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총리 급부상... 후쿠다는 누구인가

[이병선의 재팬워치] 대외정책 상당한 변화 예고

등록 2007.09.15 13:08수정 2007.09.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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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 후쿠다 야스오 홈페이지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 후쿠다 야스오 홈페이지

전격 사임한 아베 신조 총리 후임으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유력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자민당 총재 선거일(23일)까지 남은 1주일 동안 무슨 변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가 총리가 된다면 일본의 대외정책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후쿠다는 아베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같은 파벌인 마치무라파에 소속돼 있다. 이 파벌은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만든 자민당 내 전통적 '매파'다. 그러나 후쿠다는 아베나 고이즈미와는 정치적 성향이 사뭇 다르다.

 

그는 관방장관 시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해 한국, 중국과 외교 마찰이 일었을 때 "반대입장에도 배려를 해야 한다"며 총리와 각료들의 신사 참배를 비판했다. 출마 의사를 밝힌 뒤 언론 인터뷰에서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대 현안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감정론으로 흘러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 납치피해자 가족과 지원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헌법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주변국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 지론이어서 그가 총리가 되면 아베 정권이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던 개헌에 일단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무엇보다도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일본이 역사문제 등으로 주변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고이즈미-아베와 같은 ‘세습 정치인’, 그러나 다른 성향

 

같은 파벌임에도 이렇게 철학과 노선이 다른 이유는 일단 사회적 경험과 정치입문 과정의 차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후쿠다도 아베나 고이즈미처럼 이른바 '세습 정치인'이다. 그의 부친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1976~1978년)로,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파벌을 물려받아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아베나 고이즈미가 2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친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한 반면, 후쿠다는 대학졸업 후 17년간 '마루젠석유'란 회사에 취직해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2년간 미국 주재원으로 나가 있기도 했고, 과장을 마지막으로 회사생활을 접었다.

 

그는 40세 되던 해에야 총리에 취임한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의원배지를 단 것은 그로부터도 14년이나 흐른 1990년으로 그의 나이 54세. '세습 정치인' 치고는 이례적으로 늦은 국회 데뷔였다.

 

총리까지 지낸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면서도 71세가 될 때까지 총리의 기회가 오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연유다. 총리에 도전하기에는 당내 기반이 너무 약했고, 스스로도 크게 정치적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베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지난해 9월 선거전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의 정치 스타일을 상징한다. 후쿠다는 당시에도 아베에게 유일하게 대항할 만한 후보로 이름이 거론됐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사실상 아베를 후계자로 지목하는 등 당내 역학관계로 볼 때 별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자 결국 나서지 않았다.

 

일단 도전해서 세력을 모으고 '다음'을 기약하는 정치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는 확실하다고 판단해야 비로소 나서지,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도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관방장관 3년 반 재임... 역대 최장수

 

후쿠다는 늦게 정계에 들어온 만큼 내각의 요직을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 그가 2000년 모리 요시로 2차 내각에서 '정권의 2인자'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관방장관에 기용된 것은 어떻게 보면 이례적 인사였다.

 

그는 모리 정권에서 고이즈미 정권에 걸쳐 1289일을 관방장관으로 재직,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의 기록을 갖고 있다. 다른 각료 경험이 없으면서도 부친의 총리 재직시절 비서관으로서 국정운영을 경험해봤기 때문인지 탁월한 일처리 능력으로 내각을 장악해 나갔다.

 

관방장관 재임 중 그는 단지 총리를 보좌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외교와 내정의 주요 과제들을 직접 챙기고, 때론 '해결사'로 나서기도 했다. 특히 외교에서 그의 역할은 컸다. 고이즈미 정권 초기 야스쿠니신사 문제로 한일관계가 갈등을 겪으면서도 파열음이 나지 않았던 것은 막후에서 그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방장관으로서 이렇게 영향력이 커져가면서 그는 마지막에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2004년 봄 일본 정계를 뒤흔든 이른바 '연금 파동' 당시 후쿠다도 과거 국민연금을 미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방장관직을 사퇴했다.

 

이후 그는 대외정책에서 강경으로 치달은 고이즈미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뒀으며, 아베 정권 들어서는 같은 파벌임에도 사실상 ‘비주류’의 입장에 섰다. 이번 출마 결심도 다니가키 사다가즈 전 재무상이나 야마사키 다쿠 전 간사장 등 비주류 측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뤄졌다.


넘어야 할 '여소야대'의 벽

 

흥미로운 것은 당내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가 아베 총리가 내심 밀었던 아소 다로 간사장을 내치고 후쿠다를 전폭 지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고이즈미-아베 정권을 거치면서 한반도 문제 등 대외정책에서 강경노선을 주도해온 이 파벌이 돌연 정책적으로 방향전환을 한 셈이다.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일본의 대외정책은 이렇게 갑자기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이것이 이른바 '당내 정권교체 효과'를 통해 1당 장기집권 체제를 유지해온 자민당 정치의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고이즈미-아베 노선이 미국과의 마찰을 일으키는 등 한계에 부딪힌 것이 명백해지자 새로운 흐름에 맞춰 다른 카드를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후쿠다가 총리가 된다고 해도 지금 자민당이 처한 위기를 과연 수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의 위기는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의 참패에 따른 ‘여소야대 정국’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카드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온화한 성품이나 일처리 능력을 볼 때 아베 총리 때와는 다른 여야 대화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도 있으나, 민주당이 '조기 중의원 해산, 총선거 실시'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근본적인 대립구도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선은 아베 총리 때 20%까지 떨어진 정권의 지지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2007.09.15 13:08 ⓒ 2007 OhmyNews
#후쿠다 #아베 사임 #자민당 #총리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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