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고전건축의 시학
동녘
고전건축인 그리스 신전건축의 특징은 특이한 기둥배열(주열,柱列)을 사용한 점이다. 건축 용어로는 이를 오더(order)라고 한다. 이같은 그리스 신전건축의 오더 양식을 발생 순서로 나열하면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트 순으로 나눠진다.
조각가 피디아스와 건축가 익티누스가 설계하고 건축가 칼리크라테스가 감독해 BC 447년에 기공하여 BC 438년에 준공한 아테네의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은 대표적인 도리스식 오더이다.
BC 421년 건축가 필로크레스의 지도하에 기공되어 BC 393년에 완성된 아테네의 에렉티온(Erechtheion) 신전은 이오니아식 오더로 아테네 최성기 최후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BC 174년 건축가 코수티우스가 설계한 올림피움(Olympieium) 신전은 코린트식 오더의 대표 건축물이다.
이 세가지 오더는 로마시대로 넘어가면서 토스카나와 콤포지트를 포함해 다섯가지 형식의 오더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인 고전건축은 모두 다섯가지 오더양식으로 설명된다.
이같은 오더양식은 고전건축의 평면과 입면, 건물의 배치에 이르는 고전건축만이 담고 있는 건축양식상 특징적인 성격과 형태 중 하나다. 이 고전건축 양식은 18~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고전주의 건축으로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복고와 모방을 통해 고전건축의 기본적인 특징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활용된 것이다.
이는 고전건축의 특징인 명료성, 기본적이고 간결한 주제들을 통한 분할, 표준적이며 몇가지 조합형 배치들을 통해 얻어지는 통일성에 따른 매력 때문이다. 이 배치들의 종류는 적지만, 그 융통성과 적용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것이 관련 학자들의 분석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건축물로 대표되는 고전건축 이렇듯 <고전건축의 시학>(알렉산더 초니스.리안 르페브르 저/동녘 발간)은 고전건축이 제작되는 방식과 고전건축이 형식체계로서 작동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탐구하고 있는 건축전문서적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시학(poetics)'이라는 용어는, 제작한다는 뜻을 갖는 고대 그리스어의 동사 포이에인(poiein)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시짓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지적, 육체적 제작에도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
고전적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의 사회계층 구조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귀족(classici)의 사회질서와 관계가 있다. 공화정이나 절대왕권 혹은, 새로운 권력형태를 강화시키는데 고전건축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은 건축에 간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시학과 수사학에 대한 고전문헌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들이 고대와 르네상스 이후 구질서의 시대가 끝나기까지 '교양있는 대중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은 음악, 문학 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고전건축의 시학>은 고대 로마시대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에 이르는 고전적 전통의 거장들을 하나로 잇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전건축에 있어 건물을 구성하는 전범 체계를 세 단계의 형식적 장치들로 요약한다.
첫째는 구성 규칙(taxis), 이는 건축작품을 부분으로 분할한다. 둘째는 종(genera), 이는 구성 규칙에 따라 분할된 구획에 자리 잡는 개별적 요소들이다. 셋째는 균제(symmetry), 이는 각 요소들 간의 다양한 관계를 말한다.
구성 규칙은 건물을 부분들로 나누고, 나눠진 구획에 건축요소들을 집어넣어 일관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즉, 간격을 갖는 구획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이를 연속시켜나감으로써 건축요소들이 자리 잡는 방식을 규제한다.
구성 규칙은 격자와 삼분할이라는 두 하위단계를 포함한다. 고전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직교 격자 도식은 주로 직각으로 만나는 직선들로 이루어진다. 삼분할 도식은 출발영역과 중간영역, 도착영역을 표식하는 도식을 엄격하게 지키는 문학과 음악 등 고전예술의 모든 형식적 표현에 나타난다.
이같은 구성 규칙에 따라 건축적 구성에 질서가 부여되고 나면 건축적 요소로 채워질 준비가 된다. 고전건축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고전건축의 요소들이 언제나 특정한 관계들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묶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토스카나식, 콤포지트식 오더양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균제는 건물을 구성 규칙을 통해 분할하고 또한 종을 구성하는 묶음의 요소들을 선정하고 나면, 이 건축요소들을 설정한 분할 내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균제는 건축요소들간의 모든 관계를 포괄한다.
고전건축을 이루는 구성 규칙, 종, 균제이 책은 시를 분석할 때 사용하는 운율 분석을 활용해 '고전적 논리가 명료한' 건축작품들의 평면을 분석하기도 한다. 또한 고전적 질서의 한계들로 인해 탄생한 '병렬 구성 규칙(parataxis, 건축적 행렬)'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낯설고 복잡한 건축용어들이 많은 관계로 일반독자들이 접근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예상되는 이 책은, 각 장 마다 역주를 달아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뒷면에는 전체적인 용어해설을 첨부하고 있다.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먼저 다가온 문제는 고전건축에 관련된 용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였다"는 역자의 고백은, 고전건축을 다룬 이 책에 대해 느낄 독자들의 난해함을 대변하고 있는 듯 싶다.
고전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문학, 음악, 수사학과 같은 다른 분야의 지식을 결합하여 고전건축에 대한 독특하고도 해박한 해석을 내놓고 있는 이 책은, 고전건축에 대한 전문 입문서다.
고전건축의 시학
알렉산더 초니스.리안 르페브르 지음, 조희철 옮김,
동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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