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욕인지 욕이 말인지 구분이 안 가요"

부모의 관심으로 아이들 바꿀 수 있다

등록 2007.12.06 18:39수정 2007.12.0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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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는 동네 문방구에 갈 일이 별로 없다. 더구나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는 문방구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오늘은 마음먹고 아파트 앞 초등학교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문방구를 찾아 나섰다.

 

조그만 문방구를 발견했지만 마침 하교 시간이라 지지배배거리는 꼬마들로 좁은 문방구 안은 북새통이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하자니, 10여 년이 지났지만 별로 변한 것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대화만은 딴 세계에 온 듯 변해 있음을 느끼면서 한탄의 한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절로 나왔다. 오래 전부터 사려고 벼르던 사소한 물품 탓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대화가 궁금해서 이것저것 만지며 아이들 곁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야, 그 ㅅㄲ는 ㅈ나 재수 없어.”

“야, ㅆㅅㄲ야 너도 아까 그 ㅅㄲ랑 같이 있었잖아.”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계속되었다. 듣자니 학교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던 모양으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행동에 못마땅함을 나타내자 곁에 있던 다른 아이가 ‘너도 그 아이랑 함께 있었지 않았느냐’며 조금 전의 상황을 얘기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문방구를 빠져나갔다. 문방구 안은 햇빛에 비친 뽀얀 먼지가 목구멍을 매캐하게 했다. 아이들의 대화에 충격을 받은 나를 본 문방구 아주머니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저 정도는 약과예요. 쟤들은 어려서 그나마 덜한 거구요. 중고등학생들이 오면 이건 말이 욕인지 욕이 말인지 구분이 안 가요.”

 

“그 정도예요?”


“짧은 대화든 긴 대화든 욕이 안 들어가고는 말이 안 되나 봐요.”


아주머니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가 손님의 90%를 차지하다 보니 매일 듣는 그들의 언어가 이젠 놀랍지도 않다고 했다.

 

15년 전쯤의 일인가 보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의 일을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었나를 말해 준다.

 

나는 재미나게 노는 남매에게 가게에 가서 무엇인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었다. 아이들은 얼마나 빨리 다녀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사온 물건을 내게 건네주고는 다시 놀이를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갔다 왔어?”


신통해서 묻는 내게 작은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응, ㅈ나 뛰었어요.”


경악을 금치 못한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니들 지금 ㅈ나 뛰었다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


이번에는 큰아이가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할 때 쓰는 말이에요.”


“누가 그래? 열심히 할 때 그런 말 쓴다고.”


이번에는 남매가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 다 그렇게 하는데.”


하도 기가 막힌 대답이라 잠시 뜸을 들여야 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서 그들과 마주앉았다.


“니들 아까 그 말, 말인데, 엄마가 얘기할게 잘 들어 봐.”


차라리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아이들에게 성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큰아이를 상대로 시작했다. 할머니께서 네가 태어났을 때 집안에 살림 밑천이 태어났다고 기뻐하셨다는 말과 함께 여자의 성기를 일컫는 순수한 우리말과 동시에 생리에 관한 얘기까지를 하는데 어휘의 선정과 표현이 정말 조심스러웠다.


이어서 작은아이에게 얘기를 하는데, 역시 할머니께서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났다며 기뻐하시던 모습과 그 말은 남자의 성기를 일컫는 순수한 우리말임을 강조하면서 ‘그렇게 귀한 고추를(편의상) 함부로 말해서야 되겠느냐’고 두 아이에게 물었더니 동시에 “아니요”라고 했다. 아이들이 어려서 과연 잘 이해를 했을까도 걱정이었지만 그 이후로 그들 입에서 다시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요즘은 부부 맞벌이 시대라서 부모가 바빠서 아이들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이 교육을 시킨답시고 학원 한 곳 더 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시간 되는 대로 저녁상머리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아이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맞는 이야기와 부모의 경험담을 비추어 들려주면 욕뿐만이 아니라 더한 비탈길을 걷다가도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주인은 자라나는 아이들이지만 이 시대의 주인을 만드는 역할은 사회보다, 학교보다 앞서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함을 우리 부모들이 모를 리 없다. 바쁜 몸일지라도 한 발만 집 안으로 들여 놓고 내 가정에 훈기를 불어넣는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내 자식이 책임지는 바람직하고 훌륭한 사회로 변모할 것이 아닌가.

2007.12.06 18:39ⓒ 2007 OhmyNews
#욕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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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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