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에 울려퍼진 육바라밀 심금소리

[슬라이드] 28일 사량도 탄금사에서 열린 수륙 영산재

등록 2007.11.29 17:42수정 2007.11.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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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로 가는 아침 바다는 갈매기조차 날지 않고 조용하기만 했다. ⓒ 임윤수


바람이 불지 않는 바다, 동트기 전 아침 바다는 조용하기만 하다. 파도도 일지 않고 갈매기도 보이지 않는다. 여명을 받으며 조금씩 드러나는 아침 바다는 감청 빛 묵선지 같다. 오백 리가 넘는 길을 달려 도착한 가오치 선착장. 사량도로 들어가는 많은 선착장 중 한 군데인 통영시 도산면의 이곳에 도착하니 필자보다 훨씬 부지런하거나 전날 도착해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도착해 있다.


10시부터 시작되는 수륙 영산재, 사량도 불모산 옥녀봉 아래 있다는 탄금사(彈琴寺)에서 올리는 수륙 영산재엘 참석하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잿빛누비법복을 입은 사람도 드문드문 보인다.

9시에 뜨는 배를 탈 거라고 생각하고 일찍 출발하며 조금 서두르다 보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고, 가오치 선착장에서는 배가 엔진소리를 높이며 막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잘하면 7시 30분에 출항하는 첫배를 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배까지 1시간 30분을 멀뚱멀뚱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조금 서두름으로써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보너스로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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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사량도가 보인다. ⓒ 임윤수


주차를 하고 매표를 하는 동안, 엔진 소리가 점차 높아지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높일 대로 다 높였는지 엔진 소리가 조금씩 낮아진다. 철갑문을 내려 길게 혓바닥처럼 내밀어 부두에 다리를 놓고 있는 사량호까지 뛰다시피 다가가 승선을 하였다. 헉헉거리며 잠시 숨을 몰아쉬다 보니 배가 출항한다.

사량도로 가는 아침 바닷길에는 갈매기조차 없어

뭍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는 배, 숨을 고르듯 엔진 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며 뭍을 떠나는 배를 타고 있노라니 이별이 생각난다. 배를 타고 이별을 하였던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랫말이 떠올라서 그런지 배를 타고 출항할 때면 이별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선착장에서 얼마만큼 벗어난 배는 커다란 원을 그리며 뱃머리를 돌려 방향을 잡더니 조용하게 항해를 한다. 해가 돋을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산이 동쪽을 가리고 있어 사량도로 들어가는 아침 바닷길은 산 그림자에 가린 여명 속 아침바다다. 끼룩거리는 갈매기가 나타날 법도 한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갈매기보다 부지런한 어부들, 고기잡이를 나가고 고깃배와 어장을 손질하느라 정착해 있는 배들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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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터미널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통해 '수륙 영산재'가 작은 섬에서 열리는 큰 행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임윤수


배가 출항하기 전에 들렸던 객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건만 차가운 아침바람 때문인지 한사람도 갑판에 나오지 않아 전망 좋은 갑판을 독차지했다. 동행이 있었다면 춥다고 엄살 부리지 말고 갑판으로 나오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추위야 조금 움직이며 달래주면 되지만 이 조용한 바다, 산 그림자 속일지언정 밝아오는 여명 속에 하루를 열어가는 아침바다와 그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어부들의 꿋꿋한 모습을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 함께 보자고 강요했겠지만 쉽게 말 건넬 사람 하나 없으니 아침을 혼자 감상한다.

귓불이 시리고 손이 곱아오지만 아침바다에서 느끼는 고요함이 심장을 뜨겁게 하니 충분히 견딜 만하다.

항해 시간의 반, 20여 분을 항해하니 동쪽 산 고갯마루로 해가 돋는다. 산 그림자에 잠기었을지언정 이미 훤해 있지만 직접 쏟아지는 아침 햇살은 바닷물에 반사되어 눈부시도록 밝기만 하다. 잔잔하기만했던 물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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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사의 배경이 되는 옥녀봉, 불모산은 마치 거문고 형상이다. ⓒ 임윤수


빠른 손동작으로 바다에 물고기 모양만 그려 놓으면 은어가 되고 갈치가 될 것 같다.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살이 어찌나 강한지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외면 아닌 외면을 하며 바라보는 아침바다는 아직도 조용하고 갈매기 역시 보이지 않는다.

남해가 한눈에 보이는 탄금사는 천혜의 임해가람 터

40분만에 도착한 사량도니, 사량도 여객선 터미널 정면에 ‘국태민안 수륙 영산재’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렸으니 작은 섬에서 열리는 커다란 행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선착장에서 좌측, 돈지마을 쪽으로 10여 분을 가니 오른쪽으로 영산재가 올려질 탄금사가 나온다. 불사에 완결이란 게 있을 수 없겠지만 탄금사는 불사 중인 미완의 절이다. 가파른 비탈, 울퉁불퉁한 돌 서들인 듯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배에서 내려 걸어왔거나 대절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야! 좋다’였다.

큰길 오른쪽, 옥녀봉 아래 자리하고 있는 탄금사에 서니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가는 여객선, 뭔가를 무겁게 싣고 들어오는 화물선, 섬사람들의 생계수단인 고깃배, 어장을 살피러 나가거나 돌아오고 있는 작은 고깃배가 남긴 물꼬리조차 다 보인다. 섬사람들이 듬성듬성 바다에 일구는 어장임을 표시하느라 줄 맞춰 띄어 놓은 알록달록한 부표들도 오선지처럼 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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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발원하고 기도한다. ⓒ 임윤수


전망만 좋은 게 아니다. 흐리고 비가 와도 양지가 될 만큼 하루 종일 햇살이 들 것 같은 해바라기 터다. 탄금사 어느 곳에 앉아도 전망은 탁 트이고 하루 종일 따뜻한 햇살을 받게 되니 저절로 따뜻해지고 마음이 푸근해질 것 같은 자리다.

경사가 조금 가파르지만 전망이나 해바라기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자리 매김을 한 듯 전각이 들어서기에 적격인 장소들이 여기저기 군데군데 있다. 일부러 터를 다듬지 않고 그냥 편평한 곳에만 전각불사를 하여도 더불어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룰 천혜의 임해가람이 될 듯싶다.

거문고를 닮은 산세에서 울려 퍼질 오묘한 발원문

섬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 사량도의 진산인 지리산 능선이 뱀과 흡사한 바위산이고, 바윗돌조차 뱀의 비늘을 닮은 편마암으로 된 섬이기에 뱀 사(蛇), 들보 량(樑) 자를 써서 섬 이름이 사량도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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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돼 보이는 비구니의 바라춤은 차라리 서글퍼 보였다. ⓒ 임윤수


그 사량도 끝 부분, 뱀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옥녀봉을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문고 형상을 하고 있는데 주지인 대다심(마야) 보살이 거문고 형상의 바위산 아래 절 자리를 잡았으며 절 이름을 탄금사로 하였다고 한다.

여섯 줄을 튕겨 오묘한 소리를 내는 거문고를 닮은 산세, 심금을 울리는 거문고 소리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깨우침을 오묘하게 울려 줄 공명의 절터가 될 거라는 발원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육지와 달리 배를 타야만 하는 섬이다 보니 영산재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은 11시부터 시작되었다. 다듬어지지 않아 조금은 어수선해 보였지만 다듬어지지 않으니 더 자연스럽게 마련된 비탈 평지에 괘불을 걸고 제단을 꾸며 마련한 야단(野壇)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1400여명의 사람들로 옥녀봉 자락 북적

어디서 누구로부터 소문을 듣고 왔는지 전국에서 1400여명이나 몰려들었으니 괘불이 내걸린 평지만이 아니라 석축 위, 저만치 떨어진 관음전 앞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영산재를 시작한다는 개식과 함께 삼귀의를 하고, 봉정암 부주지인 구암스님의 선창으로 대발원문을 독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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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참 구성지다. 하늘도 듣고, 땅도 듣고, 멀리 보이는 바다는 물론 듣거나 볼 수 없는 미물들조차 감동할 만큼 구성지고도 간절한 목소리니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고 마음이 열린다.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마음들이 기도를 모으니 들리지는 않지만 참회의 함성이 되고 애절한 발원이 된다. 우주법계 유주무주 육도윤회 중생의 외로운 영가님들을 청하여 조고조상님들께 동참의 천도재를 올리니 이렇게 쌓은 작은 공덕의 씨앗이 법계에 충만하여 국태민안과 태평성취가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인간계와 더불어 수라계 내지 축생, 아귀, 지옥 그리고 천상계까지 생사고해를 건너지 못해 애타는 마음들을 기필코 구제하여 스스로 반듯한 열반의 집 위에서 다함께 큰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며 대발원한다.

매끈하지 못한 행사 진행, 넉넉하지 않은 자리 탓에 자칫 어수선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하다. 기도하는 모습들은 지성이며 애절함이다. 법문하는 이 없었고, 설법 듣는 이 없었지만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주혼에게 올리는 위안의 기도, 나라가 태평해지고 국민들이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들리지 않는 설법과 보이지 않는 기도가 되니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을 오묘하게 적시고 있었다.

사량도에 울린 육바라밀 심금소리

형상은 거문고였으나 줄이 없어 소리를 내지 못했던 불모산에 여섯 줄 이파가 모여 육바라밀을 합창하고 있으니 완연한 거문고가 된다. 거문고 소리는 귀청만을 울리지만 탄금사에서 들리는 발원문은 마음을 울리는 기원의 모음이며 심금(心琴)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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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떠나도 옥녀봉은 그대로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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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사람을 실어 나르던 배가 있었기에 탄금사에서는 육바라밀의 합창이 울릴 수 있었을 거다. ⓒ 임윤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진지함과 애절함은 착한 마음에서 온다. 한국 사람들은 참 착하다.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먼 길을 달려와 저렇도록 지극하게 발원하고 기도하고 있으니 저런 모습이 부처의 모습이리라. 

대발원문 송독에 이어 대다라니와 함께 바라춤을 춘다. 노란 고깔에 가린 박박 머리, 나풀거리는 하얀 장삼자락으로 드러나는 앳된 비구니의 모습은 박꽃이기도 하고 무서리기도 하다. 삘리리 거리는 날라리 소리에 치켜 올린 바라가 무겁게 느껴지니 사뿐히 들어 올린 발걸음도 서러워만 보인다.

대다라니를 송하고 있는 젊은 비구승의 목소리는 처량하기만 하다. 어떤 때는 진혼곡으로 들리고, 어떤 구절에선 넋두리처럼 들리니 마음조차 애잔해진다. 서러움, 번뇌, 망상, 고통, 원한 모두 잊고 훠이훠이 날아가라고, 원하는 것 모두모두 이루어지라는 듯 마음을 기원의 소리로 울려주던 대다라니가 끝나고 바라춤이 멈추니 하유스님이 법고를 친다.

하유스님의 손 끝, 양손에 든 북채 끝에서 울리는 법고소리는 두둥둥 거리며 옥녀봉으로 남해바다로 울려퍼진다. 탄금사에서 울리는 심금의 법고소리는 사람들 가슴에서 환호성으로 윤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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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증오, 미움, 서러움, 이기심은 물론 108번뇌까지 몽땅 털어버린 동자의 맑은 모습처럼 하늘은 파랗고 바다는 맑으니 사람들 마음은 청정해지고 가슴 또한 후련해진다. ⓒ 임윤수


대다라니로 발원하고, 바라춤으로 진혼하며 법고소리로 감명을 주니 바다는 파랗고 하늘은 맑다. 원한, 증오, 미움, 서러움, 이기심은 물론 108번뇌까지 몽땅 털어버린 동자의 맑은 모습처럼 하늘은 파랗고 바다는 맑음이니 마음은 청정해지고 가슴은 후련해진다.
  
사량도를 찾은 이들의 발걸음은 거문고현을 튕기는 가냘픈 손짓이었으나 탄금사를 찾은 이들의 발걸음은 긴 여음을 남기는 거문고 소리보다도 더 오묘한 소리, 심금을 울리는 불법을 청하기 위한 성불의 발걸음이었다. 속세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금 배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에 비친 그들의 표정은 불모산의 거문고소리였으며 불심으로 합창한 심금의 소리였다.
#사량도 #탄금사 #수륙영산재 #거문고 #불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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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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