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유일하게 4개 주가 모여있는 포코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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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와 붙어 지낸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로 지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속되어 있거나 늘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 요인에 의해 두 가지가 반복되는 경우도 있겠지요. 특별히 영토나 국경을 마주하는 지역을 보면 심심찮게 긴장 속에 대립을 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는 조금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하나나 둘, 넉넉잡아 셋도 아니고 무려 4개 주가 함께 인접해 있는 곳. 두 발과 두 손으로 모든 주에 걸쳐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곳은 바로 애리조나,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주에 걸쳐있는 포 코너스(Four Corners)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오면서부터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끼게 됩니다. 하얗고 검던 사람들의 피부가 점점 땅 색깔을 닮아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은 말들은 나로선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능가하는 외계어로 들립니다.
'다소 억양이 격한 스페인어 사투리? 그렇다면 남부 지역에 밀집해 산다는 그 멕시코인들?'이라고 빵과 음료수를 먹으며 찬찬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뭔가 요상한 낌새들이 보입니다. 토테미즘 요소가 가득해 보이는 각종 장신구와 기개 넘치는 옛 조상들의 사진. 그들은 바로 나바호 인디언이었던 것입니다.
한마디 말에 돌아선 인디언늘어지게 하품 한 번 하고 텐트를 걷습니다. 지난 밤 세심하게 신경 쓴다고 했는데도 텐트 안에 모래가 쓸려 들어왔습니다. 한창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차 한 대가 내게로 다가오는 게 보입니다. 필시 내 앞에서 멈춰 설 거란 예상은 어김이 없습니다.
"이 봐. 자네 잘 잤는가?"
"네? 아, 네. 뭐 그럭저럭 잘 잤습니다."
주변 정리하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대꾸합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이 든 나바호 인디언입니다.
"잘 잤다니 다행이군. $10일세."
"네?"
"여기서 잤으니 숙박료를 내야지. 여긴 내 구역이니까."
아니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입니까? 아무런 권고사항도 보지 못했는데 난데없이 와서 자릿세를 달라니요. 그의 뜬금없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제가 알기론 여기는 캠핑장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전 지난 밤에 물 한 번 써 보지 못했고 보시다시피 이런 악조건 위에 텐트를 쳤습니다. 조금이라도 혜택을 받은 게 있다면 모르겠지만 10달러는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흥분도 그렇다고 낙심도 아닌 또렷이 전한 내 말에 그는 잠시 정면을 응시하더니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습니다.
"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알았어. 그럼 주변 정리하고 조심히 떠나. 행운을 비네."
그러고는 다시 차를 돌려 떠나갔습니다. 그는 의외로 너무도 순박해 보였습니다. 그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괜시리 10달러 줘 버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요. 그런데 사막을 빠져나올 때 쯤 알았습니다. 'Camping ground'라는 표지판을 보고서 말이죠.
여기가 캠핑 장소가 맞긴 했구나라고. 좀 더 정확하게 살펴보니 내가 텐트를 친 자리보다 약 1마일 정도 더 가면 캠핑장소가 있었는데 결국 난 캠핑장소가 아닌 그 곳으로 가는 길목에 텐트를 쳤던 것입니다. 밤이었으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당연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