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하라항구 근처에 있는 300년 전 조선어학교의 터.
김종성
팍스 시니카와 별개인 미니 국제질서, '팍스 코리아나'그럼, 한국과 대마도는 어느 정도의 연합을 이루고 있었을까? 그 연합의 정도는 서두에서 언급한 ‘팍스 코리아나’의 수준으로 설명될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동아시아 정세를 살펴보면 그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14~16세기에 동아시아에는 당대 최강 명나라의 패권을 전제로 하는 팍스 시니카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는 팍스 시니카로부터 독립적인 별개의 ‘미니 국제질서’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팍스 코리아나였다.
오늘날의 미국이 세계 모든 지역을 다 장악할 수 없듯이, 과거의 명나라도 동아시아 전체를 다 관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러한 ‘틈새시장’을 뚫고 조선왕조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팍스 코리아나였다. 조선은 명나라 주도의 국제질서에 편입되는 한편, 독자적으로 미니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등의 이중적 상태에 처해 있었다.
이 팍스 코리아나는 조선을 중심으로 대마도·여진족이 참여하는 독립적 국제체제였다. 항상 식량부족에 시달렸던 대마도·여진족은 일정 정도의 식량원조를 받아가는 대신 조선왕조의 지도력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조선이 정한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낄 수 없는 무역 시스템이 존재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무역을 하듯이, 대마도·여진족은 조선왕조가 정한 규율에 따라 무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대마도는 조선정부에서 발행한 통신부(通信符, 일종의 무역허가장)를 어떻게든 확보하지 못하면, 조선을 상대로 무역을 할 수 없었다. 조선은 자신들이 만든 룰에 따라 대마도나 여진족을 통제했다. 대마도나 여진족은 쌀을 얻기 위해서라면 조선이 만든 룰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진족이나 대마도의 충성심이 백옥처럼 ‘순결’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여진족 군소정권들 중에는 명나라에만 사대하는 쪽도 있었고 조선에만 사대하는 쪽도 있었고 조선·명나라 양쪽에 다 사대하는 쪽도 있었다. 대마도는 조선·일본 양쪽에 사대하고 있었다.
여진족·대마도의 충성심이 식량원조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조선 입장에서는 대마도나 여진족의 변경침입을 막는 동시에 일본·명나라를 견제할 필요성에서 식량원조를 매개로 이들을 자국의 영향권 하에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대마도의 경우에는 조선으로부터 책봉을 받음으로써 일본이 자신들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선과 일본의 교류를 매개함으로써 자신들의 국제적 입지를 넓힐 수 있었다.
이처럼 14~16세기에 동아시아에서는 그 시대 나름의 정치·경제적 필요에 기인하여 조선-여진족-대마도가 하나의 긴밀한 국제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명나라 주도의 동아시아질서와 별도로 존재한 이 국제질서를 주도한 쪽이 조선이었으므로, 그것은 팍스 코리아나라 할 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팍스 코리아나는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 질서가 변질될 때까지 조선-여진족-대마도 세 지역의 평화(불완전하나마)를 창출하는 데에 일정 정도 기여하였다. 한편, 이 체제는 명나라 주도의 팍스 시니카를 견제하는 역할도 했다.
여진족 일부가 팍스 코리아나와 팍스 시니카 양쪽에 다 줄을 대면서 세력을 확대한 것에서 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결과적으로 볼 때 팍스 코리아나는 여진족이 명나라의 압력을 완화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위와 같이 14~16세기에는 동아시아에서 명나라 중심의 국제체제와 별도로 조선 중심의 또 다른 미니 국제체제가 존재했고, 팍스 코리아나라 이름 할 만한 그 미니 국제질서에 여진족과 함께 대마도도 편입되어 있었다.
대마도는 팍스 코리아나 안에서 비록 만족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식량을 제공받으면서 조선을 상국으로 대하며 살았다. 그러한 사대는, 대마도가 그 좁고 척박한 섬에서 나라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노하우’였다. 그리고 적어도 팍스 코리아나가 기능을 발휘하는 동안에는 조선-여진족-대마도 간에 평화가 존재할 수 있었다.
대마도는 이처럼 한반도의 지방정권은 아니었지만, 특히 14~16세기에는 한반도와 함께 또 다른 국제체제를 형성한 ‘고도의 협력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조선과 대마도는 비록 하나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렇다고 완전한 남남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긴밀하고 특수한 관계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