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전가의 보도가 된 정치공작설

수권정당의 의연한 모습이 전혀 아니다

등록 2007.10.22 08:58수정 2007.10.2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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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케이 주가조작의혹사건의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듯 보이는 김경준씨의 송환이 가시화될 경우, 한나라당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이미 한나라당은 거대 야당임은 물론, 지금으로서는 차기 집권이 가장 유력시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선도 끝났고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었으니, 이제 한나라당이 수권 정당으로서 이전과는 다른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보인 반응은 우리를 적이 실망시켰다.

한나라당은 김경준씨의 송환 결정에 예의 정치공작설을 또 제기하고 나섰다. 이명박 후보측의 박형준 대변인은, “국제적인 범죄자를 범여권이 정치공작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부분은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 후보 선대위의 정두언 의원은, “국민도 범여권이 그런 공작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대선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 모두 범여권의 정치공작을 기정사실화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대변인 나경원 의원은 “한방 먹이려는 범여권에 검찰이 부화뇌동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며 화살촉을 검찰에까지 돌렸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발표가 날 때마다 대부분의 것을 허위사실 유포라든지 정치공작이라고 몰아붙여 왔다. 한 예로 경선 초반 열린우리당의 김혁규 의원이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사실을 발설하자, 허위사실 유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김혁규 의원에게 되레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일이 있다. 이후 이 후보 스스로 위장전입을 시인, 사과했음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자 국정원과 국세청은 물론 검찰에까지 정치공작을 벌인다고 몰아세웠다. 이 후보 측은 정치공작설 제기와 세트 형식으로 해당 기관을 항의 방문하는 퍼포먼스 비슷한 일을 벌이고는 했다. 이런 일은 후보에게 충성심을 보일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기에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활성화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재오 의원이 이런 이벤트성 작업의 총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이 정치공작이란 독재정치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그 시절에는 국가기관에서 정치공작을 벌인다는 야당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세상에 국가기관이 야당에 정치공작을 벌인다는 주장을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터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공작 운운 이전에 국가기관에 그럴 힘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매사를 ‘정치공작설’이라는 메뉴로 돌파해 왔다. 심지어는 같은 당 박근혜 후보까지 청와대와 결탁하여 정치공작을 벌인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을 정도이니, 이 후보 측이 정치공작설을 얼마나 애용하고 있는지를 가히 알게 해 준다.


청와대가 이명박 죽이기 플랜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청와대는 이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며 법적 대응을 경고했었다. 마침내 이 후보 측 진수희 대변인에 대한 고소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진수희 대변인은 명예훼손으로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공작설이 사실무근임이 사법적으로 밝혀진 것이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 측은 경선에서 승리한 다음 날에도 또 정치공작설을 제기했다. 이번에는 이명박 후보가 직접 나서, “권력 중심 세력에서 강압적으로 지시하고 있다”고 청와대를 겨냥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재오 의원등은 이제 청와대를 방문, 조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게 된다. 그러자 청와대는 더 이상 참아주기가 어려웠던지 이명박 후보 등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며칠 전 이 후보의 부시 면담이 불발되자 한나라당은 사과는커녕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면담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것 역시 정치공작설 제기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대사관이 무슨 힘이 있어 미 백악관과 국무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건지 한나라당은 제발 말해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이번 김경준씨의 경우도, 국내에서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범여권이 무슨 기운으로 미 법무부와 법원에까지 공작을 벌였다는 건지 제발 밝혀주기를 바란다.

정치공작설은 내부를 결속시키는 힘도 있을뿐더러 일부 국민들에게 일정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것은 한나라당 내부나 우리 국민들 중에 독재정치의 의식구조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 된다. 특히 한국 같은 언론 풍토에서는 그것이 때로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자주 써서는 날이 무디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정치공작설은 한나라당의 이른바 ‘전가의 보도’가 된 것 같다. 이것은 수권정당의 모습이 전혀 아님을 한나라당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원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란, 가문을 먹칠한 자기 사람을 스스로 다스리는 칼날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잘못한 일이 불거질 때마다 내부인을 스스로 다스리기는커녕 그것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글자 그대로 ‘전가(轉嫁)의 보도’로 써먹고나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지지율을 한순간에 까먹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치공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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