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당선작유동적 형태가 독특하다고 홍보하는 '시작작품'으로 동대문운동장의 삶이 담길까.
서울특별시
'신데렐라 맨'처럼 등장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명품이 아주 잘 어울려 보인다. 훤칠한 키에 핸섬한 풍모에 이미 명품만 걸친 듯하고, 어떤 명품을 걸치건 최고의 모델이 될 듯하다.
그래선지, 오세훈 시장은 유독 '명품 발언'이 많다. '서울 도심을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미래형 세계적 명품 도시로 재창조, 서울을 첨단 명품 도시로, 하이서울페스티발을 명품 축제로, 서울시청을 명품 건물로, 명품 왕십리 뉴타운, 용산역세권 개발을 명품 수변도시로' 등 그야말로 명품 타령이다.
'명품'이라는 말은 유행어이긴 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명품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광교 신도시를 명품 신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명품 발언은 도가 지나치다.
서울시장으로서 오세훈은 제발 좀 명품 좀 벗어버리면 좋겠다. 한 도시의 시장, 그것도 대한민국의 리더 도시인 서울의 시장이 '명품, 명품'하는 것은 격에도 맞지 않고 자칫 경박한 시류를 부채질할 뿐이다.
명품 타령에 숨은 거짓과 가식 '명품'이란 말이 과연 건강한 말인가? '짝퉁 명품'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 중독증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정도를 지나쳤다. 최근 스캔들을 뿌리는 누구처럼 명품만 걸치고 명품만 선물하면서 자신도 명품 축에 든다고 포장하다가 그것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우리 세태 아닌가. 명품 타령은 '가식이 통하는 우리 사회, 껍데기에 유혹되는 우리 사회'의 부박한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명품의 원래 뜻은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브랜드 상품을 말한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브랜드를 수없이 확보한 서구권에서는 정작 '명품'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예컨대, 영어에는 '명품'은 'luxury goods'(사치품) 정도로 번역될 뿐이다.(네이버 사전의 예문이 재미있다. Japanese like luxury goods. 일본 사람의 명품 중독증을 비웃는 예문인데, 한국 사람의 명품 중독증도 그에 버금간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도자라면 오히려 명품 경계령이라도 내려야 할 판인데, 서울시장이 나서서 명품 중독증을 부추기니 뭔가 잘못될 징후다. 그나마 명품은 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고파는 고가 사치상품일 뿐이다. 하지만 도시와 건축은 고가 사치품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고,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시민의 공공성을 담는 공간이며, 쉽게 사고팔고 버리는 상품이 아니라 한번 만들면 아주 오래 가는 공공자산이다. 그러니 도시나 건축에 명품이라는 말을 자주 붙이는 것은 영 품격 떨어지는 일이다.
동대문운동장 당선작의 값비싼 명품 한 장
최근 동대문운동장 국제공모 당선작은 이런 명품 중독증에 대한 우려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야말로 '비싸고 실속 없는 명품'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동대문 패션'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부상한 동대문 패션 상권의 지속적인 발전과 마케팅을 위해서 디자인센터 기능을 동대문운동장 터에 앵커를 삼는 것은 좋은 목표다. 이름이 '월드 디자인 플라자'라는 그리 세련되지 못한 영어 이름이긴 하지만 새로운 디자인 인프라 기능을 조성하는 목표에 반대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이런 목표 하에 '초청 국제공모'를 한다고 해서 나는 모처럼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초청 공모란 실력이 입증된 작가들을 지명하여 실비를 지급하며 안을 모집하는 방식이므로, 주최 측에서 프로그램을 잘 짜고 철저하게 준비하면 제대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커서 최근 선진국의 국제공모는 많은 경우 초청 공모로 이루어진다. 동대문운동장의 경우에 국외 4인, 국내 4인으로 지명하여 나는 열심히 기대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허망하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는 '명품 건축가에 의한 명품 설계'라고 잔뜩 홍보를 하고 언론들도 따라서 박수치는 분위기이지만, 과연 실속이 있나? '물결무늬가 동대문운동장을 덮었다, 조경과 건축이 환상적으로 만났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형태'라는 둥의 피상적인 찬탄과, 안 자체보다도 스타건축가를 더 조명하는 분위기도 극성이다. 이라크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스타 건축가, 게다가 여성 건축가라며, 명품 옷을 화려하게 두른 자하 하디드의 사진까지 실으며 드디어 우리도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한 명품 건축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경박한 분위기가 과연 정상인가. 어떤 문제가 있을까?
첫째는 '값비싼 그림 한 장'을 뽑았다는 사실이다. '그림의 시각적 효과' 때문에 뽑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단 당선작은 눈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돈은 얼마나 들까? 벌써 서울시가 잡은 예산 2300억원보다 훨씬 더 많은 3500억원이 들 것이란다.(<내일신문> 2007.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