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놀이'가 될 순 없을까? 놀이의 핵심은 참여와 즐거움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치가 '코미디'나 '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참여는 없고 쓴웃음과 냉소만 횡행한다. 정치가 술자리의 안주가 되었을 땐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 하여 이번 연재물의 목표는 정치의 술안주화(化)다. 결코 코미디나 쇼처럼 일회성으로 끝날 수 없는 대통령 선거를 여러분의 술자리 안주로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가 되겠다. 독자 손님들의 적극적인 주문도 기대한다. <편집자주> |
나는 유시민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8월 18일)하기 전, '이해찬-유시민 환상의 복식조'편(7월 27일자)을 <대선 진맥>에서 살펴본 바 있다. 그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유시민 후보가 출마 28일 만에 후보를 사퇴하고 이해찬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첫 경선지인 제주․울산 개표결과가 나온 직후였다. 정동영(33.6%), 손학규(26.1%), 이해찬(21.7%)에 이어 4위. 3위와 3% 표차로 꼴찌였다. 유 후보는 이어진 연설에서 "오늘의 경선 결과를 패배로 받아들인다"며 "오늘 부로 사퇴를 선언하고, 받아주신다면 내일부터 존경하는 이해찬 후보 캠프에서 일하겠다"고 밝혔다.
단상에서 내려온 유 후보는 참모들과 가슴을 맞대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해찬 후보와 손을 맞잡는 순간엔 그의 뺨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카메라에도 잡혔다. 쑥스러웠던지 유 후보는 나중에 "땀이었다"고 반박(?)했지만 왜 울컥하지 않았겠는가?
1등 목표했던 유시민의 눈물
"첫날 제주·울산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단일화 압력에 눌려 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조직도 돈도 없고, 참여정부 출신의 화려한 이력의 선대위원장도 없이 불출마 압력을 뿌리치고 배제투표의 강을 건너서 후보단일화를 위한 사퇴 압력을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는 이 무대에 설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9월 12일 울산 합동연설회)
그러면서 "저에게 투자해 주십시요"라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이명박 대세론을 꺾기 위해서는 내부의 대세론부터 꺾어야 하고 그 바람, 돌풍의 주인공이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이었다. 지난 5일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한 직후 '친노 후보 단일화' 논의가 급속하게 제기되었지만 "지지자들의 눈이 어른거려서 도저히, 도저히 (이해찬-한명숙 단일화에) 참가할 수 없다"며 첫 경선을 '심판대'로 삼았었다. 참모들과 "무조건 1등이 목표"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지지자들의 결속력도 높아졌다. '예비경선 4위 통과'라는 예상보다 뒤처진 성적을 놓고 지지자들은 "유시민에 대한 배제 투표의 결과"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실제 '1인 2표' 중에서 두 번째 표가 유시민에게는 거의 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후원금도 대미를 장식했다. 후원회 통장은 지난달 말 개설되었지만 유 후보의 "경선을 끝까지 완주하고 싶다"는 절박한 의지를 토로하자, 경선 기탁금을 내야 하는 마감일(14일) 하루만에 1억1천만 원이 거치는 기염을 토했다. 지지자들은 '1219원', '1만2190원', '12만1900원'라는 식으로 액수에도 메시지를 담았다. 대통령 선거일인 12월 19일을 의미하는 숫자의 후원금으로 유시민 후보의 본선 진출을 염원한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졌다. 그 이튿날이었다. 곧바로 사퇴를 선언했다. 전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림자 수행을 해온 김태년 의원은 "사전에 상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이해찬 후보도 "내일까지는(강원·충북 개표) 갈 줄 알았는데…"라며 놀란 표정이었다. 즉자적인 것이었다. 사실 유시민 캠프는 전날 밤까지만 해도 고무된 분위기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선거인단 여론조사에서 낙관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울산은 '1위'라는 전갈도 있었다.
되레 '사퇴 원고'를 준비했던 건 이해찬 후보였다. 이 후보는 16일 유시민 후보를 선대본부장으로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후배 동지인 유시민 후보에게 지면 어떡하나, 제주도에 내려가면서 참 걱정을 많이 했다"며 "사퇴의 말을 적어두었다"며 수첩을 들어보였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신의를 가지고 하는 사람이다. 신의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당, 국민과 신의를 지켜왔기 때문에 나는 나를 버리겠다."
사퇴 원고 준비했던 이해찬 "후배에게 지면 어쩌지"
이해찬-한명숙-유시민 단일화 논의에는 종교계, 재야 원로들이 나서기도 했다.
지난 9일 함세웅 신부와 법안스님 등은 세 후보들과 만찬을 겸한 자리에서 세 가지 단일화 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후보 개인의 결단 △원로들의 중재 △경선 결과 등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 것. 이 자리에서 유시민 후보는 "첫 경선 결과에서 이해찬 후보에게 1표라도 지면, 아니 똑같이 나오더라도 내가 접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유시민, 그 둘은 주변의 우려와 달리 이신전심으로 접을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양쪽의 가교역은 유시춘씨(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가 해왔다. 그는 유시민의 누이면서 이해찬 캠프에서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해찬은 유씨를 향해 '간첩'이라고 농을 섞었고, 유시민은 '선발대'라고 표현했다.
유시춘씨는 둘을 "영혼과 의식과 철학의 쌍둥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동생의 중도 하차에 대해선 이같이 평가했다.
"잠재력과 참신성을 갖추고 있지만 선거의 메커니즘을 너무 가벼이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바람이나 이미지로 조직의 한계를 돌파하긴 어렵다. 물론 시간의 한계도 있었다. 28일만에 그 정도의 득표력을 보인 것은 적지 않은 성과다."
김태년 의원 역시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집권을 맡길 정도는 아니었다"며 "하지만 코스닥 벤처주에서 코스피 성장주로 옮겨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시춘 "이해찬-유시민, 영혼과 철학의 쌍둥이"
이제 문제는 이해찬-유시민 복식조가 이뤄낼 파급력이다. 유시민은 단순한 '지원'이 아닌 두 캠프의 '통합'을 얘기했다. 정책부터 캠프, 지지자까지 합친다는 얘기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유시민의 대표적인 팬클럽인 '시민광장'에는 사퇴 소식이 알려진 뒤 "충격입니다", "허탈합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소주 한잔 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들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에 이해찬 지지를 선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이해찬은 1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친애하는 유티즌 여러분께'라는 공개편지를 띄웠다. "사랑하는 연인이 떠난 듯한 허무함에 마음 둘 곳을 모를 여러분들에게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손을 내밀어 달라 청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유시민 캠프의 참모들도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고생했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로 지지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유시민은 이날 청주로 내려가지 않았다. 강원·충북 개표결과가 나오는 현장이었다. 이날 오전 이해찬과의 기자회견에서 "단일화로 승기를 잡았다"고 밝힌 뒤, 캠프 사무실에 하루 종일 머물며 자신의 팬카페에 지지자들이 올린 글을 읽고, 또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직접 캠프 사무실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 상황 속에서는 제 역량이 못미쳐서… 정상적인 선거가 아니잖아요."
"저에게 할 때보다 더 빡쎄게 밀어주세요. 엎어야지."
"다음에 또 해야죠…. 내년 총선에는 경주나 대구로 나가보려구요."
어? 경주나 대구에서 출마? 지난달 말 대통합민주신당 대구시, 경북도당 개편대회에 나와서도 이같은 얘기를 흘린 적이 있다.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해서 확실하냐고 물었다. 기사를 써도 좋다며 다음처럼 말했다.
"나도 객지가 아닌 고향에서 (국회의원으로) 나가고 싶다. 언제까지 영남은 한나라당이 잡고 있어서 안된다고 할 건가. 불리한 지역이라도 누군가는 정치적 생명을 걸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산 유권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또 좋은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현재 고양시 덕양구갑 국회의원이다. 통칭 '일산'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연거푸 두 번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 현재 모친이 대구 수성갑에서 살고 있다. 대구는 유시민의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기도 하다. '바보 노무현'의 길을 걸으려는 걸까?
영남에 도전장... '바보 노무현'의 길 걷을까?
유시민은 "선거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 딱 한번 치러보고 접은 것에 대한 지지자들의 섭섭함이 있는 것 같다. 사실상 양보한 것 아닌가.
"국사를 다루는 일에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양보가 아니라 승복이다. 이번 패배는 결국 전반적인 국민의 뜻이 담겨 있는 결과였다. 선거결과는 그 표차가 얼마가 되었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 표 적게 나왔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아직은 국민들께서 '유시민, 니가 좀 맡아서 해라' 그럴 의향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저조한 투표율로 인해 '국민경선 맞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박스떼기, 동원선거, 구태선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며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캠프를 겨냥했다. 지난 5년 동안 당의장 두 번, 전국 선거 일곱 번을 치른 정동영의 조직력을 협공으로 넘어보겠다?
유시민은 "경선이 끝날 때까지 후보에게 표를 가져다주는 게 선대위원장의 몫 아니냐"고 말했다. 전국을 샅샅이 누비며 100여 군데를 돌겠다고 한다.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위해 뛰던 때 보다 두 배 높은 목표치다. 김태년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쓴소리 대마왕이 되겠다"며 이해찬 캠프에 역동성을 불어넣을 의지를 보이기도 했단다.
1+1=2. 물리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사람의 합에선 반드시 결과가 산술적으로만 나오진 않는다. 화학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해찬과 유시민의 결합은 2가 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이, 반대로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이날 개표 결과도 예측할 수 없게 나왔다. 강원에선 이해찬이 1위를 했지만, 충북에선 정동영이 압승했다. 이긴 표차는 적은데 진 표차는 크다. 주말 4연전 합산 결과는 여전히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순이다. 성과라면 손학규와의 격차를 좁혔다는 정도다. 이제 추석 연휴 뒤 광주전남(29일) 부산경남(30일) 4연전이 남았다. 다들 광주전남에서 혈투를 벼르고 있다. 3자 모두 더 물러설 수 없는 선거다.
대선 후보에서 선대본부장으로 지위를 전환한 유시민... 과연 통할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전국 누비며 이해찬 표 모아오겠다 내년 총선에선 대구나 경주에 출마"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