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가기전 꼭 읽고 싶었던 '그'의 소설

[일본 소설 맛보기 10 ] 다자이 오사무 <여자의 결투>

등록 2007.12.30 16:49수정 2007.12.3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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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집 <여자의 결투> ⓒ 하늘연못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집 <여자의 결투> ⓒ 하늘연못

다자이 오사무. 예전에 그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일본 근대작가로서 자살을 네 번이나 시도했고 결국 자살로써 젊은 생을 마감했던 비운의 천재작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더 유명했던 그의 대표작으로는 <인간실격>이 있다. 그러나 난 그의 작품을 한 편도 읽어보지는 않았다. 

 

읽기 두려웠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일부러 읽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 드리워진 어둡고 황량한 생의 그림자, 피폐하고 가냘픈 영혼의 떨림이 왠지 두려웠다.

 

그러나 올해가 가기 전 왠지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이라면 좀 거창한 것 같고 어쨌든 오가며 스치는 책장의 책들 사이에 외롭게 그러나 결연하게 꽂혀 있는 <여자의 결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여자의 결투>에는 그의 중단편소설 5편이 실려 있다. 단편소설 <여자의 결투> <걸식 학생> <광대의 절규> <고전풍>과 중편소설 <쓰가루>가 소개되어 있다. <여자의 결투>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19세기 독일소설가 헤르베르트 오일렌베르크가 쓴 단편소설 <여자의 결투>를 다자이가 다시 각색하여 쓴 작품이다. 오일렌베르크를 작중 화자로 설정한 뒤 여기에 자신의 상상의 나래를 더하여 쓴 액자형식의 작품이다.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시도 엿보이는 소설들


<걸식학생>과 <광대의 절규> <고전풍> 모두 다자이의 육성과 그림자가 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다자이의 간단한 프로필만을 알고 있는 독자라도 위의 세 작품에 드러나는 ‘나’가 곧 다자이 자신임을 눈치챌 수 있다. <걸식학생>의 경우 ‘나’는 다자이 자신의 이야기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고전풍> 역시 작품 속 주인공이 ‘미노 쥬로’가 곧 다자이의 젊은 초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고 독특했던 작품은 <광대의 절규>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랬다. 형식상으로는 <여자의 결투>가 실험적이고 참신한 면이 더 돋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광대의 절규>에 이르면 말하는 ‘화자’와 주인공 ‘요조’와 작가 ‘다자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경계가 허물어져 버린다. 이 소설의 배경이, 다자이가 21살 카페의 여급과 동반자살을 했던 그 사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라면 그 모호함은 더한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모호함과 혼란스러움은 사실 다자이가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광대의 절규>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다자이의 목소리와 주인공들의 목소리는 서로 뒤섞여 있다. 특히 <걸식학생>의 경우, 작품을 쓰는 내내 피해의식과 열등의식, 위축감에 사로잡힌 다자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비단 <걸식학생>뿐 아니라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형편없는’ ‘썩어빠진 벌레가 숨쉬고 있는 더러운 작품’ ‘유치한 묘사’ ‘쓰레기같은’ ‘보잘것없는’ ‘추악한 작품’이라고 혹평하며 또한 자기 자신을 ‘작가의 자격이 없는 무지한 인간’ ‘형편없는 인간’ ‘바보’라고 칭했던 다자이 오사무. 읽는 사람이 오히려 괴로울 정도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혹사했던 그였지만 그의 중편소설 <쓰가루>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결벽하리만치 순수했던 그의 젊은 영혼


<쓰가루>는 그의 고향 ‘가나기’에 다자이가 십여년 만에 귀향하여 삼주일간 여행한 경험을 적은 기록이다. 그에게 고향은 무엇이었을까. 증오의 대상이자 연모의 대상이었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함.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한때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그에게 젊은 시절 동네 유지였던 자신의 부모와 자신의 집안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쓰가루>에는 고향에 대한 그의 이러한 애정이 진하게 담겨 있다. 단지 지질이나 천문, 지리, 역사 등을 기술한 것을 떠나, 사람과 사람의 마음 상태와 교류하는 ‘사랑’이라는 과목을 생각하며 쓰겠다고 저자는 작품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인정, 풍속, 문화 등을 기술했고 여기에 그 고장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술해 놓았다. 아마 그 당시 쓰가루 지역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쓰가루>까지 읽고서야 왜 사람들이 다자이 작품을 ‘영원한 청춘의 문학’이라고 부르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단지, 그가 요절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참으로 순수했던 영혼이었다. 너무 순수하고 결벽했던 나머지 조금의 이해관계나 불신, 비굴함, 떳떳치못함을 허용할 수 없던 것이리라. 그런 정신이야말로 젊음의 정신아닐까. 비록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은 둥글어지고 마모된다고 해도 말이다.

 

작품의 뒤편에는 소설가 한수산씨가 쓴 <내 취재노트 속의 다자이 오사무>가 실려 있다. 다자이의 생가는 너무나 튼튼하고 웅장하게 잘 지은 건축물이라 주인들이 세상을 다 뜬 후에도 허물지 않고 여관으로 운영했다 한다. 한수산씨가 쓴 글은 바로 이 다자이의 생가를 찾아가며 다자이를 추억하는 내용인데 읽으면서 나도 꼭 한 번 그 여관에 묵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제 그 여관은 없다. 대신 다자이를 기념하는 문학기념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제 내년에는 그의 작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사양>과 <인간실격>을 읽어볼 예정이다. 아마 그 작품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자이는 왜 그렇게 자살하려 했던 것일까. 그의 대표작 <사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살고 싶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씩씩하게 살아남아야 하고 그건 그래도 멋진 일이며 인간의 영광이란 것도 틀림없이 이런 데에 있을 테지만 그러나 죽는 것 또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겐 살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을 권리도 있을 테죠.” 

덧붙이는 글 | 여자의 결투/ 다자이 오사무 지음, 노재명 옮김/ 도서출판 하늘연못/ 12,000원

2007.12.30 16:49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여자의 결투/ 다자이 오사무 지음, 노재명 옮김/ 도서출판 하늘연못/ 12,000원

여자의 결투 - 일본 현대문학 대표작가 에센스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노재명 옮김,
하늘연못, 2005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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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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