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못이룬 부자상봉, 오누이 만남으로 행복해

유일한 혈육인줄 알았던 임씨에게 일곱 동생이 생겼다

등록 2007.10.12 08:06수정 2007.10.1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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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가 적적히 내리던 7일 오후 전남 영광군 영광읍 신평마을에 반가운 손님을 맞는 마을잔치가 한창이다. 그 반가운 손님은 바로 루츠키나(임) 옐레나(40)씨다. 그녀가 찾는 사람은 바로 40년 만에 만나는 큰 오빠 임광열(67)씨다. 이들의 만남에는 67년을 뛰어넘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1940년 일본에 의해 사할린의 한 탄광으로 강제징용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이 마을출신이며 임광열씨의 선친인 고 임수종(1918년생)씨다. 임씨는 당시 가정을 이루고 있었지만 아내의 임신사실도 모른 채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 후 귀국은 꿈도 못 꾼채 탄광에서 갖은 고초를 겪던 임씨는 1950년 현지에서 안나 옐리세예와(1925년생)씨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3남4녀의 자녀 중 막내딸이 옐레나씨다.

 한편 고국에 남겨진 임씨의 부인은 아픈 상처를 뒤로하고 아들을 낳게 되었으며 그가 바로 임광열씨다. 태생이후 한평생을 선친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게 가장 큰 한이던 큰아들 임씨는 1981년경 타국에 있는 선친의 소식을 접하게 되어 전달여부도 모르는 첫 편지를 쓰게 된다. 다행히 이 편지는 일본 재일한국인회를 통해 현지에 있는 아버지 임씨에게 전달됐다. 
 
 큰오빠 임광열씨와 막내동생 옐레나씨가 만났다
큰오빠 임광열씨와 막내동생 옐레나씨가 만났다채종진
큰오빠 임광열씨와 막내동생 옐레나씨가 만났다 ⓒ 채종진

 
옐레나씨는 “큰오빠에게 첫 편지를 받았을 때 아버지는 목 놓아 울었어요. 편지가 올 때마다 우리 마음도 뒤숭숭했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녀는 또 “한국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편지를 받기 시작하던 아버지는 제가 13세쯤 되던 해에 당시 소련국가 기관에 한국행 출국허가를 요청했지만 미성년자를 남겨놓은 출국허가는 불가하다는 구소련법 때문에 그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막내딸 옐레나씨가 소중히 간직한 고 임수종(1918년생)씨의 사진
막내딸 옐레나씨가 소중히 간직한 고 임수종(1918년생)씨의 사진채종진
막내딸 옐레나씨가 소중히 간직한 고 임수종(1918년생)씨의 사진 ⓒ 채종진

 
큰아들 임씨로부터 첫 편지를 받았던 4년 뒤인 1985년, 평소 간장염을 앓던 아버지 임씨는 고국에 남겨둔 아내와 단 한번 얼굴도 보지 못한 큰아들을 가슴에 담고 끝내 고국에 발을 들이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다행히 당시 장례에 참석한 지인들의 도움으로 손 ·발톱과 머리카락 등 표신을 우편으로 받은 큰아들 임씨는 고향땅에 산소를 쓰게 됐다.
 
이러한 사연을 접한 사할린 현지 새고려신문사와 대한적십자의 협조로 옐레나씨는 부모사망자녀모국방문단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이달 12일까지인 7박8일간 일정으로 한국에 방문, 아버지 고향인 영광읍 신평마을에는 1박2일 일정으로 오게 된 것이다.

  현재 사할린에서 돌린스크기술전문학교 부교장인 옐레나씨는 “생전에 아버지가 말하던 고국을 방문해 큰오빠를 꼭 한번 뵙고 싶었으며 이 땅의 흙 한줌을 가져가 아버지 묘에 뿌려 고국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말하며 “이곳에 와보니 너무 즐겁고 행복해 다른 가족들과도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평생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온 큰아들 임씨도 “아버지를 못 뵌 것은 한이 되지만 예쁜 막내 동생을 포함해 7명의 동생들을 얻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올 가을 추수가 끝나면 가족과 같이 아버지 계셨던 곳을 방문할 예정이며 형제들을 만나 그간의 못 나눈 정을 나눠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막내동생 옐레나씨가 큰오빠 임광열씨에게 상추쌈을 먹여주고있다
막내동생 옐레나씨가 큰오빠 임광열씨에게 상추쌈을 먹여주고있다 채종진
막내동생 옐레나씨가 큰오빠 임광열씨에게 상추쌈을 먹여주고있다 ⓒ 채종진
 사할린에서 찾아온 옐레나씨를 반기는 마을주민들
사할린에서 찾아온 옐레나씨를 반기는 마을주민들채종진
사할린에서 찾아온 옐레나씨를 반기는 마을주민들 ⓒ 채종진
 큰오빠 임광열씨 가족과 옐레나씨가 한자리에 모였다
큰오빠 임광열씨 가족과 옐레나씨가 한자리에 모였다채종진
큰오빠 임광열씨 가족과 옐레나씨가 한자리에 모였다 ⓒ 채종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영광신문에 보도 되었습니다.

2007.10.12 08:06ⓒ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영광신문에 보도 되었습니다.
#강제징용 #사할린 #옐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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