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언니들, 어딘가 모르게 남달라!

[2007년 드라마 트렌드 ②] <막돼먹은 영애씨>VS<9회말 2아웃>VS<칼잡이 오수정>

등록 2007.09.27 19:51수정 2007.10.0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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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노처녀 언니들이 변신했다. ⓒ tvn, sbs, imbc

이 시대의 노처녀 언니들이 변신했다. ⓒ tvn, sbs, imbc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줄곧 드라마 소재로 '노처녀'가 각광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잊을 만하면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단골소재로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까지 노처녀는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에 이모 혹은 고모의 역할에 불과했고, 조연으로서 역할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시대가 변화하면서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비로소 노처녀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노처녀 언니들이 이 시대를 풍미해 갔다. 그러면서 조금씩 캐릭터가 정형화되면서 식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단골소재이지만 시청자들은 싫증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노처녀들의 변신이 시작했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 MBC <9회말 2아웃>, SBS <칼잡이 오수정>이 노처녀들의 변신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는 저리 가라!

우리에게 오로지 현실뿐!


가장 180도 변신을 한 것이 바로 '영애' 언니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의 등장하는 영애(김현숙) 언니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나이만 먹고, 직장도 그저 그런 전단지 회사 디자이너에, 뚱뚱하고 스트레스만 받으면 다량의 알코올을 즐기는 그녀.


물론 삼순(김선아)이 언니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극 중에서 삼순이 언니 또한 통통함 몸매에 그다지 예쁘지 않은 외모, 거친 입담과 행동 등. 하지만 삼순이 언니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30대 노처녀의 현실이다.


우선 노처녀가 처한 현실 속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 삼순이 언니는 판타지적인 성향이 강했다. 능력 있는 파티쉐(제빵사)로 백조생활을 했지만 그마저 자신의 사랑하는 남자를 되찾고자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에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이다. 거기에 레스토랑에 취직해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종반부에 이르러 창업할 때도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사실상 창업이 말이 쉽지만 자본금, 장소 선정 등 까다로운 문제가 이만저만 아니지만 삼순이 언니는 아주 보기 좋게 그것을 요리해 낸다. 반면 영애 언니는 직장생활 자체가 고달프다. 대놓고 성희롱하는 대머리 유형관(유형관) 사장에, 능글맞은 윤과장(윤서현) 선배, 2시즌에 정대리(정지순)까지 등장해 영애 언니 속을 긁는다.


하지만 그만두지 못한다. 딱히 갈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에 퍼진 외모지상주의 덕분에 면접에서 외면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뿐인가? 영애 언니는 남자 복도 지지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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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영애 언니, 만만치 않은 현실에 무대뽀로 정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 tvn

까칠한 영애 언니, 만만치 않은 현실에 무대뽀로 정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 tvn

버스에서는 치한을 만나고, 좋아한다는 남자로부터는 기습강간을 당할 뻔하고, 주위 남자들은 ‘덩어리’라 부르며 생수통이나 들라고 시키며, 원준(최원준)과 잠시나마 핑크빛 연애를 시작하려했건만 그마저도 헤어진 여자 친구를 잊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남자이다.

 

영애 언니는 사랑에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 점 또한 삼순이 언니의 로맨스와는 확실한 차별성을 띠는 점이다. 삼순이 언니ㅇ의 삼식이 진헌(현빈)과의 로맨스는 다소 백마 탄 왕자님의 구조로 지극히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했다. 그런 점에서 영애 언니는 삼순이 언니와 대척점에 서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지!


이러한 점은 <9회말 2아웃>과 <칼잡이 오수정>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 두 드라마는 영애 언니처럼 철저하게 리얼리티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노처녀 캐릭터를 변주해 나가면서 변신을 꾀했다. 먼저 <9회말 2아웃>은 참 외모적으로는 거칠 것 없이 예쁘다. 주인공 난희(수애) 언니는 조신한 외모지만 꿈만 있고 능력은 별 볼일 없는 소규모 출판사 기획자로 일한다.

 

그마저 월급도 반씩 나눠주기 일쑤인 그곳, 그는 그 일을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는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꿈이 있어 그 일에 애착을 갖지 못한다. 그뿐이 아니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 엄마에게는 툭하면 ‘미친년!’이란 소리를 듣고 실의에 빠지면 30년 친구 형태(이정진)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동네방네 떠나가라 ‘그냥 걸었어’를 부르거나 ‘서른 즈음에’를 부른다.

 

거기에 한참이나 어린 연하와 사귀느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즉 난희 언니도 삼순이 언니와는 다르게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늘 오락가락이며 중심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더욱이 이 드라마에는 재벌 2세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30년 지기 친구, 잘나가는 광고회사 기획자 형태가 등장할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연하남 정주(이태성)와 형태를 두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한다. 경제력 능력은 없고 오로지 미래의 희망에 기댄 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난희 언니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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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희 언니는 녹록치 않은 현실에 서른 즈음에 노래와 술로 시름을 달랜다. ⓒ IMBC

난희 언니는 녹록치 않은 현실에 서른 즈음에 노래와 술로 시름을 달랜다. ⓒ IMBC

그리고 사실상 그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이별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주가 경제력이 제로가 아니었다면 그를 잡았으리라. 이어 형태와의 로맨스에서 친구와 연인 사이를 왔다갔다했지만 그는 형태의 경제력을 무시하지 못했다.

 

또 그는 열정은 높지만 능력 부재로 인해 신춘문예에 떨어지고 기획자로서 현실과 타협한다. 물론 그러한 타협이 또 다른 꿈을 찾은 것처럼 묘사되었다지만 본인의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난희 언니의 변신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기존 노처녀의 전개방식대로라면 난희 언니는 극적으로 꿈을 이루었어야 한다. 극 중에서 사랑놀음에 빠져버렸던 주인공도 결말 부분에 이르러선 사랑도, 꿈도 달성하는 것이 우리 노처녀들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던 난희 언니는 역시나 노력한 만큼 결과도 얻는 법이라고 신춘문예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방황하던 중 자신이 하고 있는 일도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기획자로서의 변신을 꾀하고자 한다.

 

따라서 난희 언니는 기존 노처녀들이 극 중  절반에 가깝게 사랑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일에서도, 꿈에서도 모든 것을 손에 쥔다는 불변의 법칙을 깨버리고,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줘 점진적으로 삼순이 언니에서 변주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이 나이에 사랑만으로는 부족해!


그렇다면 남은 <칼잡이 오수정>의 수정(엄정화) 언니는 어떨까? 수정 언니는 올해 서른네 살로 아예 현실을 인정했다. 일찌감치 세상살이 돈 없는 인간들은 살기에 버겁다는 것을 깨우치고 속물로 살아가고자 작정했다.

 

그래서 사랑에도 경제적 가치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오로지 가족과 자신이 잘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쥬얼리 숍 매니저로 일하면서 보석의 아름다운 가치보다 잘 팔리는 제품이 필요했던 그녀이다.

 

이러한 수정 언니 캐릭터 때문에 사랑과 돈 사이에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인지 수정 언니의 태도의 진정성은 무엇인지를 재미나게 초중반부까지 이어갔다. 덕분에 수정 언니의 속물근성은 서른을 넘어 어느덧 남자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그녀가 복대와 관장약으로라도 결혼으로 인생역전 하려는 모습에서 우리는 주변부 노처녀 언니들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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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근성을 보여주는 수정 언니, 결혼에 사랑과 경제력 사이에서 방황한다. ⓒ SBS

속물 근성을 보여주는 수정 언니, 결혼에 사랑과 경제력 사이에서 방황한다. ⓒ SBS

물론 후반부에 이르러 수정 언니의 속물근성은 그저 말뿐 속내는 사랑을 추구하는 진정성이 밝혀지면서 칼고(오지호)와의 사랑에 골인하고, 그러한 톡톡 튀는 캐릭터가 감소되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수정 언니의 캐릭터가 삼순 언니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점은 그녀가 결혼에 있어 오롯이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제껏 노처녀가 등장한 드라마에서는 사랑과 결혼에 현실이 개입되지 않았다.

 

적어도 삼순이 언니의 사랑은 재벌 2세와 만남보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해 그러한 현실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그려졌으며, 달자 언니는 강태봉(이민기)이 식당을 하겠다고 나선 소박한 꿈을 지닌 청년임에도 사랑이 먼저였다.

 

그런데 사실상 어떤 노처녀가 사랑과 경제성 두 가지를 저울에 올려놓지 않고 오로지 사랑놀음에만 매진하겠는가? 녹록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생각한다면 속물근성을 전면에 내세운 수정 언니가 더욱 솔직하고 진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수정 언니는 캐릭터 상에서 현실에 입각해 만들어져 보다 이전 언니들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캐릭터로 변신했다.

 

위에서 살펴본  세 드라마의 노처녀 언니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현실이라는 부분이 최대한 부각되어 상대적으로 판타지 지수를 낮춰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보다 우리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며 함께 웃고 울고자 했다. 이 부분이 식상해질 수 있는 노처녀 캐릭터의 수명도 한 뼘 연장했다면 과한 해석일까?

덧붙이는 글 | 다음 편에는 [2007년 드라마 키워드 가족의 변화]가 이어집니다.

2007.09.27 19:5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다음 편에는 [2007년 드라마 키워드 가족의 변화]가 이어집니다.
#노처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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