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외국인을 장·차관에까지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화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와 관련된 문제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요한복음 4:44). 같은 고향에서 함께 자란 사람을 신비한 선지자로 떠받들기 힘든 인간의 심리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정자의 경우에는 이와 다르다. 대통령을 포함한 장차관 등의 위정자인 경우에는 원칙상 자기 고향이 아니고서는 환영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원칙상 자기 스스로 처리하고자 하는 정치적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자기 자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만한 인물에게 통치를 맡기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국회의원 희망자들이 자기 고향에서 출마하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자기 국민들을 대변할 만한 '동포' 중에서 자신의 동료인 장차관을 뽑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외국인을 장차관에 앉히는 것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예외적인 경우로 국한되어야 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지만 그럼, 외국인 장차관 임명은 어떤 경우로 국한되어야 할까? 대략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강대국의 간섭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자기 나라의 국세가 취약한 경우다. 재정적 이유 등으로 인해 다른 기업의 경영간섭을 받을 때에 그 기업이 파견한 인물을 자기 회사의 이사로 선임하는 예가 있듯이, 강대국의 간섭을 이겨낼 수 없을 정도인 경우에는 그 강대국이 파견하는 장차관을 부득이 임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자국의 관료집단이나 지식인들이 세계의 신조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예컨대, 구한말의 조선처럼 서양의 근대화 흐름에 현격히 뒤져 있는 경우에는 선진 외국 출신의 장차관을 어쩔 수 없이 임용할 수도 있다.
셋째, 통치자가 자국 내 정치세력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다. 무언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지만 자신의 추종자들이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자기 뜻을 제대로 따라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다. 그런 경우, 국내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인 장차관은 자신을 임명해준 통치자의 뜻을 충실히 추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이질적 요소를 끌어들여서 동질적 요소를 견제하고자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2월 25일 이후의 대한민국에 과연 이러한 상황이 존재할지 여부는 누구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다. 이명박 당선인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 점에 관한 한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 만약 부득이하게 외국인 장차관을 임명해야 할 경우라면, 우리는 어떤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까? 그 문제점을 구한말 조선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구한말에 조선을 장악한 주요 외세로는 청나라·일본·러시아 등이 있다. 이 나라들은 조선을 자신의 세력판도로 만들기 위해 자국인 혹은 서구인들을 조선(혹은 대한제국) 정부에 파견했다. 이 나라들은 자국 혹은 서구인 장차관들을 파견하거나 또는 고문단을 파견하는 방법으로 조선의 내정·외교에 간섭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이 파견한 고위급 관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임명권자 혹은 자기 조국에만 충실했을 뿐, 조선왕조나 조선 백성들의 안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들로 인해 구한말의 조선이 얼마나 많은 이권을 빼앗겼는가는 자세히 부언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구한말 조선에서 활약한 외국인 장차관 중에서 독일인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ollendorff, 1848~1901년)의 사례를 살펴보면, 외국인 장차관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장차관을 임명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묄렌도르프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인상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아니, 좋은 편이다. 얼마 전에 TV에서 방영된 <명성황후>에서도 좋은 인상의 탤런트가 묄렌도르프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조선의 안위에 대해 무관심한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가 비교적 괜찮은 묄렌도르프도 그러했다면, 그 외의 인물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 묄렌도르프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구한말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묄렌도르프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임오군란(1882) 이후 조선의 정치·외교를 장악한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은 조선을 청나라의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제도개편에 착수했다. 이홍장은 이러한 제도개편을 지휘하도록 하기 위해 전 천진주재 독일영사 묄렌도르프와 후선중서사인 마건상을 조선정부에 파견했다.
이 중에서도 묄렌도르프는 조선의 외교를 장악했다. 그가 맡은 직책은 협판교섭통상사무였다. 오늘날로 치면 외교통상부 차관급이다.
청나라가 묄렌도르프를 조선에 파견한 것은 당연히 청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청나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는 청나라의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청나라가 가장 싫어하는 러시아를 조선에 끌어들이는 데에 수훈을 세운 것이다.
1884년에 러시아가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은 당시 러시아 외교로서는 대단한 중대 사건이었다. 극동 지역의 조선을 우방국으로 만듦으로써 남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청나라·일본·영국의 극심한 견제를 뚫고 조선에 근거지를 마련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 사건이 없었으면, 구한말 무대에 러시아가 주역으로 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러시아 수호통상조약 체결의 일등공신이 바로 묄렌도르프였다. 청나라가 자국을 위해 일하라고 파견한 묄렌도르프가 엉뚱하게도 청나라의 라이벌인 러시아를 위해서 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해임되었고 그 후임으로 데니가 조선에 파견되었다. 훗날 묄렌도르프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러시아 황제 차르에게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가 한 일은 청나라에게는 손해를 주는 한편 러시아에게는 이익을 주는 것이었다.
청나라가 파견한 독일인 '조선 공무원', 러시아에서 훈장받은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