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지배의 시선

[리뷰] 홍성욱의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등록 2007.11.19 08:28수정 2007.11.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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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책세상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은 단지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Panopticon:원형감옥)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그리고, 파놉티콘에 대한 논의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푸코의 이론이나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만을 다룬 것도 아니다.
홍성욱의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작은 책이 최초에 제러미 벤담이 한 파놉티콘에 대한 제안이나 미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한 파놉티콘에 대한 논의를 넘어섰고 다양한 입장과 논의, 사례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후 유명한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이 프랑스에서 감옥 설계의 하나로 제안했던 원형감옥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중앙에 창을 모두 어둡게 칠한 감시탑을 세우고, 그 감시탑을 중심으로 빙 둘러가면서 죄수들의 방을 배치하는데, 그들의 방은 모두 환하게 밝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감시받는 죄수들이 자신을 감시하는 중앙의 상태를 알 수 없으므로 실제로 감시당하지 않는 순간까지 감시당하는 상태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감시가 “내면화”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제러미 벤담이 파놉티콘의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그 아이디어는 단지 감시의 효율성 차원의 문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아이디어는 벤담의 당대에는 실천에 옮겨지지도 못하였다. 즉, 사장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을 유명한 프랑스의 탈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자신의 연구방법론인 지식의 고고학과 계보학을 사용하는 가운데 다시 인용이 되고 부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푸코의 파놉티콘은 단순히 감옥설계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다. 푸코는 근대와 탈근대를 연구한 학자다. 그런 푸코에게 파놉티콘은 근대의 작동 원리를 상징하는 장치로서 이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푸코에게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하면서 생긴 많은 단위들 즉, 공장, 감옥, 병원, 군대, 학교 등에서 그 작동과 관련하여 파놉티콘의 원리가 적용되었다. 푸코의 생각은 일단 이 정도까지다.

그런데, 그후 탈구조주의철학과 푸코이론 등이 주목받으면서 파놉티콘에 관한 논의들도 계속 이어졌다. 들뢰즈도 이것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있다. 논자의 일부는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한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반박을 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주장들은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에 일부 소개되어 있다.

정보사회에서 파놉티콘의 원리는 어떻게 진화했나?


정보화혁명이 일어나면서 사회는 벤담이 파놉티콘을 소개하던 사회와는 많이 달라졌다. 산업혁명 무렵이나 이후의 사회에서 공장, 작업장을 비롯한 중요한 공간에서 작동하던 감시의 원리가 “시선” 그 자체라면, 최근의 사회에서 그것은 “정보”로 대체되고 있다. 이젠 정보를 매개로 한 파놉티콘이 전지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에서는 그러한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최근 삼성에스디아이(SDI)에서 노동자의 휴대전화를 임의로 위치추적하였다고 의혹이 제기되었던 사례라든가, 기업에서 직원의 사원증에 내장된 칩을 이용하여 감시수준까지 프라이버시 침해를 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애셜런이라는 도감청기관이 수십년간 비밀리에 운영되며 애초의 설립목적을 넘어서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하다가 몇 년전 언론에 적발된 사례도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감시의 기술도 고도화되었고, 그 위력도 대단하여졌다. 그런데, “정보”를 매개로 한 감시의 기술은 벤담 당대의 “파놉티콘‘이 그랬지만 기술자체는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중립적이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어떠한 목적에 사용하는가이다.

예를 들면, 벤담 당대의 “파놉티콘”도 공장이나 작업장에서의 노동착취를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다양한 곳에서 작업과 관리의 효율성 증대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보”도 여러 사례처럼 기업측의 노동자 감시나 국가기관의 시민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선의로 사용되면 미아찾기, 범죄자 추적과 통제목적 등으로도 응용될 수 있다.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에서는 파놉티콘의 다른 양상으로 역파놉티콘과 시놉티콘을 소개하기도 한다. 역파놉티콘이란 전통적인 감시의 주체가 기업, 국가권력 등에서 시민사회를 바꾸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국회나 언론, NGO등이 권력감시의 주체가 되는 경우다. 시놉티콘은 그런 상황들이 진화해서 권력의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를 감시하는 국면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감시와 통제도 이젠 매우 진화하였다는 것이다. 그 물적토대도 단순한 “시선”에서 “정보기술”로 진화하였고, 감시와 통제의 방향성이나 그 주체도 폭이 넓어졌다. 예전에는 공장주의 감시와 통제하에서 눈치나 살펴야 했던 노동자들도 이젠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고용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파업도 계획하는 세상이다. 작업장에도 전자감옥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감시와 통제 매커니즘이 존재하지만, 노동자들은 새로운 대응방식을 곧 고안해 낸다. 그것도 원래는 기업들만이 전유했던 수단을 사용해서 한다.

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홍성욱 지음,
책세상, 2002


#파놉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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