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엔 어머니 혼자 계십니다

그리운 고향집 이야기

등록 2007.10.22 14:38수정 2007.10.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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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엔 어머니 혼자 계십니다.


사람이 그리운 어머니께선 울 안의 넓은 공간을 모두 파헤쳐 남새밭을 만들어 놓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심어 놓았습니다.

 쪽파
쪽파양태석

그중에 파가 보기도 좋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나물을 좋아했던 난 저 파를 보니 파나물이 생각납니다.

 마늘
마늘양태석

겨울을 나야 할 마늘이 너무 웃자란 것 같습니다.

강정(强精), 강장(强壯), 혈액순환개선, 해독, 살균, 항암 등 먹어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마늘이 이렇게 잘 자라 있습니다.


마루에 앉아 마늘 하나 뽑아 고추장에 꾹 찍어 물에 말은 밥과 함께 우두둑우두둑 깨물어 먹던 생각도 납니다. 내년에도 좋은 수확을 기대해 봅니다.

 양파
양파양태석

양파는 좀 시원치 않은 것 같습니다. 축 늘어져 별로 활기가 없어 보입니다.


풀이 나지 않도록 바닥에 비닐을 깔아 정성을 들인 것으로 보아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날을 잘 참고 견딘다면 많은 수확이 있으리라 봅니다.

 제비콩
제비콩양태석

보리수나무(일명 파리똥나무)를 타고 올라간 콩깍지의 색깔이 보기 좋습니다.

콩밥을 유난히 좋아하던 난 고추밭 고랑에서 자란 강낭콩 밥을 참 좋아해 시골에 살 땐 콩밥이 아니면 밥을 안 먹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콩밥을 좋아하는 자식들을 위해 하루도 안 빼놓고 콩밥을 지으신 어머니의 정성 그러나 지금은 내 자식들이 콩밥을 싫어해 나도 덤으로 콩밥을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이
오이양태석

늦가을인데 오이가 있습니다. 씨받이 감도 안 되었나 봅니다.

내년에 심을 오이씨는 벌써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에 말려져서 이름표가 붙은 하얀 봉지에 싸여 집안 어디엔가 매달려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오이나 때를 잘 타고나야 하는가 봅니다. 때를 잘못 태어난 오이 눈길 주는 이 없어 홀로 된 채 외롭게 늙어 갑니다.

 김장마늘
김장마늘양태석

올여름 거두어 들인 마늘이 접으로 묶여, 다 쓰러져가는 행랑채 양지쪽에 매달려 한풀 꺾인 가을 햇살에 그래도 잘 마르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자식들 주려고 아껴 놓은 것 같습니다.

김장 때가 되면,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에 못 내려가는 자식들을 위해 저 마늘이 어머니의 정성과 함께 배달되어 올 것입니다.

 돌미나리
돌미나리양태석

돌미나리가 텃밭 한구석에서 때깔 좋게 자라고 있습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된장이나 고추장 넣고 버무리면 금세 나물이 되어 밥 한 그릇 뚝딱 일 것 같아 입 안에 군침이 저절로 돕니다.

 머위
머위양태석

머위가 아직도 담장 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먹음직스런 잎을 벌레들이 다 파먹은 것을 보니 정말 농약 안 친 웰빙식품입니다.

옛날 봄이 되면 식곤증이 생겨 입맛이 없을 때 나물 하여 먹으면 그 쓴맛으로 말미암아 입맛을 찾곤 했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대나무
대나무양태석

아직도 뒤뜰에는 대나무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저 대나무 하나면 못 만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대나무로 연살을 만들어 방패연에 꼬리 달린 연도 만들고, 물총에 딱총, 잠자리채 만들어 곤충채집도 하였습니다.

고구마나 고추모 온상을 하는데도 필요하고, 고춧대 바로 세우거나 못자리를 하는데도 꼭 필요합니다.

대나무는 요모조모로 쓸모가 많아 농촌생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유용한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감
양태석

대나무밭 가의 감나무엔 감이 탐스럽게 익었습니다.

보기는 참 좋은데 그러나 어머니의 등 굽은 몸으론 따 드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자식 중 한 사람이 들러서 따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때맞춰 시간을 내기가 다들
쉽지 않은가 봅니다.

뒤뜰에 단감도 가지가 부러지게 열렸는데 어머니의 손이 닿는 곳만 수확하여 드시고 계십니다.

어머니도 이제는 지치신 것 같습니다. 감 따다 먹으라는 성화가 작년 같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올해는 그냥 까치밥으로 놔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옥수수
옥수수양태석

바싹 마른 옥수수가 빨랫줄에 일렬로 늘어서서 내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씨받이로 쓸려나 봅니다.

여름에 자식들이 자주 들려 갖다 먹어야 하는데 다들 시간을 내기가 녹록치 않은가 봅니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자식 중에 누군가가 손자들을 데리고 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속도 없는 내년을 다시 기약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수수목
수수목양태석

수수목을 모아 놓았습니다. 빗자루를 매려고 한 것 같습니다.

수수비를 만들어 방도 쓸고 부엌바닥도 쓸고 때로는 싸리비를 대신하여 흙마루(土房)도 쓸곤 했었는데, 그러나 이젠 어머니의 힘으론 수수비를 엮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묶어 놓은 것 같은데, 아버지는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지 10년도 훌쩍 더 넘기셨습니다.

 장독
장독양태석

장독대에 있는 그릇들의 뚜껑을 열어보니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재래식 음식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보기에도 군침이 돕니다.

말 그대로 웰빙식품들이 시골 장독대엔 가득한데 바쁘다는 핑계로 가져다 먹지도 않고 오히려, 어머님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이 짜고 쓰다 생각되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젠 어쩔 수 없이 현대의 먹을거리 문화에 길들은 사람이 되었나 봅니다.

 절구통
절구통양태석

돌로 된 절구통, 어머니께서 시집온 후 계속하여 사용하셨으니 어머니의 따스한 체취가
묻어나는 절구통임이 틀림없습니다.

3대가 모여 사는 시절 대가족의 끼니를 위해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같이 저곳에 보리 방아, 고추 방아 찧으며 고추보다 더 맵다던 시집살이를 이겨내던 어머니의 손때와 애환이 깃든 절구통입니다.

어머니! 그 따스한 품이 그리운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 떨쳐 버리고 자주 들려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나이를 얼마나 더 먹어야 이 자식은 철이 들는지 모르겠습니다.
#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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