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증, 천천히만 올라가면 문제 없어"

무턱대고 떠난 한 직딩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이야기(7)

등록 2007.12.04 14:15수정 2007.12.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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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뱀부에서 도반 가는 정글 길 사이사이로 마차푸차레가 희끗희끗 보인다.

뱀부에서 도반 가는 정글 길 사이사이로 마차푸차레가 희끗희끗 보인다. ⓒ 김동욱


시누와(Sinuwa 2360)에서 데우랄리(Deurali 3230)까지

[경로] 시누와(Sinuwa 2360)-뱀부(Bambu 2310)-도반(Dobhan 2600)-히말라야(Himalaya 2920)-데우랄리(Deurali 3230)


나야풀부터 트레킹 5일째. 10월 24일.

사실 난 이날부터 고소를 걱정했다. 오늘은 1000m 가까이 고도를 높인다. 교과서(?) 대로라면 해발 2500m 혹은 3000m부터는 하루에 500m 이상 고도를 높이지 않아야 한다고 돼 있다. 아직까지는 내 몸에 고소와 관련한 특별한 징후가 없다.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잘 하고 있다. 배변시각도 일정하게 지키기 위해 애를 써왔다.

이젠 고소증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처방받아온 고소예방약(다이아막스 Diamox, 일종의 이뇨제)도 주머니 안에 들어 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약을 만지작거렸다. ‘미리 먹고 걸을까’ 하다가 그냥 가보기로 작정한다. 일단 고소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천천히 걷는 거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치즈 토스트와 생강차로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 8시가 채 안 돼서 시누와의 ‘셀파 게스트 하우스’ 롯지를 나섰다.


“먼, 넌 집이 어디야? 카트만두?”
“아니, 솔로쿰부.”


뜻밖의 말을 들었다. 솔로쿰부라면 히말라야에서도 오지마을에 속하는 곳으로, 에베레스트 트레킹 코스다.


“아, 그래? 그럼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많이 해봤겠구나.”
“그럼, 당연하지. 한 7~8번. 네가 만약 다음 기회에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게 되면 나한테 연락해. 아주 멋지게 가이드 해 줄게.”


a  내 가이드 먼바들 마갈. 17살 때 일찌감치 장가를 가서 11살짜리 아들과 9살짜리 딸이 있다.

내 가이드 먼바들 마갈. 17살 때 일찌감치 장가를 가서 11살짜리 아들과 9살짜리 딸이 있다. ⓒ 김동욱


먼은 올해 31살. 많지 않은 나이지만 결혼한 지 벌써 14년이나 됐다고 한다.

“뭐? 그럼, 17살 때 결혼했단 말이야? 지금 프리티 나이에?”
“응. 11살짜리 아들과 9살짜리 딸이 있어.”


으아…. 그저 놀라울 뿐이다. 먼은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 가이드 먼바들 마갈(Manbahadul Magal)은 16살 때부터 포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포터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이드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한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영어공부였다.

“트레킹 비수기 때인 여름시즌과 한겨울에는 카트만두 등에 있는 잉글리시 인스티튜트(English Institute, 사설 혹은 공립 영어강습소)에 나가서 영어공부를 했어.”

그는 실제로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 게다가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어 공부도 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한국인 트레커들이 많이 늘고 있어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가이드는 좀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a  안나푸르나 트레킹 도중에는 이런 어설퍼 보이는 통나무 돌다리를 자주 만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도중에는 이런 어설퍼 보이는 통나무 돌다리를 자주 만난다. ⓒ 김동욱


스쳐가는 트레커들과 '나마스떼'

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뱀부(Bambu 2310) 지역을 지나 도반(Dobhan 2600)에 도착했다. 이때 시각이 정오 무렵. 여기까지 오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리막이 많은 완만한 지형이었다. 이름 그대로 뱀부 지역을 지날 때는 밀림의 오솔길 양옆이 대나무 숲이었다. 그리고 언제 꺾어 들었는지 먼의 손에는 대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다.

도반의 롯지에서 점심으로 네팔식 야채라면과 짜파티(네팔식 빵), 그리고 생강차를 마신다. 고레파니 숙소에 있을 때를 밖에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비를 만나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상당히 다행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오늘은 날이 상당히 흐리다. 이러다 운행 도중에 비를 맞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점심식사를 마친 프리티가 롯지 마당에 버려진 대나무 다발 중 실한 걸로 하나 주워든다. 그리고는 큰 쿠크리(네팔 전통 칼)로 잔가지를 툭툭 쳐낸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한참을 지켜보게 만든다. 그렇게 잠깐 동안 프리티도 자신의 대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낸다.

a  네팔의 밀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숭이. 얼굴 주변의 털이 하얀 게 특징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며 가까이 다가가자 달아나고 있다.

네팔의 밀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숭이. 얼굴 주변의 털이 하얀 게 특징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며 가까이 다가가자 달아나고 있다. ⓒ 김동욱


a  도반의 롯지에서 여기 롯지 주인의 딸이 내 점심을 들고 오고 있다. 네팔식 빵과 야채라면, 그리고 생강차가 이날의 내 점심 메뉴.

도반의 롯지에서 여기 롯지 주인의 딸이 내 점심을 들고 오고 있다. 네팔식 빵과 야채라면, 그리고 생강차가 이날의 내 점심 메뉴. ⓒ 김동욱


다시 길을 나선다. 지금 해발 2600m를 통과해서 계속 오르고 있는 거다. 아직까지는 컨디션이 정상이다. 전혀 고소증이 없다. 밀림을 통과하는 도중에 먼이 갑자기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수풀 저쪽을 가리킨다.

“원숭이다.”

정말이다. 수풀 너머 낮은 나무 위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가만히 보니 한 마리가 아니다.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있다. 그러나 원숭이들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재빨리 수풀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히말라야(Himalaya 2920)를 지나면서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데우랄리(Deurali 3230)에 닿기 전에 비를 만날까 걱정이다.

히말라야에서도 한국인은 한국인을 느낀다

트레킹 내내 올라가는 도중에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처음에는 무척 반가웠으나 이제는 그것도 시들해진다. 저쪽에서 내려오는 동양인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인지, 아니면 중국인인지, 혹은 일본인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서로 스치는 트레커끼리 인사를 한다.

a  내 가이드 먼바들 마갈. 17살 때 일찌감치 장가를 가서 11살 짜리 아들과 9살 짜리 딸이 있다.

내 가이드 먼바들 마갈. 17살 때 일찌감치 장가를 가서 11살 짜리 아들과 9살 짜리 딸이 있다. ⓒ 김동욱


“나마스떼~.”

그러나 저기 오고 있는 사람이 한국사람인 것 같으면 나는 ‘나마스떼’라고 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 트레커의 한국말이 돌아온다.

“아,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시군요.”
“예, 어디서 내려오시는 거예요?”
“ABC에서요. 세 명이 같이 왔는데, 두 명은 미리 촘롱까지 가 있구요. 제가 뒤늦게 따라 내려가는 겁니다.”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중이다. 나는 궁금한 것 몇 가지를 그에게 두서없이 물었다. 고소증을 겪지 않았는지, 느낌이 어땠는지 등.

“천천히 올라가시면 아무 문제없어요. 저도 괜찮았어요. 내일 데우랄리에서 바로 ABC까지 올라가세요. 문제는 지금이 트레킹 성수기여서 ABC 롯지에 방이 없을 수 있어요. 아침 일찍 포터를 먼저 올려 보내셔서 방을 잡아두게 하세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올라가시면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

a  데우랄리 닿기 직전 협곡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설산. 이 설산에 끌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이 이 길을 걷는다.

데우랄리 닿기 직전 협곡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설산. 이 설산에 끌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이 이 길을 걷는다. ⓒ 김동욱


나는 이 남자의 말에 큰 힘을 얻었다. ‘천천히 천천히’. 이 말은 지금껀 안나푸르나 트레킹 내내 나의 화두였다. ‘천천히만 오르면 아무 문제 없다.’ 데우랄리의 샹그릴라 게스트 하우스 롯지에 닿은 시각이 오후 3시쯤. 예상보다 1시간 정도 더 걸렸다. 여기서 나는 포터 한 명을 데리고 트레킹에 나선 두 명의 한국 아가씨들을 만났다.

a  데우랄리에서 만난 황현선(왼쪽) 양과 박가람 양. 22, 23살의 어린 나이에 타국에 와서 생활하는 씩씩한 아가씨들이다.

데우랄리에서 만난 황현선(왼쪽) 양과 박가람 양. 22, 23살의 어린 나이에 타국에 와서 생활하는 씩씩한 아가씨들이다. ⓒ 김동욱


이 두 아가씨의 이름은 박가람(23), 황현선(22)씨. 둘 다 대학생이며 국제비정부기구(NGO) 세계청년봉사단(KOPION) 소속으로 네팔에 들어와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여기 올라오다가 한국 아저씨 한 분을 만났거든요. 그분이 말씀하시길, 두 명의 한국 아가씨들이 먼저 올라갔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다리를 다친 것 같다고 했거든요. 바로 아가씨구나.”
“아, 예. 좀 삐었어요.”


언뜻 보니 현선 양의 왼쪽 발목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나는 프리티가 내려놓은 배낭을 열었다. 붙이는 파스와 쑥 찜질팩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

“그럼, 학교는요? 언제까지 네팔에서 생활하나요? 부모님들이 걱정하지 않나요?”

나는 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것저것 막 물어본다. 가람 양이 밝게 웃으면 대답한다.

“학교는 지금 휴학했어요. 네팔에는 내년 5월까지 있을 거구요. 아빠께서 많이 걱정하시긴 하지만 자주 전화를 드리고 있어요. 여기서 하는 일은 네팔 어린이들을 돌보는 거예요. 공부도 가르치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면서….”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밤 8시. 이 둘도 내일 ABC까지 오를 계획이라고 한다.

a  데우랄리의 롯지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목적으로 하는 트레커들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데우랄리의 롯지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목적으로 하는 트레커들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곳이다. ⓒ 김동욱


내일 아침 일찍 프리티를 먼저 ABC에 올려 보낼 생각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아무래도 프리티가 지고 갈 내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 여분의 배터리와 옷가지 등 ABC에서 당장 필요 없는 짐은 여기 데우랄리의 롯지에 맡겨두어야겠다.

여기는 데우랄리. 해발고도 3230m. 나는 내일 해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바로 들어간다.

여행 메모

1) 고소증은 해발 3000m 이상에 올랐을 때 생기는 현상으로, 병은 아니다. 증상으로는 머리가 어지럽거나 헛구역질이 나고, 호흡곤란이나, 심한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산소가 부족한 곳에 올랐을 때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 때문이다. 이런 고소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트레킹 중에는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2500m 이상부터는 하루 500m 이상 고도를 높이지 말 것을 권한다. 그러나 천천히 쉬엄쉬엄 오른다면 대개의 경우 아무 문제 없다.

2) 고소증 예방약으로는 다이아막스(Diamox)라는 이뇨제가 대표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이아막스는 의사의 처방 없이는 약국에서 구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는 강남의 필방사선과병원(원장 임현담 02-545-4757)에서 네팔 여행을 하는 트레커들을 위해 다이아막스를 처방해주고 있다. 나도 여기서 미리 다이아막스를 처방 받았고, 그것을 가지고 네팔에 갔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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