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꽃물이 첫눈 올때까지 남아 있으면...

소녀보다 고운 이웃 할머니의 생활 감각

등록 2007.10.02 10:33수정 2007.10.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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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화단밭처럼 티 색깔 너무 고와서...
할머니 화단밭처럼티 색깔 너무 고와서...송유미

 봉선화 꽃물이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 진다지요.
봉선화 꽃물이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 진다지요.송유미

늘 아기자기한 화단 같은 텃밭을 지나다니면서 궁금했지요. 누가 이렇게 예쁘게 고추와 토란을 색깔 맞추어 말릴까. 필시 새댁이겠지 상상했어요. 세탁소 옷걸이에다 노끈까지 색깔을 맞추어서 너무  미술적이라, 이  주인공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아니 분홍티를 입은 소녀 같이 봉숭화 꽃물들인 듯, 화사한 웃음의 할머니의 솜씨였습니다.


애련한 주홍빛 꽃빛을 내 뿜는 봉선화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여 있다지요. 아주 먼 옛날  꿈에 선녀(仙女)로부터 봉황(鳳凰)을 받는 태몽을 꾼 후에 낳은 딸이라 해서 봉선(鳳仙)이라고 지었는데, 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아 글쎄 거문고 연주 솜씨가 뛰어나 그 소문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답니다. 임금님은 봉선의 거문고 연주에 늘 행복해 했어요.

그런데 깊은 병에 걸리자, 봉선은 마지막 힘을 다해 거문고를 연주하다가 손끝에서 피가 나오는데도 연주는 그치지 않아, 임금님이 손수 봉선의 손가락을 천으로 감싸 주었으나 결국 죽고, 그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봉선화라고 하네요. 그래서 옛날 언니들은 봉선화물 들인 손톱 끝에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고 믿었을까요?

색깔 곱게 텃밭을 가꾸시는 주인공 할머니는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알로 엑기스를 만들어 뿌려 주셨네요.
색깔 곱게 텃밭을 가꾸시는 주인공할머니는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알로 엑기스를 만들어 뿌려 주셨네요.송유미

은행 엑기스 먹고 자라서 이렇게 곱다고, 채소밭이 고맙다고 하네요.
은행 엑기스 먹고 자라서이렇게 곱다고, 채소밭이 고맙다고 하네요.송유미

붉은 고추와 남색 노끈의 색조화....댕기가 휘날리는 듯
붉은 고추와남색 노끈의 색조화....댕기가 휘날리는 듯송유미

아기자기한 텃밭에 고추며 배추랑 파랑 또 복숭화랑 이름모를 풀꽃이랑 또 선인장이랑 앞으로 겨울나기를 위해, 화단밭을 가꾸어온 이웃 할머니는 이 고추로 혼자의 김장은 충분하다고 하시네요.

어머 할머니 외롭지 않으세요? 아드님은 안계시세요? 여쭤보니 "자식은 아무리 오래 떨어져 살아도 부모 밑에 들어와 살 수 있지만, 부모는 오래 떨어져 살다가는 자식 밑에 들어가서 살 수 없어..."라고 말하셔서, 왠지 그 말에 가슴에 찡했답니다.

은행씨는 약에 쓰고 은행즙은 채소에게 주고...
은행씨는 약에 쓰고은행즙은 채소에게 주고...송유미

어머, 이렇게 예쁘게 색깔까지 맞추어 말리시다니...너무 미술감각이 뛰어나세요.
어머, 이렇게 예쁘게 색깔까지 맞추어말리시다니...너무 미술감각이 뛰어나세요.송유미

할머니의 화단 분홍꽃과 분홍 티 입은 소녀처럼...
할머니의 화단분홍꽃과 분홍 티 입은 소녀처럼... 송유미

할머니가 키운 고추 색깔이 봉선화보다 색깔이 고와서, "어떻게 이렇게 고추를 잘 재배 하셨나요?"하고 물으니, 할머니는 물만 주면 잘 크지 하시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텃밭에 풀도 뽑아주고 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가로수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알을 주어다가 즉석에서 엑기스를 만들어 뿌려주셨어요. 그 어느 텃밭보다 아기 자기 예쁜 이웃 할머니의 텃밭. 정말 보고만 있어도 가슴 저편 뭉클뭉클 뭉게구름처럼 그리움이 피어납니다.


작지만 할머니 혼자 겨울지낼 ..김장은 걱정이 없으시데요.
작지만할머니 혼자 겨울지낼 ..김장은 걱정이 없으시데요.송유미

고추와 토란 줄기를 엮어서 말리는 할머니의 생활 감각은 소녀보다 예쁩니다. 어떻게 이렇게 예술적으로 색깔을 맞추어 말리시는지 정말 탄복이 나왔지요. 혹시 이렇게 고운 색감각으로 평생 살아오신 할머니의 마음 깊이 아직도 첫사랑의 추억이 꽃물처럼 남아 있는 건 아닌지….

그나저나 정말 올 10월에는 봉선화 꽃을 얻어다가 예쁘게 꽃물을 들여볼까해요.


분홍빛 연서처럼 할머니 티처럼 곱죠
분홍빛 연서처럼할머니 티처럼 곱죠송유미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 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 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이 예 있나니
화창한 봄 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
<울밑에선 봉선화> 김형준 작사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그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블로그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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