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추모제에서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 앞에 놓인 영정사진에 헌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3개월 남짓 된 1948년 12월 1일, 제헌국회에서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소위 치안유지법은 일제말기(1941년)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조선반도에만 적용하던 가혹한 식민지 통치수단으로, 우리의 독립투사들, 일본의 지배에 순종적이지 않은 소위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을 사상범으로 몰아 처벌하던 법이었다. 미군정 3년 동안 친미파로 변신하여 다시 득세한 친일 부역자들이 국권을 장악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치안유지법은 무덤에서 부활하여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이 되었다.
제정당시 소장파 의원들은 이 법이 정치적 악용의 위험이 너무나 크다는 이유로 격렬히 반대하였는데, 이 우려는 바로 현실이 되었다. 이듬해인 1949년의 국회프락치 사건, 1958년의 진보당 사건, 1973년의 최종길 교수 사건, 1975년의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 등 이 법이 만들어 낸 정치적 조작사건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이 정권 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송두율 사건, 최근의 전교조 통일위원회 김맹규·최화섭 사건, 사진작가 이시우 사건들을 보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언제라도 이 법으로 처벌받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위험성 '마음 속 처벌'국가보안법이 왜 위험한가? 죄형법정주의는 죄와 형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할 것을 요구하고, 형사법은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은 너무나도 포괄적인 규정들이 많아서 독재정권이 얼마든지 멋대로 해석할 수 있으니 마음 속에 가진 '사상'만으로도 처벌대상이 된다.
사회주의 사상은 물론이요 체제에 도전하는 사상을 연구하거나 토론하거나 읽어보기만 해도, 아니 그러한 문서를 가지고 있기만 해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을 읽거나 토론하면 그것은 북을 찬양, 동조하는 것이요, 심지어 이미 고전이 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것이라 하니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 법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구체적인 행위가 없어도, 소위 '반국가단체', 다시 말하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하거나 여기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처벌한다. 또 반국가단체를 찬양·선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소위 '이적단체' 조직·가입도 처벌한다.
얼핏 생각하면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폭동이나 살인 따위의 구체적인 행위까지 저지르거나 시도한다면 그때는 마땅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체를 구성한 것, 가입한 것만으로 처벌하면 합법적인 체제변혁운동이나 사회운동 역시 설 자리가 없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모호한 법규정을 끌어다 붙이고 단체의 목적을 왜곡하여 정부참칭·국가변란의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덮어씌우면 벗어날 길이 없다. 과거 통일운동·반독재운동·노동운동·학생운동 단체들이 수없이 이렇게 이 법 위반의 누명을 쓰고 처벌되었다. 재일 민단계열 인사들이 유신독재 반대운동을 목적으로 결성한 한통련(구 한민통)이 유신정권에서 이렇게 반국가단체의 누명을 쓰고 2003년까지 30년간 귀국이 금지되었다. 그런데 검사는 최근 사진작가 이시우씨 사건에서도 그가 반국가단체인 한통련 사람과 회합하였다고 기소하고 있으니, 참으로 위험하다.
셋째로 형사처벌법규의 개념은 포괄적이거나 모호하여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이 법은 반국가단체·이적단체·군사기밀·국가기밀·찬양·고무·선전·선동 따위의 확정할 수 없는 모호한 일반개념을 차용하여 죄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니 공안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끌어다 붙일 수 있겠고, 법원이 독재정권에 맞서지 못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기에 과거 공안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반독재운동 단체 등을 수 없이 반국가단체로 낙인찍었고, "제주도청이 신제주에 있다"는 사실도 국가기밀이라며 처벌했다. "북한도 사람이 살만 하다더라"라고 말한 것은 물론이요, 당초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만들어 널리 알려진 적기가(赤旗歌)를 취객이 흥얼거린 것도 반국가단체 북한을 찬양한 것이라 하여 처벌했다. 심지어 말다툼 중에 "빨갱이만도 못하다"고 말한 것도 빨갱이를 찬양한 것이라 하여 기소한 정신 나간 검사도 있었으니, 정말 위험하지 않은가?
'빨갱이만도 못하다'고 말한 것도 빨갱이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