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금은 말도 안 되고요"

[그게 정말 다 내 탓? (23)]

등록 2007.12.06 16:31수정 2007.12.0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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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갈 필요가 있지,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기사를 보니 이명박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왜 다들 그런 소극적 생각에 매달릴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취업난은 해가 가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젊은이 탓이라는 어른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더 나은 기회를 찾고자 해외로 나온 한 젊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삶에 도전하려는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도와주어야 할 부분은 없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1부 <그래 다 내 탓이다, 하지만>에 이어 2부 <정말 다 내 탓?>를 연재하고자 한다. 부디 나무를 통해 숲을 그릴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기자 주>

 

"위약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고요."

 

원장이 그런 말을 꺼내자 가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위약금이라니. 대체 무슨 의도로 위약금 얘기를 꺼낸 것이었을까. 계약서를 쓸 때 계약 기간까지 일하지 않으면 위약금을 문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보고 위약금을 내라고 할 생각이 있었다는 뜻인가? 학원 쪽에서 먼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인데 어째서 내가 위약금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어떤 이유에서든 '위약금'의 '위'자는 꺼낼 이유조차 없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그만두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위약금 얘기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아니 꺼낼 이유조차 없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왜 그 이야기를 꺼냈을까? 반대로 내가 학원에게 위약금을 물어달라고 요구할 까봐 그런 것이었을까? 계약이란 것은 상호 합의 하에 작성된 것이니 만큼 서로가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만큼 학원에서 먼저 계약을 파기하자고 말한 것이니 나 역시 학원에 위약금을 달라고 할 권리가 있었다. 혹시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이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학원에 대해 갖고 있던 정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시작했다. 경영하는 입장에서 이윤을 우선시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직원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생각해주었다면 내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전부터 선생들이 연달아 학원과 불편하게 끝을 낸 것도 학원이 지나치게 학원 입장만을 내세운 것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비자 문제부터 항공권, 정해진 수업 시간보다 많은 강의, 한국 학생이 없을 때 중국 학생을 데리고 와서 한국어 수업이라도 여는 등 나름대로 학원 입장을 고려해 학원을 이해하고 배려해준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것은 배신감뿐이었다.

 

그렇게 학원과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다 보니 남은 계약 기간 동안 학원에 있는 것이 그야말로 곤혹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학원과 마지막 정산을 하기로 한 날이 왔을 때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미움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차피 마지막 날이니 만큼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게 되었고, 최근에는 내 인사도 잘 받지 않던 원장이 드디어 내게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 보여준 것이었다.

 

"원장님, 그 미술 선생님 말인데요."
"미술 선생이 무슨 얘기를 했던 간에 우리도 할 만큼 했습니다. 미술 선생이 나가면서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미술 선생도 학원에 잘한 거 없어요. 우리가 미술실 다 만들어 놓고 나서 이제 미술 과목 여는 일만 남았는데 미술 선생이 갑자기 못하겠다고 한 겁니다. 물론 다른 선생들과 월급 차이가 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 오기 전에 미리 합의하고 들어온 거 아닙니까? 그런데 들어와서 다른 선생이랑 월급 차이난다고 미술실까지 다 만들어 놓았는데 못하겠다고 하면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원장은 내가 한 마디 꺼냈을 뿐인데 도리어 흥분하여 자세히 얘기를 해주었다. 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술 선생의 태도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 선생도 학원도 서로 입장만 생각했을 뿐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주지 않았을 테니 각자 자신이 더 정당하다고 주장할 만한 사항이었다.

 

"그 날 어디 갔다 왔습니까?"

 

그런데 난데없이 원장이 내게 공격적인 질문을 해왔다.

 

"예?"
"그 두더지 선생 들어온 날 있지 않습니까?"

 

족제비 영어 선생이 가고 새로 나랑 같이 방을 쓰게 된 두더지 선생이 들어온 날 내게 어디를 갔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글쎄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정말 그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같이 쓰는 방에 사람이 들어오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내가 그 때 한 번 확 뒤짚어 엎을까 하다가 참았어요."
"아, 그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 큰 성인에게 뒤짚어 엎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일단 죄송하다는 마음부터 전하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심사가 뒤틀려 있어서 같은 방을 쓰는 새 선생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시하기로 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리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 서로 간에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고 마무리를 지었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끝내는 순간만큼 악수를 하고 웃으며 끝냈다. 그렇게 대학교 졸업 후 꿈을 찾아 헤매던 두 번째 기간이 막을 내렸다.

 

-24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위에 나온 인명 및 지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2007.12.06 16:3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위에 나온 인명 및 지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청년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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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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