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우리나라 스님들 여기 다 모였다

[서평] 고은 시인의 시 대장정 <만인보> 24권

등록 2007.12.06 17:42수정 2007.12.0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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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면

 <만인보> 겉그림.

<만인보> 겉그림. ⓒ 창비


고은 시인이 1986년부터 3000명에 달하는 이 땅의 사람들을 등장시킬 계획으로 쓰고 있는 <만인보>24, 25, 26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갇혀 있을 때, 시인은  "만약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면 내 어린 시절의 기초 환경과 지나 온 시대의 사람 하나하나를 기념하는 일을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시편들이 <만인보>였다. 시인은 <만인보>1권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전작시편 만인보는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다. 나의 만남은 전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공적인 것이다. 이 공공성이야말로 개인적인 망각과 방임으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삶 자체로서 진실의 기념으로 그 일회성을 막아야 한다. 하잘 것 없는 만남 하나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

시인이 '만인보'를 쓰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곳은 고향인 옥구군 미면 미룡리 용둔부락이었다. <만인보>1권에서부터 시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온 내게 그 여정은 무척 흥미로운 것이었다. 생애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시인의 고향인 군산에서 산 적이 있는 나로서는 다른 어느 독자보다 시에서 누리고 포착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던 것도 행운일 것이다.

초기 <만인보>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미룡리나 선제리 등은 내가 막걸리를 마시려고 자주 왕림하던 곳이다. 어쩌면 난 고은 시인이 스스로 만신이 되어 머슴 대길이, 삼만이 할머니, 죽은 소금례, 선제리 아낙네들 등 이름없는 민중귀(民衆鬼)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씻김굿을 베풀기 훨씬 이전부터 그들의 삶에 연줄을 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펴낸 시집들(24~26권) 속엔 모두 395편(24권 121편, 25권 149편, 26권 125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시집들은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옛 고승들의 삶과 행적을 복원해내고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혜숙 같은 스님도 있고, 한때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출세간을 누비다가 환속한 고은 시인이 직접 만난 스님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내가 우선 읽은 것은 <만인보>24권이다.

시집 속에 등장하는 3가지 부류의 스님들


시집 속에 등장하는 스님들은 크게 나눠 3가지 부류의 스님들이다. 첫 번째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스님들은 어용과 사대주의, 친일 행위를 저질렀던 승려들이다.

먼저 시인의 죽비를 맞는 것은 자장 법사이다. "병든/ 여왕의 잠꼬대/ 자장이 나라를 팔았어/ 춘추가/  나라를 당나라에 갖다바쳤어( 시 '진덕여왕의 마지막')"라고 여왕의 입을 빌어 시인은 자장의 사대주의를 비판한다. 그런가 하면 이회광, 곽법경 등 친일 승려들의 삶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시'그 두 사람의 수작').

두 번째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스님들은 민족 및 민중의 편에서 싸운 스님들이다. 백용성 스님과 만해 스님의 상좌였던 동산과  춘성 스님( 시 '두 상좌'),  6·25때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효봉 스님(시 '팔만대장경의 밤'),  일제에 항거하려고 결사대를 조직했던 방동화 스님( 시 '방동화')  등이다. 다 같은 불제자였지만 난세에 대응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확연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이리라.

세 번째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스님들은 바람직한 승려상의 전법으로 꼽을만한 스님들이다. 조계종 종정을 지내시다 입적한 고암 스님( 시 '고암')이나 서암 스님(시 '서암'), 불과 몇 년 전에 입적하신 혜암 스님( 시 '혜암') 등 매우 긍정적인 승려의 표상이다. 그렇다면, 경허 스님 같은 분은 어느 범주에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할까.

계율이 우리를 구속하지 못한다 - 바람 같은 영혼

계율은 스님을 스님답게 지켜내는 울타리다. 그러나 거대한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그런 좀스런 울타리는 거추장스런 것인지 모른다. 신라 때 원효가 그랬고, 19c 경허 스님(1849 ~ 1912)이 그랬다. 아홉 살 때 과천 청계사로 출가한 경허 스님은 범어사의 조실을 역임하고 해인사의 경전간행 불사와 수선사 불사의 법주가 될 정도로 모범적인 승려였다. 그러나 그는 1904년에는 안변 석왕사의 오백나한 개금불사의 증사 노릇을 하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그 후,  박난주(朴蘭州)로 이름마저 개명하고 머리를 기르고 유관을 쓴 모습으로 갑산·강계 등지를 떠돌며 수많은 기행을 남기다가 1912년 4월 갑산에서 입적하였다. 그런 경허 스님이지만, 근대 선종의 중흥조로 평가받고 있다. 고은 시인은 경허 스님의 행장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삼수갑산
그 갑산 응이면 도하리
난덕산 밑
감자밭 조밭
날이 날마다 영하 30도 추위
거기로 갔도다


승복 벗고 머리 길렀도다
수염 길렀도다
경허 버리고
박난주가 되었도다

거기 두 아이 과부를 마누라로 삼았도다

(중간 생략)

옥수수술 좁쌀술이면
어느새
철딱서니 하나 없이
흥얼흥얼
또다시 대낮 마누라 불러 뉘었도다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방구석 어둠 좋아라


마누라 감창
썩 좋아라
자진모리
썩 좋아라


어디에도 경허 자취 온데간데없도다 - 시 '경허 마누라' 일부

경허 스님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어디에도 경허 자취 온데간데없도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여운을 길게 끌고 간다.

세 번이나 종정에 추대된 윤고암 스님에 대한 시편도 있다. 고암 스님의 하심은 유명하다. 몇 년 전, 현재 직지사 주지로 있는 성웅 스님에게서 스승인 고암 스님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아주 각별했다. 그런 고암 스님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한밤중에 섬돌 신발들
아무도 몰래
다 닦아 놓았구나


다음날 아침
그 신발 신는
1백 대중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롭구나 - 시 '고암' 일부


대중이 스님의 신발을 닦아 놓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스님이 대중의 신발을 닦아 놓은 것이다. 스님이 닦아준 신발을 신으면서 느꼈을 대중의 환희심이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또 '멋지더라'라는 시 속에는 백양사 백학명 스님과 통도사 경봉 스님(1892 ~ 1982)이 편지를 주고받으면 서로의 법 거량을 겨루는 멋진 장면이 형상화돼 있다.

물이 큰 바다에 들어가면
필경 어느 곳에서
싱거운 맛을 찾겠는고


그러자

입맛을 잃으셨소이다
그러면 짠맛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 짠맛 나는 곳을 가져오시오 - 시  '멋지더라' 일부


고은 시인의 승려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효봉 스님에 대한 글도 몇 편 끼어 있다. 효봉 스님의 원래 법명은 학눌이었으며 법호는 설봉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꿈에 나타난 제16세 고봉국사께서 '효봉'으로 하라고 이름을 지어주는 바람에 '효봉'이 된다.

꿈 깨어보니
고봉국사 없으시고
새 효봉께서 문을 여셨습니다
설봉 학눌이
효봉 학눌이 되셨습니다


학눌이라
학눌이라

일찍이 보조 지눌 그 지눌을 배우려 하셨습니다

어느새 키 작은 구산 수련이
세숫물을 갖다놓아드렸습니다
진작 새들은 깨어나
지지배배 지저귀고 계셨습니다 - 시 '이름 꿈' 일부


시 속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고은 시인의 스승인 효봉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는 듯하다. 끄떡하면 주지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요즘 세태와는 동떨어진 초월자로서의 스님의 모습도 여럿 등장한다.

잠 오면
얼음 깨어다
얼음조각 입 안에 물고
새로 결가부좌 틀고 앉았다


뒷날 이 다 빠져버렸다
우물우물
솔잎 가득 헹구어 마시면
하루가 또 갔다


주지 자리 하나에 지옥 3천개인 줄 몰랐더냐
영천 은해사 주지 그만두고
봉암사 토굴에 들어온 지
벌써 4년 반


이제 잠 오면 자고
배고프면
솔잎가루 먹고
율무가루 먹는다 - 시 '독살이 희만선사' 일부


배우고 싶고 따라하고 싶다 - 무위의 삶

출가한 스님이지만, 속세의 연을 끊지 않고 그대로 이어가는 스님도 있다. '극락암 경당스님'이란 시에 나오는 경당스님이 그런 분이다. 출가자지만, 그는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할어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제삿날까지 두루 챙긴다. 심지어 아들없이 죽은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제사까지 챙긴다.

이 제삿날은
혼자 제수 마련해서
혼자 위패 모시고
혼자 지극정성으로 제사 지냈다
다음날 밤 대추 사과 배 곶감 떡과 알사탕 등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준다


극락선원일지나
선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선방 마당이나 쓸고
법당 안이나 쓸고 닦는다
늘 웃는다
새보고 나무 보고 웃는다


암 이래야 하고말고 - 시 '극락암 경당스님' 일부

스님의 무골호인 같은 인간적  면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에겐 마당 쓰는 일이나 법당 안 청소하는 일이 염불이자, 선이다. 그러니 누가 경당 스님을 가리켜 치열하지 못한 수행자라고 비웃을 수 있겠는가. 이런 경당 스님과 짝을 이룰 만한 스님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

비가 오신다
그칠 줄 모르시고
비가 오신다
지나가시다
남의 집 처마 밑
비 그치시기를 기다리신다


석보 스님

조금도 지루하지 않으시다
웃은 듯 웃는 듯 웃을 듯
언제까지나 서서
비 오시는 것을 보신다
바야흐로 비는 비가 아니시다 무엇도 아니시다


석보 스님 - 시 '석보스님' 전문

아아, 배우고 싶고 따라하고 싶다. 경당 스님과 석보 스님의 생활 방식 혹은 삶의 태도를. 내가 만일 수행자라면 독살이 희만선사처럼 정진하고 싶다. 그러나 극락암 경당스님이나 석보 스님처럼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희만 선사처럼 사는 게 위(爲)의 삶이라면 극락암 경당스님이나 석보스님처럼 사는 것은 무위의 삶이다. 기어이 부처가 되고야 말리라는 무모한 집착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것보다는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는 삶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생을 놓아버릴 때도 이 같이 - 생태적 삶

<만인보> 어느 권을 펼쳐도 시인의 고향 사람 한둘 정도는 반드시 등장한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고향 사람은 아마도 '칠성암 노승'이 아닌가 싶다. 칠성암이란 아주 흔한 암자 이름이다. 그러므로 어느 지역 절집이라고 함부로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시 속에 나오는 칠성암은 시인의 고향 동네 근처에 있던  칠성암이라는 게 내 어림짐작이다.

시금치 씨 셋 뿌렸다
시금치 나시면
하나는 새가 뜯어 잡숫고
하나는 벌레가 갉아 잡숫고
하나는 내가 잡수어야지

낮길
짚신감발

짚신 신고 가면
길바닥 개미 죽이지 않지
지렁이
어쩌다 나온 굼벵이 죽이지 않지

밤길
짐승들 잠 깨우면 안되지
짚신 걸음 자취 없어
안성맞춤이지
벌써 칠성암 남새밭에 시금치들
처녀같이 자라났구나

요년들
요년들
출무성히 자라났구나 - 시 '칠성암 노승' 전문

비실비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시를 읽다 보면, 마치 한 폭의 신선도를 바라보는 듯하다. 칠성암 노승은 극락암 경당스님에 못지 않게 무애의 삶을 사는 분이다. 스님의 생태적인 삶이 텃밭에 자란 시금치처럼 싱싱하게 마음을 적신다.

아무래도 수행자로서 스님의 면목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가 결정판인 것 같다. 그래서 좌탈했는지, 서서 입망했는지가 화젯거리가 되는 것이 아닐는지. 시 '노승의 유언'은 생사를 초월한 수행자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내가
어디로 갈 모양이여


경(經)도 내버려
조주무자(趙州無字)도 내버려
저 아랫마을
술집 노파한테 찾아가
내 안부인사 전해주어
그 노파가
내 조실(祖室)이었어

잘들 있어

오늘 저녁 청계산 산수암
노승 일곡당 입적 -시 '노승의 유언' 일부

생을 놓아버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저런 태연자약함을 보였다면 그의 생전은 어떠했을지 보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그 노파가/ 내 조실(祖室)이었어"라는 고백은 성과 속이 결코 불이(不二)가 아니라는 걸 설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시는 시가 아니라 법문이다.

동시대에 태어난 독자라서 행복하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는
이 나라 이 산야에 태어나 이름 없이 살다 쓰러져 간 민중의 혼을 부르는 초혼제이다. 시인은 스스로 만신이 되어 머슴 죽은 소금례, 대길이, 삼만이 할머니, 선제리 아낙네들 등 이름없는 민중들의 혼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씻김을 베푼다. <만인보> 24권에 이르러선 지금쯤 육간지옥에 있을 법한 스님과 극락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을 법한 스님들을 불러 고풀이 한 마당을 베푼 것이다. 고암 이응로 화백의 그림 <군상>을 넣은 시집 표지도 무척 아름답다.

육신의 고향인 군산에서 출발해서 시인의 정신의 고향이랄 수 있는 승가에까지 이른 것이다.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 시의 여정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나 보다. <만인보>는 내년 3월, 전30권으로 완간될 것이라 한다.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만인보> 24권을 읽는 시간은 행복했다. 고은 시인은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존재들의 삶의 자취들을 복원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인은 그걸 가리켜 '역사의 불가결성'이라 하지만 고은이라는 특출한 시인이 아니라면 누가, 어떻게 그걸 드러낼 수 있었겠는가. 그런 시인과 동시대에 산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만인보24/ 고은/ 창작과비평사 / 9,000원/ 2007.11.23


덧붙이는 글 만인보24/ 고은/ 창작과비평사 / 9,000원/ 2007.11.23

만인보 완간 개정판 1.2.3 - 만인보 완간 개정판 전집 1

고은 지음,
창비, 2010


#만인보 #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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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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