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사다층석탑(경북문화재자료405호)고려시대 초기에 세운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인데, 층 사이마다 있는 몸돌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6층과 7층 사이가 없어진 듯도 해요. 그래서 본디는 13층이 아니었나 짐작한답니다.
손현희
크고 멋진 범종각을 자세하게 구경하고 이제 절 안마당에 들어서니, 앞으로는 대웅전이, 오른쪽으로는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어요. 아래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웅전과 명부전도 건물이 꽤 오래된 듯 단청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마치 거추장스런 옷을 훌훌 벗어버린 듯이 홀가분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어, 화려한 멋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옛스러움'을 뽐내는 듯했어요. 아니,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자랑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절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절집 마당 한 가운데에는 '의성대곡사다층석탑(문화재자료405호)'이라는 12층짜리 청석탑이 서 있는데, 크기는 작지만 그 모양이 매우 남다르고 푸른 이끼가 끼어 있어 이 돌탑도 대웅전과 함께 꽤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듯했어요. 이것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하는데, 층마다 몸돌이 남아 있지 않고 많이 부서졌지만 지붕돌까지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마침 잠자리 한 마리가 탑 꼭대기에 앉았는데, 이 녀석을 놓칠세라 냉큼 사진을 찍었어요. 이 다층석탑 안내판에는 본디 13층이었는데, 6층과 7층 사이에 한 층이 없어진 것 같다며 덧붙인 글도 있었어요.
문화재가 있는 곳을 다니면서 이런 돌탑도 많이 봐왔는데, 희한하게도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요. 사실 어떤 때에는 안내글에 12층이라고 하니까 '그렇구나!' 하고 여기지만 내 눈으로 세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많아요. 아직 배울 게 많은가 봐요. 하지만, 그런 거야 어찌 되었든 오랜 세월을 견디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보니 무척 대견스러웠답니다.
명부전 앞에서 안까지 들여다보며 구석구석 구경을 하는데, '이크!' 무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걸 보고 매우 놀랐어요. 세상에나! 커다란 말벌이 내 발 앞에 떨어졌는데, 얼마나 크던지 내 엄지손가락만했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못해도 열 마리쯤이나 되는 말벌이 처마 밑에서 윙윙거리고 있어요.
너무나 놀라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 이번에는 대웅전 뒤에 있는 산신각으로 올라가는데 낮고 평평한 돌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무척 남달랐답니다.
대곡사 구석구석 모두 둘러본 뒤, 이제는 여기에서 1km쯤 떨어진 '적조암'에 가볼까 했어요. 대곡사에 딸린 작은 암자라고 하는데, 예까지 와서 놓치고 가면 후회할 듯해서 올라갔지요. 오르막길을 따라 가는데, 하늘이 수상해요. 그렇게나 맑고 파랗던 하늘이 어느새 먹구름이 시커멓게 덮이는데, 덜컥 겁이 났어요.
"이크! 이러다가 우리 비 쫄딱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글쎄 말이야. 멀쩡하던 하늘이 왜 이런데?"
"안 되겠다. 우리 돌아가자. 여긴 그래도 구미에서 가까운 곳이니까 나중에 또 다시 올 수 있잖아."지난 여름에 서산 수덕사에 갔을 때에도 수덕사에 딸린 암자가 여럿 있었는데도 하나도 보지 못하고 온 게 몹시 아쉬웠는데, 대곡사에서도 그만 작은 암자는 구경하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했어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둘러 절집을 빠져나와 우리가 왔던 길로 되돌아오는데, 어느새 빗방울이 듣는 게 날씨가 참으로 이상했어요. 그렇게나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비가 오는데, 이날은 참말로 하늘이 미웠답니다.
"비 맞고도 뭐가 좋다고 웃어!"대곡사에서 구미까지 가려면 적어도 60km나 되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아무래도 비를 맞을 것 같아요. 시간을 보니, 잘하면 안계까지 가서 시외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달렸어요. 버스 시간이 4시 40분이었는데 시간 안에 닿으려면 서둘러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6시 30분에 가는 막차를 타야 하거든요. 다행히 시간 안에 닿아 자전거를 가방에 싸고 버스에 타니, 타자마자 비가 막 쏟아져요. 조금만 늦었더라도 비를 흠뻑 맞을 뻔했지요.
적조암까지 구경하지 못하고 온 게 몹시 안타까웠지만, 임도 하나 타볼까 하는 계획을 잡고 청화산을 넘었다가 시골풍경이 멋진 의성 다인면까지 들어가 아주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를 보고 왔다는 게 퍽 기쁘고 뿌듯했어요.
이날 돌아오는 길에, 구미가 가까울수록 빗방울이 차츰 더 굵어지고 마구 퍼붓더니, 끝내 구미에 내려서는 집까지 비를 쫄딱 맞고 왔답니다.
"애고, 끝내 비를 맞고 말았네."
"그런데 비 맞고도 뭐가 좋다고 웃어!"남편과 나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은 모습을 보며 깔깔깔 웃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