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혼 내지 말아주세요"

친구에게 욕을 했다는 아이의 마음

등록 2007.11.09 15:02수정 2007.11.09 15:0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오후였다. 집으로 와야 할 시간에 아이는 집으로 오는 대신 콜렉트 콜로 전화를 해왔다.

 

"왜 집에 안 오고 전화했어?"

"엄마…."

 

아이는 채 말을 잇지 못한다. 무슨 일일까? 혹시 큰 애들한테 맞은건 아닐까? 이럴 때일수록 엄마인 내가 침착해야 한다는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심호흡을 하고 겁을 잔뜩 먹은 아이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엄마, 나 혼 내지 말아주세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혼을 내지 말아달라니. 어이가 없긴 했지만 맞지는 않았다는 뜻이니 우선은 안심을 하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십분 후 아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표정으로 봐서는 이미 누군가로부터 혼이 난 듯했다. 가방을 벗고, 손을 씻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이 일년처럼 길기만 했다.

 

"무슨 일 있었어?"

"혼내지 않을거죠?"

"그건 들어봐야 알지. 혼날 짓 했으면 혼나는 것이고, 혼날 짓 아니면 혼 안 나는 거지. 우선 얘기를 해봐. 뭔데?"

"제가 욕을 했어요."

 

우선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욕을 했느냐였다. 이유를 물었다.

 

"왜?"

"친구가요, 저를 자꾸 괴롭혔어요. 저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제 말을 무시하고 자꾸만 저한테 책받침을 밀고, 제 필통을 흔들면서 제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

"그래서 니가 욕을 했어?"

"네…."

"어떤 욕을 했는데?"

"너무 험한 욕이라서…여기요…"

 

아이가 알림장을 펴서 보여주는데 웃음부터 났다. 욕같은 험한 말을 하면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더니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하고 편지로 쓴 아이의 순진함 때문이다. 하지만 웃음은 이내 사라졌다.

 

욕의 정도가 생각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쓴 욕은 욕 메들리처럼 대중 잡을 수가 없었다. 그냥 화가 나서 막 쓴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욕의 대부분이 내가 한번은 사용했던 것이라는 점이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이 확실이 증명된 셈이다.

 

"왜 욕을 했어? 귀찮으니까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지 그랬어."

"말했는데, 그 친구가 무시했어요."

"그러면 차라리 한대 때려주지."

"저보다 힘이 세요. 그래서 복수해주고 싶어서 욕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랬어?"

 

솔직히 마음 속으로는 오죽 화가 났으면 그렇게라도 했을까? 그 어린 마음이 백분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친구를 괴롭힌 아이보다는 욕을 편지로 남긴 내 아이의 잘못이 더 크게 부각이 되었으니 잘못을 짚어줄 필요는 있었다.

 

게다가 선생님께서는 알림장에 여섯줄의 긴 편지를 써서 학교에서도 잘 가르칠테니, 집에서도 욕은 나쁜말이니 사용하지 않도록 잘 가르쳐달라고 써놓으셨다. 솔직히 이럴 땐 뭐라고 아이를 가르쳐야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내가 아이였다면 그보다 더한 욕도 했을 것같으니 말이다. 다시 아이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욕은 어디서 배웠어?"

아이가 대답을 하지 못한다

"혹시 엄마가 이런 말 한 거 들은 적 있어?"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에 불덩이가 들어앉은듯 금세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본보기가 되어야 할 엄마가 이런 말을 사용했는데, 앵무새처럼 엄마를 따라한 아이를 어찌 야단칠 수 있겠는가? 이건 누가 뭐라해도 엄마의 잘못이지,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은 억울했다. 해봤자 모두 합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다른 많은 좋은 것들은 왜 안 따라 하고, 미운짓은 이리도 빨리 답습하고 따라하는지 그 속내가 얄미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우선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엄마가 미안해. 앞으로 다시는 너희들 앞에서 미운말 하지 않을게."

"저도 죄송해요. 엄마."

 

아이는 선생님 편지 옆으로 "선생님과 엄마를 실망시켜서 죄송하다"는 반성문을 적었고, 일기장에도 다시는 욕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썼다. 그리고 나 역시 이곳에 다시는 아이들 앞에서는 장난으로도 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본다.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면 안되는 약한 존재고, 아이들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만 사용해야 한다는 걸 다시한번 깨달은 하루였다.

2007.11.09 15:02ⓒ 2007 OhmyNews
#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5. 5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