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전성시대, 그 강점과 약점

등록 2007.12.12 11:52수정 2007.12.1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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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해동안 TV 예능프로그램의 대세는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6명의 집단 출연자가 등장해 각각의 확고한 개성을 바탕으로 일정한 주제나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의 버라이어티쇼가 상한가를 기록했다.

 

MBC <무한도전>은 이러한 예능 추세의 최선봉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현재 국내 최고의 MC 유재석을 중심으로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여섯 명의 남자들이 매주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도전하는 <무한도전>은 오늘날 한국형 ‘리얼 버라이어티’의 한 전형을 창조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한도전 스타일’이 하나의 추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히 방송가에서도 이 프로그램의 ‘리얼 버라이어티’형식을 차용한 후발 주자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표절이나 아류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유행에 민감한 방송가에서 성공한 프로그램의 장점이나 개성을 모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얼마나 다른 맛과 향기를 가진 요리를 만들어낼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이기도 한 SBS <라인업>은 제작단계부터 노골적으로 <무한도전>을 의식했다. MBC 계열의 케이블 채널 에브리원에서 방영중인 <무한걸스>는 아예 제목에서부터 <무한도전>의 ‘번외편’을 표방했다. KBS <상상플러스>, <해피선데이>의 간판코너 ‘1박2일’이나 ‘하이파이브’, 코미디 TV의 <기막힌 외출> ,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불가능은 없다‘ 등도 모두 넓은 의미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형식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 프로그램들은 각기 얼마만큼의 유사성과 또 차별화된 코드를 가지고 있을까. <무한도전>을 통해 리얼 버라어이어티의 흥행 코드는 등장인물 간 조화를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과 생동감 그리고 무형식이 주는 자유분방함과 유연성에 있다. 이렇게 각 멤버들의 캐릭터가 확고하게 자리잡기까지는 수개월 이상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무한도전>이후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안에 가까운 프로그램으로 <1박2일>이나 <무한걸스>를 들 수 있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방영초반 <무한도전>의 아류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 멤버들이 자주 교체되며 프로그램의 스타일이 자리를 잡는 데도 역시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1박2일>은 6명의 출연자들이 대한민국 전국의 알려지지 않은 명소나 여행지를 찾아간다는 ‘서바이벌 야생 버라이어티’라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그러나 <1박2일>은 국내 최고의 예능 MC중 한명으로 꼽히는 강호동과 재능있는 출연자들을 대거 내세우고도 초반 이렇다할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로드 버라이어티라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고유의 아이템의 부재,  복불복 등 반복되는 한정된 게임과 몇몇 출연자의 입담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구성이 원인이었다.

 

프로그램의 중심이 너무 강호동 위주여서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이나 고유의 개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쉬움을 남겼다. 강1기멤버였던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을 제외하고 지상렬, 김종민, 노홍철 등 주요멤버들이 잇달아 바뀌며 또다시 새로운 캐릭터들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어디를 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가야하는가’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두는게 중요하다. ‘전주 편’이나 ‘독도 편’처럼, 여행지의 문화적 특성을 부각시키거나 현지참여를 통하여 여행지의 현장성과 역동성을 부각시키는 게 관건이다.

 

<무한걸스>는 국내 예능프로그램 사상 최초의 정식 ‘스핀 오프’(일종의 번외)라는데 의미를 둘 만하다. 그동안 방송사별로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기존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버전을 표방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 <무한걸스>는 같은 MBC 계열사 프로그램에서 처음부터 <무한도전>의 ‘여성버전’임을 분명히했다.

 

<무한걸스>는 공중파보다 표현의 자유가 높은 케이블 채널의 특성을 십분 살리면서도, 때로 지나친 과잉액션이나 저속함으로 일관하는 남성 위주와 버라이어티와 차별되는 여성 버라이어티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무한걸스>의 최대미덕은 <무한도전>과 같은 ‘무형식성’이다. 명절특집으로 시험편성되었던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부터 <무한걸스>는 출연자들의 신체 사이즈 공개, 심마니 특집, 스피드 다이어트, 차력쇼, 섹시 화보, 해병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맷을 넘나들며 자유분방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무한걸스>는 비슷한 여성 버라이어티인 <하이파이브>와 비교하여서도 분명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하이파이브>는 캐릭터들의 비중과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망가지는 캐릭터와 예쁜 척하는 캐릭터가 분명하고, 매주의 아이템이 주는 독창성보다는 출연자들의 개인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무한걸스>는 각 캐릭터 간의 친화와 균형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가 좀더 강하다. ‘여자 유재석’이라 할 만큼 멤버들의 개성과 심리를 폭넓게 아우를줄 아는 맏언니 송은이의 노련한 진행을 바탕으로 여섯명의 여성들이 모두 몸을 사리지않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것.

 

팀내 2인자이자 밉지않은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신봉선과 백치미 캐릭터로 어필하고 있는 백보람의 콤비는 <무한도전>의 박명수와 정준하를 연상시킨다. 막내 김신영의 몸개그는 노홍철이나 조혜련보다 더 ‘독하다.’ 곱상한 외모로 예측불허의 개그를 선보이는 정시아는 <무한걸스>의 새로운 발견이다. 2기 때부터 합류한 오승은의 캐릭터가 다소 불확실하다는 게 아쉽지만, <무한걸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멤버들의 역할이 각자 자리를 잡으면서 ‘캐릭터 버라이어티’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추어가고 있다.

 

반면 <라인업>은 ‘드림팀'이나 '호화군단’이 반드시 최고의 성적을 보장해 주지않는다는 씁쓸한 예로 남을 만하다. 이경규, 김용만, 신정환, 김구라 등 <라인업>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현재 대한민국 예능계의 간판 입담꾼들이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방영 수개월을 넘겼음에도 <라인업>은 ‘ 생계형 버라이어티’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살리지 못하고 있다.

 

멤버들을 하나둘씩 탈락시키던 서바이벌 시스템이나 ‘라인간 대결구도’는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진 지 오래고, 현재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재탕과 아류를 불확실하게 오가고 있다. 캐릭터 간 비중 차이도 크다. 이동엽이나 윤정수의 캐릭터는 여전히 불분명한 반면 김구라나 신정환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그대로 복제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미 전작에서 기존의 캐릭터가 확고한 ‘중견급’ 출연자를 다수 모아놓은 구성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미덕이라할 수 있는 상생과 균형의 묘를 파괴시켰다. 야구로 따지자면 팀배팅이나 타선 구분이 없이, 1번부터 9번부터 각자 장타를 휘두르겠다고 개인플레이를 펼치는 팀을 연상시킨다.

 

<라인업>은 빈약한 아이템에 비해 이름값에만 의존하다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리얼 버라이어티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보여주는 반면 교사와도 같다.

2007.12.12 11:52ⓒ 2007 OhmyNews
#버라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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