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혼자 사는 것 아니라는 데...

등록 2007.10.22 15:37수정 2007.10.22 16:0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기보다 더 잘 사는 사람 꼴은 도저히 못보고, 못사는 사람 것도 뺏고 싶어 안달 난 어느 부자가 이렇게는 못살겠다 싶어, 매달리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단다. 이 세상 사람들 전부 다 죽고 그 사람들 것 다 차지해서 나 혼자만 남아서 부자로 잘 살게 해 달라고. 어쩐 일인지 하나님이 그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 사람은 마침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차지한 후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우선 느긋하게 배를 채우고 싶었다.


자기 집의 요리사를 불러 밥상을 대령하라고 명령하려는 순간, 아뿔싸, 이 세상에 사람은 자기밖에 없지 않은가. 이래서야 어디, 하면서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다. 요리사 하나만은 살아나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이번에도 그 사람의 기도대로 해 주셨다.

 

이제는 밥을 먹겠거니 했는데, 살아난 요리사가 밥할 생각은 않고 멍하니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러고 있느냐고 역정을 내니 운전을 못 해서 시장까지 재료를 사러 갈 수가 없어서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운전사까지만 다시 살아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해서 부랴부랴 차를 몰고 일껏 시장에 가게 해보니 장사꾼이 하나도 없고, 장사꾼을 되살려보니 이번에는 농사꾼이 없고, 농사꾼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들…, 이처럼 밥상 하나 차리는데 다시 살아나야 할 사람들이 줄줄이였다.


결국 먹는 것뿐 아니라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를 장만하려 해도 돈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는, 아이고 모르겠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하면서 "하나님 이 세상 사람들을 전부 다시 살려 보내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기도했더란다.


세상 혼자 사는 것 아니라는 교훈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우화이다.


약 한 달 전부터 브리즈번 한인 식품업계는 치열한 내전을 치르고 있다.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아가던 양떼들 틈에 이리가 섞여든 양, 기존의 식품점들은 서로 힘을 모아 이리를 퇴출시키기 위한 초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그 가운데는 골리앗 장수 앞에 선 다윗처럼 절대적 믿음과 용맹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바람 앞의 등불보다 더 쉽게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한 업소도 있단다.


각개격파랄까, 지역의 식품점을 하나씩 무너뜨려 잠식해 가는 전략으로 결국 브리즈번 한인 식품점의 천하 통일을 이루겠다고 선전포고까지 했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상호에서부터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감이 없지 않다.


이른바 기업형 자본을 무기로 문어발 식 확장을 꾀하면서, 버티는 데 한계가 빤한 생업 수준의 업소부터 먹어치우며 결국 독점경영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것인데….


양떼들을 통해 브리즈번 저잣거리에 떠돌고 있는 이런 식의 성토를 사실 확인도 않은 채 무조건 동조할 생각은 없다. 소박한 양들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이리의 말 못할 사정이나 변명도 있을 테니.


그저 내가 직접 본 것만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조그만 가게 바로 코앞에 번드르 한 대형 식품점이 들어섰더라는 말이다. 다시 양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게 바로 이리의 1단계 전략이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초라해져 버린 작은 가게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접수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인데, 내가 봐도 걱정이 된다. 저 상황이라면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지지 않을까 하여.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가 아니니 내막을 자세히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착잡함을 떨칠 수가 없다. 싸움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서로 상처는 입게 되어있다. 승자에 따라 그러게 누가 먼저 시비 걸라고 했느냐고 되받아쳐 버리고 말겠지만, 어쨌거나 브리즈번 한인 사회가 쪽팔리게 되는 건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부자 본 적 없고, 그만 예뻐져야겠다는 미인 본 적도 없다. 돈 있는 사람들이 더 돈에 집착하고, 웬만큼 예쁜 사람들이 성형 수술도 하는 법이듯이.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면 아예 돈 모을 엄두도 못 내는 법이고, 못 생긴 사람은 성형 견적(?) 도 안 나온다지 않는가.


돈 버는 것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 돈 버는 재주가 비상한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 재능을 더욱더 갈고 닦을 수밖에.


이런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벌어놓은 돈을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실현의 결과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얼마나 벌어야 만족하겠느냐는 식의 보통 사람들의 재물론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면 그 자체가 존재감이며 자존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처음 예를 든 부자의 우화처럼 갈 수 있는 데까지, 벌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심리일 것이다. 돈만 많으면 세상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부자의 마음처럼. 그러니 그걸 어찌 말릴 수 있으랴. 우화 속의 부자처럼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었듯이.

2007.10.22 15:37ⓒ 2007 OhmyNews
#이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5. 5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