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다듬기 벌목된 소나무를 정자의 기둥으로 사용하기 위해 껍질을 벗기고 다듬었다.
정부흥
9월20일, 추석연휴와 주말사이에 낀 샌드위치날들은 휴가를 냈다. 그리고 21일, 지리산으로 내려갈 모든 준비를 마쳤다. OO건설 김 과장에게 우리집터로 내주기로 한 진입로 공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계속 내린 비 때문에 공사일정이 한 달 이상 지연되었으며 우리집터 쪽으로는 산사태가 우려돼 손도 못 뎄다고 한다. 오늘도 산동에는 비가 내리고 내일도 비가 온단다. 내려온다고 해도 집터로의 접근이 쉽지 않으니, 추석 연휴 끝나고 오란다.
굴착기를 화물차에다 싣고 내리는 일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된다. 초보인 내 실력으로 굴착기를 화물차에다 싣는 일은 불가능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굴착기의 승∙하차와 바닥고르기가 가장 고난도 기술이다. 그러니 지리산 현장까지 굴착기를 옮기는 일은 양사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양씨에게 사정하여 어렵게 이틀을 연기하여 23일날 가기로 하였다. 10시나 되었을까? 양씨에게 전화가 왔다. 23일 지리산으로 내려가면 추석연휴로 인한 차량정체 때문에 자기가 대전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약속대로 내일 새벽 6시에 출발하자는 것이다. 갈수도 아니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약속대로 양씨는 6시에 화물차를 가지고 와서 굴착기를 싣고 먼저 출발하였다. 상황이 급해졌다. 이제 집을 떠나면 10일 이상 객지 야산에서 지내야할 처지다. 우리 트럭은 1톤 적재량이나 덤프트럭이라 화물칸이 너무 작다.
그동안 준비한 각종 공구들, 제반 살림살이 그리고 재활용 목재 등 우리 트럭에 실어야 할 짐들이 너무 많다. 고생하면서 준비한 소나무 기둥은 나중에 쓰기로 하고 박스를 뜯은 목제만 싣고 겨우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가 출발하자마자 양씨는 남원을 지나 지리산 터널주유소에 도착하였단다. OO건설 김 과장에게 연락하여 양씨가 도착하면 많은 비 때문에 유실된 집터로 올라가는 임시 길을 보수하도록 협조해달라고 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김 과장은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고 양씨는 집터로 올라가는 임시도로를 복구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니 양씨는 내일 일 때문에 바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간신히 집터까지 길을 복구하여 겨우 굴착기를 집터로 올렸다. 양씨는 내가 준 특별 인센티브까지 받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우리집터는 산동~고달 간 공사 중인 지방도로(2008년 4월 준공)와 약 150m 물려있으며 신설 도로가 내 임야의 하단부를 관통하기 때문에 기존 임도를 끊었다. 이 때문에 내 임야와 신설도로 간에 약 5m 정도의 고도차이가 생겼다. 때문에 진입로 신설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새로 진입로를 개설해 달라는 민원을 시행청인 전남도청에 제기하여 연장길이 63m 진입로를 개설하겠다는 변경된 설계도를 받았다.
OO건설 측은 진입로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많이 성토를 하여야 하는 지형 특성상 도로공사 후반부에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여 9월 초까지 진입로를 완공하겠다는 약속을 시공사부터 받았다. 그래서 나는 추석 연휴 때 석축 및 관리사옥 짓는 공사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들은 금년에 많이 그리고 특히 9월까지 연장된 길고긴 장마 때문에 어려웠다. 비에 젖은 땅을 차량이 지나다니면 길은 도저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팥죽길이 되고 만다. 우리 집터로 들어가는 길이 이지경이 된 것이다.
나는 약 한달 전부터 김 과장에게 설계도로를 완성하지 못하면 임시 진입로라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김 과장 역시 이에 동의하였다. 나는 김 과장에게 약속을 이행하라고 다그쳤다. 김 과장은 내일부터 모든 직원이 추석 휴가에 들어가므로 지금은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면서 그래서 추석을 보내고 오시라고 한 것 아니냐며 나를 원망한다.
한참 후 김 과장이 귀향 중인 굴착기 기사를 한명 수배하여 나에게 대리고 왔다. 그 기사는 어둠이 깔리는 시각까지 우리 트럭에 실린 짐들을 내 굴착기로 겨우 옮겼고 목재는 집터까지 옮기려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 도중 언덕에 부리고 말았다.
귀향길에 과일이라도 한 상자 사가지고 가라고 굴착기 기사 손에 촌지를 쥐어 보내고나니 어둡고 짙은 구름이 깔린 산야에 나와 집사람 그리고 우리 일오(세퍼트)만이 남았다. 플래시에 의지하여 작업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중요한 공구들을 정리하고 준비해간 천막으로 그 위를 덮고 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어쩔 수 없이 일오를 작업대에 묶어두고 발목 위까지 빠지는 팥죽 길을 넘어지지 않게 집사람과 서로 의지하면서 내려왔다. 9월 중순인데도 위아래 이빨 부딪치는 소리에 서로를 바라보며 쓴 웃음 짓는다.
덧붙이는 글 | 자신의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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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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