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시위 규정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등록 2007.09.27 08:10수정 2007.09.2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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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자 기사인 <미얀마 사태, 아직은 민주화 시위라 할 수 없다>에 대해 일부 독자분들께서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국민들이 벌이는 시위’이고 ‘군부정권에 맞서 벌이는 시위’인데 어떻게 민주화 시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가 일부 독자분들의 생각인 듯하다. 군부정권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미얀마 민중의 용기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지만, 엄격한 검토 없이 이 사태를 민주화 시위로 규정될 경우에는 제3자들이 책임질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문제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기자 주>

이웃집에서 부부싸움이 난 경우, 그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해석 여하에 따라 결과도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가정문제로 해석될 경우에는 경찰이 개입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형법상의 폭행문제 혹은 상해문제로 해석될 경우에는 경찰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사태의 경우도 그러하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민생 시위로 해석될 경우에는 미국 등 국제사회가 무력적 개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유엔헌장 제2조 7항에서 국내문제 불간섭의무 즉 내정간섭 금지의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에서 발생하는 소요사태가 국내문제로 해석될 경우에는 그것이 과잉진압으로 발전하든 혹은 정권전복으로 발전하든 간에 외국이나 국제기구가 개입할 수 없게 된다. 국내문제 불간섭‘의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반면, 이것이 민주화 시위로 해석되고 나아가서 인권문제로 연결될 경우에는 미국 등이 국제사회를 동원하여 미얀마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인권보호를 위한 내정간섭은 국제사회의 통념상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허용하는 국제법 규정은 없다.  

이 점을 본다면, 미국측이 왜 그토록 미얀마 사태를 민주화 시위로 몰아가려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미얀마 민중의 항거를 민주화 시위로 또 미얀마 정부의 시위진압을 유혈 진압으로 몰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현재의 미얀마 정부를 전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TV 뉴스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언론에서는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이번 사건을 민주화 시위로 규정하고 있다.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노벨재단, 달라이라마 등의 말을 근거로 민주화 시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 미얀마 시위사태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것은 일정 정도는 한국 국민이나 언론인들의 선입견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미얀마 사태는 당연히 민주화 시위일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특별한 고찰 없이 무심코 ‘미얀마 민주화 시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군부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무조건 민주화 시위일 것이라는 관념이 존재하는 듯하다. 한국인들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막부시대에는 일본에서도 수백 년간 군부가 권력을 잡은 적이 있다. 그 시대에도 잇끼라는 농민반란이 수없이 발생했지만, 그것은 주로 민생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일부 국가에서 군부를 통치의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민통치의 방법으로는 미국 등 외세의 압박을 이겨낼 가능성이 희박한 나라에서 예외적인 현상으로 군부통치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권력을 잡고 있으므로 미얀마에서는 당연히 민주화가 쟁점이 되고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면, 적어도 현재까지는 미얀마 사태가 유가 인상 및 물가 급등에 대한 저항의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입견을 버리고 현상을 바라보면, 미얀마 정부의 조치는 무조건 유혈진압일 것이라는 관념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시위 참가자가 얼굴에 피 흘리며 쫓겨다니는 모습을 서울 종로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유혈진압이라고 하여 유엔안보리에 제소해야 할까?

물론 미얀마 정부의 시위진압 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기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진압 수준이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한도를 넘을 때까지는 일단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미국 등 서방 언론이 제공하는 자료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같은 비서방 언론이 전하는 보도도 참고한 후에 ‘미얀마 정부의 진압이 국제사회의 허용 수준을 넘었는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료를 골고루 제공할 책임은 언론에게 있을 것이다.   

우리가 또 하나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꼭 민주화 시위로 평가받아야만 민중의 행위가 성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민생 시위도 성스럽고 소중한 것이다. 미얀마 사태를 민생 시위로 평가한다고 하여 미얀마 민중을 모독하는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제3자인 우리가 별다른 고려도 없이 미얀마 사태를 민주화 시위로 해석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 등 외세의 개입을 도와주는 것이 되고, 이는 미얀마인들의 민족자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얀마 사태가 주변지역과 국제사회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된다면, 미얀마에서 항쟁이 발생하든 혁명이 발생하든 제3자들은 일단 지켜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미얀마의 미래는 미얀마인들의 손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얀마 정부가 질서회복을 위해 일정 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하더라도 일단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만약 미얀마 정부의 진압이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그때 가서 미얀마 정부를 비판하고 또 미얀마 사태에 개입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바라보는 제3자들은 미얀마라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약자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미얀마 내정에 간섭하려는 미국 등 강대국의 편에 휩쓸려 미얀마 정부를 무조건 몰아세우는 것은 신사답지 못한 태도일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민족자결이 소중하듯이, 미얀마인들에게도 그것이 소중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얀마 정권이 잘못된 정권이라면, 그 정부를 전복할 책임과 특권은 일차적으로 미얀마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 전복을 위해서 피를 흘려야 한다면, 그것은 미얀마인들이지 미국인들이 아니다. 미얀마인들이 스스로 피를 흘려야만 그 결실 역시 미얀마인들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에 사태를 진정시키겠다며 조선문제에 개입한 일본군. 사태를 해결한 뒤에 그들이 순순히 돌아갔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조선인들에게 유리한 것이었는가? 혹시라도 미군이 미얀마 땅을 밟게 되면, 미군도 1894년의 일본군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미얀마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해석이 편파적 방향으로 흐를 경우 미얀마에 대한 미국 등의 개입이 정당화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미얀마 사태에 대한 해석은 엄격하고 객관적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특별한 생각 없이 들이대는 민주화라는 잣대가 미얀마라는 나라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얀마 사태 #국내문제 #내정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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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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