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장
오마이뉴스 이종호
조 소장은 작심한 듯싶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를 보았을 땐 "괴롭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선을 다섯 번째 치르지만 이런 선거는 처음"이라고 토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결행하는 태도다.
지역구(울산 북구) 의원으로 원내 입성했지만 1년 반 만에 의원직 상실, 또 작년 당대표 선거에 나갔다가 고배를 마신 뒤 그는 진보정치연구소장으로 지내고 있다. 국회와 당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온 조승수 소장을 만나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진단했다. 그는 87년 백기완 후보 선대본 기획국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결과나 승패를 떠나서 선거운동 과정이 신나고 열정이 있었다. 한번 해보자, 내가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이번 대선은 그토록 염원하던 진보정당이 있고 유무형의 자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원들은 차치하고라도 내 가족, 내 친구들에게 어떤 내용으로 표를 달라고 할지 스스로 자신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조 소장은 "메시지 전략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코리아연방공화국' '100만민중대회' 등 되레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인들만 눈에 띄니깐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토로했다.
-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도 후보는 권영길 아니었나.
"그 때는 후보에 대해서 이견이 없었다. 민주노동당=권영길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그런데 이번 경선 과정에서 그게 무너졌다. 권 후보가 승리하기 위해 손을 잡은 세력(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 행동을 볼 때 언제까지 권영길인가, 절반 이상이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심상정과 노회찬으로 당을 활력 있게 이끌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그 자연스런 현상을 억지로 틀어막은 경선이었다."
권영길 후보의 '대권 삼수' 배경에 대해 조 소장은 "당내 '총선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권 후보가 재선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현재 당이 처한 상황에서 창원(권영길 후보 지역구)도 굉장히 힘들다. 그런데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크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지역구에 다시 안 나가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경선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민주노동당의 정파 담합 구조는 고질적인 문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53대 47의 구도를 깨지 못하는 것 같다."지도부 선거나 아주 중요한 전략적 방향이 담긴 결정은 그 구도가 고착화 되었다. 처음 나타난 것이 2006년 당 지도부 선거다. 53 대 47 산술적으로 보면 2, 3% 이동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53%의 벽을 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 왜?
"당내 정파 그룹은 30%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전체 당원 숫자의 증감은 큰 차이 없지만, 내용적으로는 3천명이 들어오고 3천명이 나갔다.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탈당하고 특정 성향이 조직되어서 들어온 사람이 3천명이다. 자발적인 평당원들의 입당은 극히 일부다. 그렇게 조직되어서 들어온 사람들이 주요 선거나 투표에 있어서 세력을 형성하고 그대로 관철시킨다."
조 소장은 자주 "그쪽"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쪽이 누군가'라고 물었다.
"30%가 정파라면 그중에서 20대10 정도로 자주파와 평등파로 나뉜다. 자주파는 한국사회는 미국의 신식민지이고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인 한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반미와 통일을 운동의 최고목표로 설정한 세력이다. 비정규직 등 민생 문제 보다 국보법 등 반미 투쟁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FTA(자유무역협정) 문제도 한칠레나 한유럽 보다 한미FTA에 적극적이다. 주한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이나 대추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 그럼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은 뭔가.
"노동자 계급의 대표성을 가진 민주노총의 조직적 대오로 민주노동당이 탄생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합쳐도 노동조합 가입율이 10% 수준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 대표성을 상실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근원한 민주노동당은 근원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당이 위기에 처한 뿌리는 거기에 있다."
- 전태일의 누나 전순옥 박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이 무슨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냐"고 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문국현 지지를 선언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국현 지지는 동의할 수 없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질책의 내용이 뭔지 알기 때문에 타당하다고 본다."
- 문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나."반성문 쓴 자유주의자다.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 등에 대해 보수자유주의와 달리 나름대로 급진적인 처방을 하고 있지만 결국 시장주의자다."
- 그럼 민주노동당은 시장주의를 부정하나."진보정당은 공공성의 원리로 시장이 통제되는 것을 추구한다. 공기업 민영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력, 가스, 철도, 의료 등은 시장의 효율성 논리로 따질 수 없는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공의 원리를 따져나가야 한다. 시장 논리의 전사회적 지배화 라는 점에서 문국현 후보가 벗어나 있지 않다."
- 보수 일변도의 대선판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어떤 반등의 계기가 만들어질지 의문이다. "보수반동의 시대가 도래했다."
- 유권자가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나.
"두 가지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내 삶의 민주주의를 해결해 주지 못한 민주화 세력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정서가 있고 다른 한편엔 유권자의 문제도 있다. 40, 50년 동안 고도성장에 익숙해진 국민들이다. 먹고사는 문제로 힘겨운 과정을 겪긴 했지만 고도성장 속에서 '하면 된다'는 성장 중독증이 내재돼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고도성장의 시스템이 멈추면서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사교육비나 주거 문제가 자신의 삶의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유권자의 전폭적인 보수 지지는 집단적인 성장 중독증의 금단 현상이기도 하다. 성공신화와 실용주의를 이명박이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