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난생처음 새끼손가락을 걸다

등록 2007.09.18 21:03수정 2007.10.0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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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벌써 5년째 중풍을 앓고 계신다. 처음 발병 당시 양한방을 불문하고 황금률같이 준엄했던 '3개월 내에 진전이 없으면 가망이 없다'를 새삼스럽게 되새기지 않아도 이제는 치료보다는 요양의 단계에 오래전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아들인 나도 와병전의 어머니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거동의 온전치 못함을 잠시라도 겪어보지 못한 나는 당신의 불편을 상상조차 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답답하실까?'는 생각에 주위의 타박에도 종종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머니가 아프게 되시면서, 농사일에 시달린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컸는지 처음 깨달았고 또 그렇게 최악의 상태에서도 자식걱정은 여전하시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신 직후,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잠시 바람을 쐬고 왔더니 그 사이에 아들의 부재를 알아챈 어머니는 갑자기 사라진 아들이 혹여 나쁜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고선 평소 즐기시던 과일을 한참 동안이나 드시지 못하는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느라 아무것도 드실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하면서 난생처음으로 어머니를 목욕시키기도 하였고 대소변 수발도 들기도 했지만, 그 역시 어머니 입장에서는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프셔도 모성애와 여자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으셨던 터라 특유의 '고집'이라는 벗도 여전히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보약을 드시라는 나와 모든 병원관계자의 집요한 '회유'를 끝내 거부하셨다. 더구나 곤혹스러운 것은 병원비 걱정에 물리치료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물론 병원비 걱정을 하게 한 나의 '못남'이 가장 큰 죄이긴 하다.


실제로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이틀에 한 번꼴로 아니면 사흘에 한 번꼴로만 물리치료를 받으셨지만 실제로는 어머니가 기대하셨던 치료비의 '감량 효과'는 거의 없다. 요즘 같은 의료보험제도가 잘 적용되는 우리나라에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병원비가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어머니의 치료비는 이미 매달 확보되어 진다.


또다시 시작된 설득작업. 물리치료를 매일 받는다 해도 치료비 차이는 거의 없다며 수십 번을 어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른 끝에 겨우 물리치료를 매일 받겠다는 '수락'을 하셨다. 안도의 한숨을 실리는 찰라 어머니가 천천히 새끼손가락을 내게 내미시는 것 아닌가?


얼떨결에 나도 어머니의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살포시 끼웠다. 그 순간 어머니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물론 어머니와 나는 처음으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 것이다.


진실로 꼭 물리치료를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아니면 손녀의 재롱을 무심코 흉내 내서 어린아이처럼 새끼손가락을 내미신 것인지 우매한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처음 한 일이지만 어색하지 않았고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philbook
에도 실립니다.

2007.09.18 21:03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phil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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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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