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는 몇개의 손이 필요한가?

잡무를 통해서 본 학교 그리고 교사의 임무

등록 2007.10.30 10:44수정 2007.10.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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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무, 배부른 교사들의 불평인가? 

언제부터인가 교사 잡무 경감이란 말이 매우 진지한 문제로 인식되어왔다. 오죽했으면 교육인적자원부 안에 잡무경감 위원회가 설치되었을 정도이다. 정부에서도 잡무경감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잡무가 많기 때문에 줄여도 줄인 것 같지 않아  별 좋은 소리 못듣는 게 교사 잡무다. 늘 구호만 앞설 뿐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는 게 교사잡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 잡무라는 말을 꺼내려한다면 사람들은 아무리 꺼내도 소용없을 말을 하니 정말 실없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나는 갑자기 교사들의 잡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 갑자기 교사에게는 몇 개의 손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갑자기 해 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오늘 오전 중으로 마쳐 달라는 두개의 일을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교육청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가할 아동을 선발해 달라는 부탁이었고, 또 하나는 감사를 대비해 수련회 관련 파일철을 오전 중으로 보내라는 부탁이었다. 학년 부장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선생님들에게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일 이외의 업무를 맡기지 말자는 신념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오고 있지만 오늘만은 업무전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내가 수업 도중에 동 학년 선생님들께 보낸 문건이다.

1.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가할 아동을 보내주세요. 자격요건: 생활보호대상자 및 맞벌이 부부, 내용은 인성교육관련행사, 장소는 어디어디.
2. 말일이니까 출석부 빨리 정리해서 보내주세요.
3. 틈나는 대로 교내 육상대회 나갈 선수 뽑아 주세요.
4. 시험 진도 내시느라고 바쁘시지만 해캄과 개구리밥이 왔으니 시간 내서 관찰할 있도록 해주세요. 하루 지나면 해캄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일 두 개 세 개가 중첩되는 일은 어느 직장이라고 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이런 일들이 쌓인다는 것은 솔직히 매우 버겁고 늘 이래야 하는가 하는 탄식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물론 다양한 업무에 대한 균형감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수업에만 비중을 두는 교사들일수록 이러한 업무가 가져오는 혼돈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2. 교사는 몇 개의 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교사는 과연 몇 개의 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해서 정말 에누리 없이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교사가 한 번 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어떤 일들을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현장에 몸담아 본 적이 없는 분이나, 현장에 몸담은 지 오래 된 분들이라면 좀 더 현장의 잡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첫째, 수업을 하는 손이다. 교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뭐니해도 수업이다. 항상 교사는 수업을 하거나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교사행위의 기초이고, 잡무는 그 위에 얹혀지게 마련이다. 효과적인 수업을 위해서 교사는 꾸준히 검사하고 피드벡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수업시수는 늘 빠듯하고, 교육과정에는 수행평가를 할 시간도 단원평가를 할 시간도 제시되어져 있지 않다. 이렇게 에누리 없이 빠듯하기만 한 시간을 교사들이 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교사에게는 행사를 주관하거나 준비하는 손이 필요하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 외에도 수많은 대대·외 행사를 치러야 한다. 3월이면, 입학식 임원선거, 환경 정리를 해야 하며 청소년 단체를 조직해야 한다. 4월이면 과학의 달 행사를 중심으로 현장체험학습이 이뤄지며, 수업공개와 환경심사 등이 이뤄진다. 5월이면 어린이달 행사와 체격체질검사, 정보의 바다 탐구대회 등이 이뤄진다. 6월이면 합창대회, 통일안보 행사, 각종 시험, 경시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9월에는 또 임원선거를 하고, 학예발표회와 운동회가 있다. 10월에는 전시회, 알뜰시장이 열리며, 체력검사가 이뤄진다. 각종보고회도 이뤄지고, 토론 논술 대회 같은 것도 이뤄진다. 11월에도 이러한 행사들은 여전히 소진되지 않고 남아있다. 시험을 보아야 하고 독서행사가 이뤄질 것이며, 학예발표회나 전시회가 열린다. 12월이 되면 성적결산을 내기위해 준비해야 하며, 반별 마무리잔치 학급문집 만들기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학급에서 행사도 있는데, 학교행사도 있고, 교육청 행사도 있으며, 각종 사회기관에서 준비하는 행사까지 겹치게 마련이다.

교사들의 손은 한손으로는 수업을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늘 이런 일들을 또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손이 두개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일은 충분히 수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교사에게는 더 많은 손이 필요하다.

셋째, 교사는 또 사회가 학생에게 실시하기를 요구하는 것들에 협조하는 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안전교육, 성교육, 구강보건 교육, 흡연예방교육, 왕따 예방교육, 등등을 실시하는 것에 교사는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야 한다. 한자지도, 독서지도, 글쓰기 지도, 예절지도, 그리고 최근 학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교육과 경쟁해야 하고, 방과후 학교 같은 것도 운영해야 한다. 때로 자살 문제가 떠오르면 자살 예방교육도 해야 한다. 최근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교사들은 이런 문제에 더 민감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은 수업진도가 빠듯해도 이런 일을 먼저 수행해야 한다.

넷째, 교사에게는 무엇인가를 보고해야 하는 손이 또 있어야 한다. 때로는 교육청으로부터 때로는 교육부로부터 사회 각 기관과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각종 국회와 의회가 요구하는 자료들을 교사는 그 때 그 때 신속하게 보고해야 한다. 때로는 동사무소에서 때로는 경찰에서 요구하는 것, 지역사회의 요구 등등 각종 요구가 밀려들면 교사는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아동이 있는 상태에서 조사가 가능하거나,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수업 도중에 조사를 해야만 한다.

다섯째, 교사에게는 자신의 활동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손이 있어야 한다. 비단 수업을 하는 것 뿐 아니고 자신의 실적을 알리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행위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혹은 철저한 감사로부터 살아남으려면 하지 않은 것도 한 것처럼 서류로 남겨야 하는 일을 교사들은 수행하기도 한다. 교사가 자신이 한 행위나 하지 않은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자면 당연히 두 배에 가까운 동작이 소모된다. 학교평가나 교사평가가 실시되면 이러한 작업은 더더욱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여섯째, 교사에게는 학생을 관리하는 손을 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유를 먹여야 하며, 학생이 빠짐없이 알림장을 적고 숙제를 하거나 준비물을 잘 가져오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또한 일기나 독서기록장을 쓰게 하며 생활본을 정리하도록 해야 한다. 쉬는 시간에는 떠들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며, 특별교실 이동할 때는 줄을 서야 하고, 그리고 친구들을 왕따 시키거나 싸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지도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문제될만한 행동이 생기면 사전에 예방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나열한 활동들의 중요성은 결코 수업에 못지않기 때문에 교사들은 수업을 하다가도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3. 여섯 개의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교사가 정말 훌륭한 교사다

이렇게 교사가 여섯 개의 손을 동시에 가져야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주위에 이런 일들을 거뜬히 해내는 선생님들을 보면 그 분들은 정말 훌륭한 교사들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주위 선생님들을 보고 초능력자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서 살아간다. 수업과 동시에 수없는 검사를 하고 수없이 지도를 하고, 그리고 통지하고 상담을 해야 한다면 이것은 보통의 초능력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행하기 힘들다. 그러기에 많은 교사들은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한 쪽에 치중하는 만큼 다른 쪽은 소홀히 하면서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고 있지 않나 싶다.

갈수록 우리 사회는 공교육이 학부모의 입맞에 딱맞게 성적을 올려주고, 대학입학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런 일을 실행에 옮겨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공교육 살리기의 정의도 바로 대학입학을 위해 뭔가 해주는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에게는 여전히 없애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없앨 수 없는, 수많은 잡무들이 존재한다. 오히려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한다면 사교육 기관의 교사와 다를 바 없는 교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것들을 아무 불평 없이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교사가 정말 이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교사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교사의 잡무는 어떻게든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줄어들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교사가 수업만 열심히 가르치는 한 가지 일만 담당한다는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잡무경감, 잡무경감 하지만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것이 교사의 잡무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수많은 교사들은 잡무에 치여서 방학을 기다리며 산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의 잡무를 통해서 우리는 공교육의 역할이 무엇이며 어떤 교사가 진정 훌륭한 교사인가에 대한 생각을 펼쳐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교사들이 감당하고 있는 잡무를 통해서 사교육과는 다른 공교육의 역할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 #잡무경감 #사교육 #교사론 #학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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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공간에서 3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4차원적 사고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차원 공간 속에서 4차원적인 문제발견력과 문제해결력으로 수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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