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58)

― ‘-의 -의’ 털어내기 2

등록 2007.11.02 17:24수정 2007.11.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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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엘리노어의 삶의 여정

 

.. 암흑의 시대를 온몸으로 이겨내야 했던 한 인간의 비극을 이해하고자, 그녀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와 엘리노어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스즈키 주시치-엘리노어 마르크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12쪽

 

“암흑(暗黑)의 시대”는 “어두운 시대”나 “캄캄한 시대”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비극을 이해하고자”는 “한 사람 앞에 놓인 슬픔을 헤아리고자”쯤으로 풀 수 있어요. ‘그녀’보다는 사람이름인 ‘엘리노어’를 쓰면 좋고요.

 

 ┌ 엘리노어의 삶의 여정을
 │
 │→ 엘리노어가 살아온 발자취를
 │→ 엘리노어가 걸어온 길을
 │→ 엘리노어가 꾸려 온 삶을
 └ …

 

‘여정(旅程)’은 “여행하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삶의 여정”이라고 적으면 무슨 뜻이 될까요. 마치 문학하는 사람처럼 쓴 말이구나 싶은데, 이렇게 쓴다고 해서 문학스러운 말이라 할 수 있을는지. “살아온 발자취”나 “걸어온 길”이라고 해서 문학스럽지 못한 말일까요. 문학스러움이나 문학다움은 어떤 말투에 있지 않잖아요. 말로 빚어내는 이야기, 말에 담아내는 이야기에 있을 텐데요. 겉멋을 부리는 말재주에 문학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삶의 여정”을 다듬어 놓고 보면, 앞에 쓰인 ‘엘리노어의’에서 토씨 ‘-의’는 절로 떨어집니다. 토씨 ‘-가’가 붙어요. 그러니까, 앞에 있는 ‘-의’는 ‘-이/-가’를 붙여야 할 자리에 끼어든 토씨이고, 뒤에 있는 ‘-의’는 겉멋에 빠진 말씀씀이라 하겠어요.

 

ㄴ. 자신의 젊은 날의 추억

 

.. 금이 간 청년회관의 마룻바닥에는 자신의 젊은 날의 추억도 스며 있을 게 분명하건만 ..  <이시무레 미치코/김경인 옮김-슬픈 미나마타>(달팽이,2007) 15쪽

 

“청년회관의 마룻바닥”은 “청년회관 마룻바닥”이라고 적으면 좋습니다. ‘분명(分明)하건만’은 ‘틀림없건만’으로 고치고요.

 

 ┌ 자신의 젊은 날의 추억도
 │
 │→ 자신이 젊었을 적 추억도
 │→ 젊은 날 추억도
 └ …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로 살아온 어느 나이든 사람을 보면서 글쓴이 혼자 생각에 잠기며 쓴 글입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누구나 젊었을 적 일이나 이야기를 떠올려보게 됩니다. 좋았고 궂었던 모든 일을 하나둘 되새기면서 아쉬워도 하고 쓰겁게 웃기도 하고 그리워도 할 테지요.

 

이 자리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 놓고 뼈대를 잘 잡아야지 싶습니다. 맨 처음으로는, “청년회관 마룻바닥에는 추억도 스며 있을 게”처럼 써 봅니다. 다음으로 “청년회관 마룻바닥에는 자기 추억도 스며 있을 게”처럼 써 봅니다. 그리고 나서 “청년회관 마룻바닥에는 자기가 젊었을 때 추억도 스며 있을 게”처럼 씁니다.

 

차례를 밟으며 하나씩 살을 붙이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토씨 ‘-의’는 들러붙지 않으며, 말투나 말씨는 한결 깔끔합니다.

 

ㄷ. 하느님의 은총의 권외

 

.. 하느님이 다 맡아서 돌보아 주시는 내 가족을 위해서만 기도할 시간이 있다면, 하느님의 은총의 권외에 서 있는 이 불쌍한 사람들은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  <문익환-꿈이 오는 새벽녘>(춘추사,1983) 13쪽

 

“내 가족을 위해서만”은 “내 식구만 생각해서”로 다듬으면 어떨까요. ‘권외(圈外)’는 ‘바깥’으로 풀면 좋겠어요. 은혜와 사랑을 아울러 가리킨다는 ‘은총(恩寵)’이군요. 이 말은 그런대로 쓸 수도 있겠지만 ‘은혜’나 ‘사랑’이라고만 해도 좋구나 싶고, “은혜와 사랑”처럼 써도 좋습니다.

 

 ┌ 하느님의 은총의 권외에 서 있는
 │
 │→ 하느님 은총 바깥에 서 있는
 │→ 하느님 은총을 받지 못하는
 │→ 하느님 은총과 멀리 떨어져 있는
 └ …

 

“하느님의 은총”보다는 “하느님 은총”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고 느낍니다. “은총의 권외”도 그래요. “은총 바깥”이라 하면 어떨는지요. ‘권외에 서 있는’을 여러모로 풀어내 보면 “은총을 받지 못하는”이나 “은총과 멀리 떨어진”처럼 되니, ‘-의’를 자연스럽게 떨굴 수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 보면 잇달아 쓰인 토씨 ‘-의’는 모두 멀리멀리 사라져요.

2007.11.02 17:24ⓒ 2007 OhmyNews
#우리말 #우리 말 #토씨 ‘-의’ #-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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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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