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니' 이야기에 반짝이던 그녀들의 눈빛

[온고을 사람들 13] 이색 전시회 '가족Ⅱ' 기획한 채성태 관장

등록 2007.11.08 20:04수정 2007.11.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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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내부
전시장 내부안소민

'온누리안'(한국인 아버지와 아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세 또는 그 가정을 일컫는 말)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방영하고 있는 <황금신부>라는 드라마도 잘 보여주듯 온누리안 가정은 이제 하나의 사회현상을 넘어서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간혹 이주여성자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 다큐멘터리나 기사를 볼 때마다 때론 손수건을 적시기도 하고 때론 분노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의 고민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사랑하게 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보인다고 했던가. 그러나 때로는 사랑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때도 있다. 온누리안 가족들의 문화와 삶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기 위해 '가족Ⅱ' 전시회를 기획한 문화공간 '싹'의 채성태 관장을 지난 5일 만나보았다.

다음은 채성태 관장과 나눈 일문일답.

 문화공간 '싹'의 채성태 관장
문화공간 '싹'의 채성태 관장안소민
- 평소 이주여성자들에 관해 관심이 많았나?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해서는 늘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왔다. 문화공간 '싹'은 단순히 갤러리가 아니다. 문화교육기관이기도 하다. 문화교육과 인권과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진하던 중 이주여성자들과 그 가족에 대한 문제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 이번 전시회는 조금은 특별하다. 그냥 휙 둘러보는 전시회라고 하기엔 뭔가 아쉽다.
"직접 체험함으로써 느끼는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의 모태가 되었던 행사가 있었다. 지난 8월, 다국적문화가족을 대상으로 열었던 문화교육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때 이루어졌던 체험행사와 프로그램을 전시한 것이다."

- 도슨트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차례로 설명을 해달라.
"이번 전시회는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방문객들을 위해 항상 도슨트가 대기하고 있다. (보았니 찾았니?를 가리키며) 이것은 한 나라가 지리상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주변 나라들과 어떻게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문화나 풍습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와 기후, 지리 등을 먼저 알아야 하므로 전시회 들머리에 설치해놓았다. (전통의상 전시를 가리키며) 이것은 각 나라 고유의 전통의상을 만든 것이다. 종이로 만든 옷인데 참가자들이 직접 입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이쪽은 세탁소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이번 전시회의 핵심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옷을 입고 난 후 더러워지나 훼손되면 세탁소에 맡긴다. 여기서 옷은 문화를 비유적으로 의미한다. 옷을 세탁소에 맡겨서 깨끗이 보관하고 가꾸듯이 문화도 마찬가지다. 문화 역시 끊임없이 깨끗이 보관하고 아껴야 할 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탁소를 설치했다. 전통의상을 입어보았던 관람객은 그 옷을 잘 개어서 세탁소에 보관한다. 그럼으로써 문화 보존의 소중함과 아울러 다른 나라의 문화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자기 나라의 문화는 소중한 법이니까 말이다."

세탁소의 옷처럼 문화도 아끼고 보관해줘야


 깨끗이 가꾸고 보관해야하는 것은 비단 세탁소의 옷만은 아니다. 옷걸이에 걸린 각국의 종이옷을 직접 입어보고 '문화세탁소'에 맡김으로써 문화보관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깨끗이 가꾸고 보관해야하는 것은 비단 세탁소의 옷만은 아니다. 옷걸이에 걸린 각국의 종이옷을 직접 입어보고 '문화세탁소'에 맡김으로써 문화보관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안소민

- 이번은 무슨 타일 그림처럼 보인다. 이것은 무엇인가?
"내가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이다. 무엇처럼 보이나?"

- 타일 그림 같기도 하고 모자이크 같기도 하다.
"답은 대나무 자리를 이용한 그림이다."

- 대나무 자리 말하나?
"여기에 그려진 그림은 필리핀 전통 의상을 입은 두 여인이 배를 타고 있는 그림이다. 이 배는 필리핀의 전통운송수단으로 대나무로 만들어진다. 필리핀에서 대나무 공예가 발달한 이유는 이미 <보았니 찾았니>에서 확인했으므로 관광객들은 필리핀의 대나무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한층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마침 길가에 버려진 대나무 발을 활용해 직접 그려보았다."

 길가에 버려진 대나무 발을 이용하여 대나무 공예가 발달한 필리핀을 표현했다.
길가에 버려진 대나무 발을 이용하여 대나무 공예가 발달한 필리핀을 표현했다. 안소민

 이불, 양탄자 등을 재활용하여 만든 필리핀의 '지프니'
이불, 양탄자 등을 재활용하여 만든 필리핀의 '지프니'안소민

 이불을 재활용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뒷면은 색을 칠하지 않았다.
이불을 재활용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뒷면은 색을 칠하지 않았다.안소민

- 이 차는 무엇인가?
"이것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지프니'다. 지프니는 필리핀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떠나면서 남기고 간 군용차를 필리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재활용해서 만든 것이다. 이 지프니는 필리핀 사람들의 재활용 정신과 창의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문화 중의 하나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지프니도 이불로 만들어 보았다. 역시 버려진 이불과 양탄자, 카펫트 등을 기워서 만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차 뒷면은 색칠하지 않고 이불 그대로의 모습을 남겨두었다."

- 쉽게 갈수도 있는데 굳이 이런 방법들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대나무, 이불, 빨랫줄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택한 이유는 문화 역시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도표나 스크랩, 전시물 등 뻔하고 획기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그 문화의 속성과 연관되는 것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보여주면 훨씬 재미있고 인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 이 '지프니'도 직접 만든 것인가.
"그렇다."

- 대나무 발 그림이나 지프니, 한눈에 봐도 수월한 작업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려웠지만 기획하는 것도 매우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한 것이었다. 특별히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기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했다. 시간이나 노력이 많이 들긴 했지만 그만큼 즐거움과 보람도 컸다."

- 이 스티로폴 인형은 무엇인가?
"이것은 지난 여름 행사(가족Ⅱ)때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나'의 모습을 자기가 직접 만든 뒤 가족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존재에 대해서 직접 얘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인형을 가지고 저 스크린 뒤편에서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다. 꼭 이주여성이 아니더라도 가족 안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

 지난 여름 행사때 참가자들이 만들었던 '나'의 모습
지난 여름 행사때 참가자들이 만들었던 '나'의 모습안소민

 가족안의 '나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이것은 비단 다문화가족 뿐 아니라 일반 가족들에게도 유용한 시간이 될 것이다.
가족안의 '나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이것은 비단 다문화가족 뿐 아니라 일반 가족들에게도 유용한 시간이 될 것이다.문화공간 '싹'

- 이곳 전시장에 온 누구나 이 놀이(?)를 할 수 있나?
"누구나 가능하다. 꼭 이주여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족 안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지난 8월 문화교육프로그램 '가족Ⅱ'에 참가했던 당사자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체험하면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어땠나.
"많이 우셨다. 고향 생각도 나고 고향에 있는 가족 생각도 났겠지. 실제로 고향의 가족에게 편지쓰는 프로그램에서는 모든 이주여성이 눈물을 흘렸다. 오랜만에 모국어로 편지를 쓰면서 감정이 복받쳤던 거다. 그들은 울고 싶을 때에도 한국에서는 웃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것이 한국에서 이주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이다. 그 심정이 얼마나 절절하고 절박했겠나.

우리는 이주여성들에게 우리 문화만 가르치고 알리려고 했지 그들의 문화를 먼저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존중은커녕 오히려 '못사는 나라', '후진국'이라면서 무시하고 깔아뭉개려고 하지 않나. 그 점은 매우 잘못되었다. 그들에게 우리 문화를 일방적으로 전하려 하기 이전에 그들의 문화부터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사랑하기 위해서 알자!

- 앞으로 이 행사는 계속할 예정인가.
"물론이다. 참여를 원하는 가정이 무척 많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간 가족끼리 못했던 말, 속내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가정도 많다. 그만큼 그들의 고민을 어루만지고 이해하려는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는 얘기도 된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 등과 관련된 보다 다양하고 실속 있는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이나 생색내기 행사가 아닌 진정 그들과 소통할 수 있고 그들을 보듬어안으려는 행사가 있어야 한다. 좀더 다양하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지난 8월에 열렸던 <가족2>의 한 때
지난 8월에 열렸던 <가족2>의 한 때 문화공간 '싹'

- 그나저나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굉장히 공부를 많이 했겠다. 원래 문화인류학이나 역사 이 방면으로 조예가 깊었는지.
"처음엔 잘 몰랐지만 나 역시 공부를 하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의식주부터 역사, 지리, 음악 등 굉장히 많은 분야를 알아야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주여성들로부터 배운 것이 더 많다.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들의 눈빛이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였는지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거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전시회는 10일까지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이번 전시회는 10일까지 계속된다.
#이주여성 #문화공간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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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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