다는 의미로도 보였다.

“아닌가? 그 아이의 몸에 구룡 중 잠룡의 혼원잠이 없다고 부인할 텐가?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혼원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과거 중의는 잠룡에게 당해 수개월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다. 아마 잠룡이 당시 중의를 알았다면 더욱 치명적인 살수를 썼을 것이지만 그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었다. 중의는 혼원잠의 무서움을 몸으로 체험한 셈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세를 다스리기 위하여, 그리고 혼원잠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잠룡의 무서움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타인을 제어할 수 있는 심력(心力)에 있었다. 더구나 그 혼원잠에 한 번 당하고 나면 진기를 자신의 의도대로 원활하게 운용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혼원잠에 당하게 되면 마치 병에 들린 사람처럼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중의는 자신의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잠룡의 혼원잠을 제어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연구하였고, 결국 혼원잠과 극성이 되는 약물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약물은 혼원잠의 상세를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었을 뿐 아니라, 혼원잠을 익힌 사람이 그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혼원잠을 운용할수록 시력을 퇴화시키는 성분이 있는 약물이었다. 그럼에도 동정오우 측에서 보면 구룡 중 가장 먼저 제거할 위험한 인물이 잠룡이었다. 잠룡은 직접적으로 위험한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다른 구룡들의 위력을 배가시키는 더욱 위험한 인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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