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독, 왜 미국에 접근하나?

등록 2007.11.12 09:40수정 2007.11.1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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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두 강대국인 프랑스·독일의 대미 접근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11월 7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협력관계를 다짐한 데에 이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11월 10일에 끝난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란 핵문제 등에 대해 동맹국으로서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약속했다.

프랑스·독일 정상들과 부시 대통령의 만남은 그 회동 장소 때문에 더욱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부시 대통령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미국의 국부인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자택으로 초대한 데에 이어, 메르켈 총리를 자신의 사유지인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하는 등의 ‘환심’을 베풀었다. 두 정상과의 만남에 대해 ‘역사적’ 또는 ‘친밀함’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오랜 전략적 파트너인 영국까지 포함하여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이 미국 편에 가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평소에 껄끄러웠던 프랑스·독일을 조금 더 ‘내 편’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회담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독일이 영국과 함께 대미동맹에서 한 편에 서는 것은 어딘가 어색한 일이다. 전통적으로 이 3국은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친미국가이지만, 프랑스·독일은 그렇게 볼 수 없다. 특히 전임 프랑스 대통령인 시라크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등 미국에게는 매우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리고 유럽연합(EU) 강화과정에서 영국을 2순위로 밀어내는 데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한편으로는 EU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상호 간에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을 자주 왕래하는 국제법학자들의 평가에 의하면, 십 수 년 전부터 독일은 유럽연합 내에서 겉으로는 프랑스를 앞세우면서도 속으로는 내실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에 독일 자신이 EU를 주도하게 되면 세계적 견제를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일단은 프랑스를 후원하다가 나중에 독일의 몫을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향후 유럽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상호 경쟁할 수밖에 없는 프랑스·독일이 영국과 함께 대미 동맹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 프랑스·독일이 미국에 급속히 접근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한 가지는 중동에 대한 영향력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전쟁·이라크전쟁에 이어 이란 핵문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중동 무대에서 미국·영국에 비해 2선 주자라 할 수 있는 프랑스·독일이 지분을 늘리려면, 일단은 이란 핵문제 등과 관련하여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서서히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6자회담 중재국으로서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편승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란 핵문제 외에, 프랑스·독일의 대미 접근을 가속화시키는 보다 본질적인 모티브는 바로 러시아 견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번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주로 이란 핵문제와 연관시켜 보도했지만, 지난 11월 4일자 AFP 통신에서는 “두 회담의 양대 의제는 이란 핵문제와 러시아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서유럽 국가들은 동쪽의 러시아를 경계해왔다. 그래서 서유럽 내부의 분열도 러시아의 위협 앞에서는 얼마든지 상쇄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의 외교행태를 분석할 때에는 항상 러시아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 내부의 강한 팽창주의 흐름은 서유럽 국가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이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취임 이래로 러시아의 국세가 호전된 데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많은 러시아인들은 ‘1991년 구소련 붕괴 및 1997년 모라토리엄(채무지불 유예)으로 만신창이가 된 러시아를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은 바로 푸틴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활용하여, 최근 크렘린궁 측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러시아의 국부로 만들려는 이미지 메이킹 작업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독일의 입장에서 볼 때, 점차 국력을 회복하고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자신들 간에 협력을 이루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인 미국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이 폴란드·체코에 설치하려는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에 대해 프랑스·독일이 반대하지 않는 것도 러시아 견제라는 대의명분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호랑이를 끌어들여 호랑이를 견제하겠다는, 위험하면서도 그럴싸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의 국력 강화에 따른 서유럽 강대국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강한 러시아’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독주에 대한 견제장치가 되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서유럽에 위기감을 조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서유럽과 미국의 동맹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에 비해, ‘약한 러시아’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독주에 대해 별다른 견제장치가 될 수 없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서유럽에 안정감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서유럽의 대미(對美) 독자성을 강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위와 같이 구소련 붕괴 이후 침체기에 빠져 있던 러시아의 세력 강화로 인해 미국의 잠재적 경쟁자인 프랑스·독일이 일단 미국 편에 가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의 위상은 러시아의 강화로 인해 약해지는 한편, 프랑스·독일의 가세로 인해 강해지는 이중적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러시아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면, 지금 미국을 지지하고 있는 ‘팬’들은 썰물처럼 ‘관중석’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앞으로는 중동이나 동북아가 아닌 러시아를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팍스 아메리카나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르코지 #메르켈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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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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