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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앞서 자전거 모임 식구 하나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해서 그 일터에 모두 축하하러 갔어요. 요즘은 ‘자원재활센터’라고 하는데, 저는 ‘고물상’이란 말이 더욱 살갑고 정겹게 들리네요. 우리가 갔던 그 일터가 바로 ‘고물상’이었어요. 몇 달 앞서부터 ‘고물상’을 차릴만한 터를 구한다고 이리저리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이 좋은 터가 있었나 봐요. 아무래도 낡은 고물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가는 곳마다 집임자가 땅을 내주기를 꺼려한다고 했거든요.
새로 시작한 일을 함께 축하하며 모인 자리, 고물상 바깥 터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석쇠까지 얹어 삼겹살도 구워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어요. 요즘 ‘고물상’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자세하게 들었답니다.
고물상이 하찮은 직업이라고요?
마을마다 종이를 줍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보통 1톤 트럭으로 한 차가 되면 가득 싣고 온다고 해요. 그러면 그것을 셈해서 돈으로 바꿔주고요. 공사장에서 쓰고 남은 쇠붙이들을 주워오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헌집을 부술 때 나오는 못 쓰는 철근 따위가 돈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철거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아침부터 가서 기다렸다가 거두어 온다고 해요. 또 둘레에 있는 큰 회사에서도 컴퓨터, 낡은 자재 따위, 이런저런 고물(?)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곳은 어지간한 고물상과 계약이 다 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만큼 경쟁도 많고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물상’이라고 해서 절대로 하찮게 볼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긴 요즘 ‘고물상’을 하는 분들 가운데 부자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아주 조심해야 할 게 하나 있대요.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얘기처럼, 쇠붙이 값이 비싸니까 맨홀 뚜껑이나 찻길 난간을 뜯어가는 사람도 있고요. 하다못해 학교 대문까지 없어진다고 하니, 아무리 고물이라고 해도 함부로 물건을 받으면 안 된대요.
“김 사장! 조심해. 괜히 장물애비 될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고물상 안을 둘러봤는데, 꽤 쓸 만한 물건들도 많았어요. 컴퓨터나 오디오, 전기밥솥…. 모두 오래 돼 보이긴 했지만 아직은 쓸 만한 게 많더군요. 그 가운데 내 눈에 띈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작두였어요.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자세하게 몰랐는데, 함께 간 사람들이 얘기를 해서 알았지요. 갑자기 어릴 때 생각이 나더군요.
고모님 집에 갔을 때, 해질녘이면 어김없이 고모부와 사촌오빠가 함께 이 작두에다가 볏짚을 썰어서 소여물을 끓이던 생각이 났지요. 두 사람이 손발을 맞춰 한 사람은 썰고, 한 사람은 짚을 넣으면서 척척 해내는 게 하도 신기해서 나도 한 번 해보겠다고 졸라댔던 기억이 나요. 그때마다 고모부는 작두 칼날에 손 베인다고 하시면서 손사래를 치곤 했지요. 그러면서 저 뒷집에 아무개는 여물 썰다가 손가락이 잘렸다고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요즘에도 이런 작두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시골에도 농사일을 기계가 대신 해준다고 하니, 거의 쓸 일이 없지 싶어요. 그러니 오래 된 작두를 보면서 좋아한 건 나뿐만 아니었답니다. 이날 함께 간 사람들은 모두 우리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들이었는데, 저마다 어렸을 때 작두를 썼던 이야기를 하면서 작두 쓰는 방법을 나한테 선보여 주곤 했어요.
“이야! 이 작두는 정말 오래 된 거다.”
“와! 여기에 우째 이런 게 다 있노.”
“여기 고리에다가 새끼줄을 끼워갖고 이렇게 손으로 잡고 발로 밟고 했지.”
“자, 자 봐봐. 이렇게, 이렇게…….”
“이 앞에 있는 거 이거 빼면 칼날이 빠지거든. 그러면 날만 빼서 숫돌에다가 쓱쓱 갈아서 쓰곤 했지.”
누군가 그새 어디서 났는지 마른 풀을 한 움큼 가져와서 손발을 맞춰 신나게 여물 써는 시범을 보여주는데, 모두가 한바탕 큰 소리로 웃으며 즐거워했답니다.
한 가지, 작두에 얽힌 옛이야기를 하면서 하나같이 하는 말은 작두 칼날에 손을 베었다거나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며 손가락을 보여주는 이도 있었어요. 또 자기 마을에 어떤 이가 작두에 손을 다쳤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지요. 그만큼 위험했지만 그 시절엔 날마다 일삼아 하던 일이었다고 했어요. 또 그때엔 날마다 해야 하는 그 일이 정말 지겨웠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어요. 지난날 나는 어린 마음에 여물 써는 게 신기해서 그토록 따라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말이에요.
이름만 들어도 울음을 뚝! 그쳤던 망태할아버지
요즘은 ‘고물상’이라고 해서 하찮은 직업으로 여기지 않아요. 지난날에는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종이나 빈병, 헌옷가지 따위를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가 있었지요. 나도 아주 어릴 적에는 이런 사람을 보고 자랐어요. 그땐 이 ‘넝마주이’를 보면 왠지 무섭고 두려워서 얼른 도망가거나 숨곤 했지요.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이니 그 일이 그 사람한테는 하루하루 목숨을 잇는 수단이었을 뿐인데도 그땐 나도 모르게 피하곤 했어요. 또 어릴 때는 부모님들이 우는 아이를 달랠 때면 꼭 하던 말이 있었지요.
“어! 저기 망태할아버지 온다!”
“자꾸 울믄 망태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 칸데이!”
어릴 땐 그 말을 들으면, 왜 그렇게 무섭고 떨렸는지 ‘망태할아버지’ 이야기만 하면 금세 울음을 뚝 그치곤 했어요. 바로 이 ‘넝마주이’를 ‘망태할아버지’라고 했거든요. 나무로 만든 커다란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한쪽 손엔 큰 집게를 하나씩 든, 시커먼 군복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면 혹시라도 나를 잡아가지 않을까 해서 얼른 숨곤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네요.
요즘은 이런 모습을 한 사람이 없지만, 아직도 못 쓰는 종이나 빈병, 쇠붙이 따위를 주워 팔아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요. 거의 삶이 넉넉하지 못한 이들이에요. 또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많고요. 추운 겨울이 오면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더욱 힘든 우리 이웃이기도 하지요.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적은 것을 떼어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물상에서 뜻밖에 만난 ‘작두’ 때문에 이런저런 어릴 적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네요. 그 시절, 시골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어렵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하나같이 부지런했지요. 그러면서도 꿈은 아주 소박했고요. 등 따숩고 배부르면 되지 뭐! 하고 말하셨던 우리네 부모님처럼 말이에요.
이 자리를 빌어, 새로 ‘고물상’을 시작한 김태룡 사장님! 돈 많이 벌고 부자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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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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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울믄 망태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 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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