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 후보와 정책협약을 체결한 뒤 노총 관계자,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기호2번을 뜻하는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남소연
얼마 전 한국노총은 한 후보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이들이 선택한 후보는 자신의 '반노조' 성향을 거듭해서 밝혀온, 따라서 노조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람이었다. 해당 후보는 '지하철 기관사는 쉬운 자리여서 그게 드러날까 봐 파업도 못 한다'는 발언에, '인도에서는 노동자들이 자부심이 있어서 노조를 만들지 않는다'는 말로 노조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달 초, '한국대중문화 예술인 복지회' 소속 연예인 30여 명 역시 기자회견을 열어 한 후보에게 지지를 선언했다. 이 '후보야말로 대중문화 선진국의 위업을 달성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동안 보여준 문화관은 '불건전 음악인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올리라'는 주문과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한 달에 한두 번 공연하면 나머지는 자유시간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전국의 42개 대학 총학생회장들도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그가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최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이 지지자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나가 비정규직의 고통을 온몸으로 안게 될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이 선택한 후보는 집권 후 '기업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면 언제든지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사람이다.
모순적인 지지선언으로 말하면 종교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는 가장 심각한 도덕적 논란에 휩싸인 사람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주류'와 동일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될 사람'에게 잘 보이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군사독재시절에 얻은, '밉보여서 좋을 일 없다'는 교훈 때문일까?
앞서 말했듯,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지지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에 앞서, 지지 후보의 집권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생각할 일이다.
내일 필요한 것은 사표다사람들은 생각보다 과거를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 선거만 해도 그렇다. 월드컵처럼 4년마다 돌아오는 일상적인 행사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러나 대선은 20년 전, 우리가 피로 얻어 낸 소중한 권리다. 우리가 대통령 직선제를 얻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생각한다면 개인에게 주어진 표를 함부로 던지거나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중한 기회를 활용해 반드시 나의 이익을 지켜줄 사람에게 표를 던지도록 하자.
'사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에게 안 던지면 사표가 된다'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어도 '될 사람'이니, 무시하고 당신의 지지를 표하라. 막연히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나, 이유 없이 그 사람을 찍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 수도 있다. 이익에 반하는 선호, 우리는 이것을 '이데올로기'라 부른다.
'될 사람'을 자임한 후보가 사회 변화를 주도한 적은 없다. '될 후보'만을 찍는 국민이 역사를 바꾼 일도 없다. 비록 당신이 던진 표가 이번에 대통령을 만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표는 언젠가 변화를 일구어 낼 것이다. 그러나 '될 사람'을 따라 찍는 유권자들에게는 미래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오직 당신의 용감한 '사표'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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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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