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감머구트(Salzkammergut)는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빙하호수 천국이다. 나는 이번 유럽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오스트리아의 잘츠감머구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 전, 내가 찾아본 여행 자료에서 수많은 사람이 잘츠감머구트의 풍광에 감탄하는 글을 남기고 있었다.
내 가족은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Sound of Music Tour)’버스를 타고 잘츠감머구트로 향했다. ‘소금을 담은 창고’라는 이름의 잘츠감머구트를 찾아가는 버스는 동쪽으로 30Km 정도를 달렸다. 버스는 오스트리아 남동부의 해발 500~800m에 이르는 시원스럽고 푸른 구릉지대를 천천히 이동했다.
창 밖으로 2000m에 이르는 설산이 버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한 여름이고 이상고온 현상 때문인지 산 정상의 눈은 희끗희끗하게 자취만 남기고 있었고 알프스의 눈 녹은 근육질 암벽이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 보고 있었다.
버스는 약 40분을 달려 잘츠부르크 동북쪽의 몬트제(Mondsee)에 닿았다. 여행자들이 몬트제에서 버스를 내리는 이유는 몬트제 호수와 성 미카엘 성당(st. Michael Cathedral) 때문이다. 이 성당은 원래 12세기에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지어졌다가, 14세기에는 오스트리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고딕 성당으로 다시 고쳐 지어졌다. 현재와 같이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18세기 초에 완성된 것이다.
여행자들이 성 미카엘 성당을 보면서 큰 감흥을 느끼는 것은 성당 건축물의 유구한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1964년 4월에 이 성당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이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폰 트랩 대령과 마리아 오거스트가 결혼식을 올렸던 성 미카엘 성당은 영화 촬영 후 무려 40 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아담한 도시인 몬트제에서 이 성당은 눈에 띄는 가장 큰 건물이다. 성당 건물은 최근에 보수를 마친 듯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대칭형의 두 첨탑이 예쁘게 자리한 이 성당은 더 이상 푸를 수 없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서 있었고, 성당 외부 벽면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색인 황금색이 햇살을 받아 더욱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할 길 없는 성당 앞의 광장을 걸어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꽤 웅장한 성당 건물에 비해 성당 입구는 작고 아담했다. 건물 입구의 기념품 가게를 통과해 성당 안에 들어서니, 장엄한 성당 내부의 정면이 다가섰다. 제단 앞의 넓고 높은 계단이 성당을 더욱 장엄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온도도 쾌적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서 내가 초등학교 때 본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영화 속의 검은 색 벽면과 화려한 황금색 조각장식이 내 머릿속의 기억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조그만 극장 2층에서 숨죽이며 감탄하던 성당 내부 기둥의 현란한 조각상이 바로 내 눈앞에 그대로 있었다.
성당 왼편에는 약간의 헌금을 내고 촛불을 밝히며 기도하는 곳이 있다. 양초에는 성 미카엘 성당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나의 딸은 나에게서 헌금을 받아가더니 양초에 불을 밝히고 기도를 올렸다. 한국에서 성당에 다니지 않는 녀석이 지금 무엇을 기도했을지 궁금했지만, 어떤 소원을 빌었느냐는 아빠의 질문에 녀석은 비밀이라고 했다.
미카엘 성당은 유럽의 거대한 다른 성당들에 비하면 그리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약간은 상품화된 성당이지만, 나는 이 성당 내부에서 전혀 상업성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이 성당에서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성당에 비해 성당 내부가 눈에 익어서일까?
나는 가족과 함께 중앙 통로 옆의 좌석에 앉아보았다. 이 성당은 실제 몬트제 마을 주민의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영화 속의 대령과 마리아는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여행자들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나는 잠시 그들의 결혼식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뮤지컬 영화, 추억 속 장면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나를 매혹시키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 성당은 종소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성당 내부를 보고 있으니 영화 속 종소리가 연상되었고, 그 종소리는 마치 환청으로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내 귀속으로 대령과 마리아가 결혼할 때 연주되는 오르간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오르간과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서 수녀들이 ‘프로세셔널 앤드 마리아(Processional and Maria)'를 합창하는 소리가 성당 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의 30년 전 영화 경험은 성 미카엘 성당 답사에 결정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당시 극장 안 나의 앞좌석에는 이국적인 알프스의 풍광과 장려한 문화유산, 경쾌한 뮤지컬에 찬탄을 금치 못하던 여고생 누나들이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불현듯 30년 전의 사람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들의 넋을 빼놓았던 영화 속의 성당 정경이 내 눈앞에 현실로 포개어져 있었다.
시간은 흘러, 열 살 된 딸과 나를 믿고 의지하는 아내가 성당의 예배석에서 영화가 아닌 실제의 성당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한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성당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제 또 30년이 흐르면 나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나의 딸은 어떻게 변해있을 것인가?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성당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성당 입구의 기념품 가게에서 뭔가를 사고 싶어 머뭇거리는 딸을 설득해서 성당 밖으로 함께 나왔다. 뜨거운 햇살이 그늘 없는 성당 앞 광장을 여전히 내리쬐고 있었다. 무더운 태양 아래 조그만 분수대가 너무 상쾌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뿜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마치 술에 취한 듯 몽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의 딸이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다. 여행 오기 전 ‘사운드 오브 뮤직’ DVD에 흠뻑 빠졌던 나의 딸도 행복한 듯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말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0.12 09:18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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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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