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간다, 춤추는 학교에!"

[해외리포트]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 만드는 '홈커밍 파티'

등록 2007.10.11 19:20수정 2007.10.1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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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구두가 더 예뻐요? 왼쪽, 오른쪽?" ⓒ 한나영

"어떤 구두가 이 드레스하고 더 잘 어울려요? 왼쪽? 오른쪽?"
"오른쪽."
"1 대 3."

오른쪽 구두라고 대답하자 왼쪽 손가락 한 개, 오른쪽 손가락 두 개를 이미 치켜들고 있던 자넬의 오른쪽 손가락이 하나 더 펴진다. 이렇게 양쪽 손가락을 치켜든 자넬이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구두가…?"

자넬은 왜 구두를 짝짝이로 신고 다니면서 "왼쪽? 오른쪽?"을 외치고 다니는 걸까. 바로 홈커밍에 신고 갈 구두를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젊음의 분출구, 홈커밍댄스

파티장을 기웃거리는 파티족을 뜻하는 '파티 애니멀(party animal)'이라는 말이 사전에 나올 정도로 파티 문화가 발달한 미국. 이 곳에서는 파티라는 말은 고등학생에게도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4년(9~12학년) 동안 수많은 파티를 경험하게 될 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파티는 무엇일까. 바로 프롬(prom)과 홈커밍(homecoming)이다. 

프롬은 졸업을 앞둔 12학년 시니어를 위한 무도회로 학년이 끝나는 5월에 열린다. 검정 턱시도와 긴 드레스로 한껏 차려입은 시니어와 11학년 주니어들이 참석하는데, 대학이나 사회로 진출하기 전의 마지막 학창시절 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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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 않은 10학년 아시아계 소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 한나영

홈커밍은 프롬에 비해 좀 더 캐주얼하다. 9월 새 학년이 시작되고 나서 한 달쯤 지나 열리는 홈커밍엔 모든 학년이 참석할 수 있다.

여학생들의 파티복도 프롬 때보다 더 간편하고 길이도 짧다. 남학생들도 턱시도 대신 셔츠와 정장 바지로 멋을 부린다. 물론 턱시도를 입는 남학생들도 있긴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파티가 학교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공부만 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고리타분한(?) 학교에서 화려한 파티가 열린다고?

학교와 파티. 왠지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지만 사실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학교도 화려한 파티장으로 금세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이 학교 신문인 <뉴스 스트릭스(News Streaks)> 9월 28일자는 바로 다음날인 29일 토요일에 열리는 '2007 홈커밍'을 앞두고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홈커밍을 소개했다. 

레드카펫 깔고 제임스 본드처럼 '홈커밍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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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신문에 실린 '홈커밍 007.' ⓒ 한나영

이번 홈커밍 주제는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007이다. 학생회장 닉 멜튼은 이 주제와 관련하여 댄스장소로 사용될 학교 식당의 데코레이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홈커밍이 열리는 카페테리아에는 레드카펫이 깔리게 됩니다. 카페테리아 전면에는 007영화에서와 같은 데코레이션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제임스 본드와 전설적인 본드걸의 쿨한 실루엣도 설치될 것입니다. 

먹을 것이 준비된 컨세션과 테이블은 완전히 하와이풍으로 꾸며질 것이며 하와이 화환과 풀로 엮은 훌라도 내걸릴 예정입니다.

이번 홈커밍에 참석하는 학생들에게는 제임스 본드 선글라스와 턱시도 모양의 티셔츠가 제공됩니다. 이번 2007 홈커밍은 정말 멋진 홈커밍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제임스본드 선글라스와 턱시도 모양의 티셔츠까지 주고 각종 과일과 초콜릿 등의 풍성한 디저트가 제공되는 홈커밍 입장료는 얼마? 혼자 가는 싱글은 13불, 파트너와 함께 가는 커플은 25불짜리 티켓을 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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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받은 제임스본드 선글라스와 턱시도 티셔츠. ⓒ 한나영

학교 신문은 커플들을 위한 멋진 저녁 식사 장소까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왜냐하면 홈커밍은 밤 8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커플들에게는 저녁 식사 때 이미 데이트가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을 생각하는 커플이라면?] '애플비'나 '오찰리'.
[고기를 좋아하는 커플이라면?] 피가 보이는 덜 익은 촉촉한 고기가 나오는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나 '텍사스 로드하우스.'
[집에서 만든 저녁식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집에서 만든 음식만큼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 둘만을 위한 멋진 테이블보·양초·장미가 꽂힌 꽃병을 준비하고 로맨틱한 저녁을 위해 부모님이 들었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앨범도 꺼내 놓는다.

이렇게 시작된 홈커밍댄스는 자정이 되면 '땡'하고 끝난다. 마치 신데렐라가 갔던 무도회처럼 열두 번의 종이 울리면 으슥했던 파티장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다.

춤을 추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 학생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파티장을 떠나게 된다. 학교 주차장은 파티가 끝나는 자정 시간에 맞춰 자녀들을 태우러 온 부모들의 차로 불야성을 이룬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커플들의 다정한 포옹도 눈에 띄고 내년을 기약하는 싱글들의 씩씩한 작별인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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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커밍 파티를 끝낸 뒤 밖으로 나와 여흥을 즐기는 학생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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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커밍 파티가 끝난 뒤 밖으로 나온 멋진 차림의 커플.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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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들의 차로 불야성을 이룬 학교. ⓒ 한나영


홈커밍을 지키는 파수꾼들

그런데 이렇게 멋진 파티를 즐기는 10대 남녀들이 한자리에, 그것도 으슥한 밤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고 전문 DJ가 선곡하는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로맨틱한 곳에 있는데 혹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분위기에 취해서, 사랑에 취해서 말이다. 비록 장소가 학교라고는 하지만 부모로서는 충분히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사고는 없다. 아니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파티장에는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 술이 반입되지 않으며(탄산음료도 없고 오직 물만 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감시의 눈초리가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청춘 남녀들을 감시하는 사람은 누구? 바로 홈커밍 파수꾼을 자처하고 나선 학교 선생님들이다. 다음은 해리슨버그 고등학교에서 기하학을 가르치고 있는 코벨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전한 이야기다.

"얘들아, 나도 오늘 밤에 홈커밍 간다. 거기서 보자. 선생님도 춤출 거냐고? 아니, 나는 거기 있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풍기문란'을 감시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이렇게 자리를 지킨다. 특히 교장선생님과 세 분 교감 선생님은 이런 행사가 있을 때면 언제나 자리를 빛내는 '붙박이 감시자'다. 재미있는 것은 젊은 교감인 총각 냅(Mr. Knapp) 선생님은 그의 애인과 함께 이번 홈커밍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홈커밍 이렇게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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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커밍을 준비하는 소녀들이 노마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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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 에리카가 친구들의 화장을 해주고 있다. 곁에 선 사람은 에리카 엄마. ⓒ 한나영

기자는 이번 홈커밍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취재할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이 컬러가드(color guard)인 노마가 이번 홈커밍을 준비하는 컬러가드 단원들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 컬러가드는 풋볼 경기가 있을 때 마칭밴드와 더불어 하프타임 공연을 주도한다. 

여섯 명의 컬러가드들은 노마 집에 모여 홈커밍을 준비했는데, 열성적인 노마는 이들 10대 소녀들의 홈커밍 꽃단장을 돕기 위해 자기가 아는 전문가를 부르기도 했다. 모두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꽃단장 도우미들이었다.    

[전문가 1] 네일 아티스트
노마의 조카인 전문 네일 아티스트가 직접 와서 소녀들의 손톱과 발톱을 담당했다. 매니큐어와 페디큐어의 색깔은 각자 취향에 따라 선택했다.   


[전문가 2] 헤어 디자이너
전문가는 아니지만 거의 전문가 수준인 컬러가드 지도교사 켈리 선생님이 왔다. 선생님은 드레스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꼬아서 위로 올렸다. 다섯 명 소녀들의 머리가 모두 공장에서 찍어나온 것처럼 똑같다. 

[전문가 3] 메이크업 아티스트
파티에서는 메이크업도 중요한 요소.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12학년 에리카가 맡았다. 에리카는 모든 아이들의 화장을 도맡았는데 함께 온 에리카 엄마도 전문가가 되어 딸의 메이크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했다. 

[전문가 4] 사진사
각자 준비해 온 드레스를 입고난 후 사진사가 들이닥쳤다. 바로 노마의 사촌이었다. 좋은 카메라를 들고 온 노마 사촌은 조카의 홈커밍댄스가 마치 자신의 일이기라도 한 양 즐거워하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이렇게 준비를 마친 소녀들은 '007 홈커밍'이 열리는 학교로 가기 위해 밴에 올랐다. 이들을 태우고 갈 노마도 아주 신이 났다. 꽃단장을 한 화려한 소녀들이 차에 오르자 차 안은 온통 꽃밭이 되었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하는 소녀들. 활짝 핀 얼굴을 보니 적어도 이 날만은 아무런 고민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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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디자이너 켈리 선생님의 작품과 멋을 낸 손톱.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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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를 입은 소녀들, 본드걸 흉내를? 창문에 앉은 검은 고양이도 중요한 소품.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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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단장을 끝내고 학교로 출발! ⓒ 한나영


홈커밍은 중요한 원기회복제

해리슨버그 고등학교에선 오후 2시 50분이 되면 모든 수업이 끝난다.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3시 20분. 우리나라 초등학생 같은 여유있는 시간표다. 하지만 미국 고등학교 생활이 내내 이렇게 신선놀음(?)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곳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만평에도 종종 나오듯 미국 학교는 숙제와 퀴즈·테스트가 엄청 많다. 게다가 학업 외에 밴드나 스포츠같은 과외 활동, 자원 봉사활동,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미국 고등학생들도 피곤에 지쳐 있다.

이런 가운데 학년 초와 학년 말에 열리는 홈커밍이나 프롬, 또는 학기 중간 중간에 있는 파티는 학생들의 활력을 되살려주는 원기회복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이런 파티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학생회 주도로 이루어지다보니 학생들의 반응도 좋은 것 같다.
#홈커밍 #프롬 #고교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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