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홍 의병장 후손 안병진씨
박도
- 의병장 후손으로 살아온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가방 끈이 짧아요. 중핵교밖에 못 나왔시오. 그래서 이발소에서 일도 하고…… 지금은 농사짓고 있어요.”
- 얼마나 지으십니까?
“한 이십 마지기 짓고 있어요.”
- 담살이로 의병장이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하셨다는데 참 자랑스럽지요. 문덕면 산골짜기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고 실천하셨는지 꿈 같은 얘기고 신화 같은 이야기지요. 그만큼 할아버지는 마음이 담대하고 (도량이) 크신 분이었나 봅니다. (머슴도) 다 같은 백성인데 ‘이름이라도 냄기고 죽자’라는 그런 큰 뜻이 있었다고 봐요.”
- 의병장 후손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 집안에서 오래 전(1978년)부터 사당이랄까 기념관 건립을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졸병이 없는 대장이 어디 있습니까? 호남 어디 한 군데에다가 전 의병의 넋을 기리는 큰 사당이랄까 탑을 세웠으면 좋겠구먼요.”
곁에서 줄곧 잠자코 듣고만 있던 고영준 선생이 물었다.
“3.1절이나 8.15 광복절 날 군에서 인사나 있습니까?”
“없어요. 그 전(임명 때)에는 군수가 해마다 한 차례 찾아와서 제수에 쓰라고 봉투 하나 놓고 갔는데 민선 이후에는 꼴도 못 봤소.”
“그래요? 내가 사는 곳(담양)이나 이웃 장성은 일 년에 두 차례씩 꼭 찾아오는데…….”
“…….”
느닷없이 찾아간 불청객이 더 이상 머물기가 미안했다. 취재에 뭔가 미진했지만 날도 저물고 시장도 하여 작별 인사를 드리고 귀로에 올랐다. 그새 밖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조선왕조는 왜 망했을까창평으로 돌아오면서 조선왕조가 왜 망했는지 그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500년의 왕조가 망하는 데는 그 까닭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게다. 한 역사학자는 정치적으로는 국민주권주의를 철저히 거부하는 전제군주제 때문이요, 경제적으로는 상공업의 발전을 극히 제한하는 지주 소작 중심체제 때문이요, 사회적으로는 양반 상놈의 신분제 때문이요, 사상적으로는 성리학 유일체제가 너무 오래 유지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