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조용학
군대에서 ‘폭력’은 없어질 수 없다. 물리적이든지, 변형되어 행해지는 정신적 고통이든지. 나는 상식적으로 폭력문화 근절엔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의 군대운영 원리로는 불가능하다. 법률적으로 폭력의 빈도수를 줄이겠다는 발상,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말은 문제의식이 부족해 보인다.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군대는 사회주의 사회다”라는 말을 항상 곱씹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기적 욕구’를 인정하면서 발전해 가는 반면, 이를 물리적 방법으로 억누르며 운영되는 사회주의 원리가 군 생활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닮은 군대운영 원리... 이기심은 ‘악덕’이다이기적 욕구는 다양하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싶은 욕구, 자기개발을 하고 싶은 욕구, 열심히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은 욕구, 남들보다 안락한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 등등.
하지만 사회주의의 실패는 이러한 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사회의 발전 동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즉 개인의 이기적 욕구는 악덕이고, 사회에도 해가 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역시 이런 원리를 따른다. 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통제하기 위해, 물리적·정신적 폭력이 동원된다. 혹은 이런 폭력적 수단이 언제든지 사용될 수 있다는 공포감 조성을 무기로 삼기도 한다. 이기적 욕구는 조직운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2년 4개월간의 군 생활(공군 전역) 역시 내가 가진 ‘이기심’ 대부분이 폭력 문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철저히 억눌려졌던 시간이었다. 생산적인 조직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채.
[이기적 바이러스 #1] 군대 가기 싫어요!2003년 5월 26일. 입대일이 다가오자 문뜩 군대 가기가 싫어졌다. 종교적 신념 때문은 아니었다. 통제적인 생활, 외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무엇을 위해 내가 군대에 가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살상기술을 배우는 장에 동원된 점 역시 동의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 모습이 못 마땅했는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달랬지만, 별로 마음 속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내 발걸음은 훈련소로 옮겨졌다. 군 입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아서가 아니다. ‘병역법’이란 국가적 폭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군대에 안 가면 ‘감방’ 가게 될 것 같아 무서웠다. 여기서 나는 첫 번째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또 모종의 ‘예방접종’을 받게 된다. 내 이기적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지 못하도록.
현재 ‘징병제’ 체제에서, 병역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없다. 국가적 폭력을 볼모로 한 타의적 군 입대는 동시에 군대운영에 동원되는 폭력문화를 인정하는 불행한 순간이 된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등 개인의 선택적 자유를 보장하면, 폭력문화를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이기적 바이러스가 ‘악덕’이 아니라, 군대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병역제도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사회적 생산 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 바이러스 #2] 훈련소는 헬스클럽? 자격증 학원?군 입대 후, 국가로부터 받은 예방접종 효과는 놀라웠다. 고달팠던 훈련소 생활 5주는 저항적이던 나를 순종적인 사병으로 길들였다. 또 아무 목적 없고 이유 없는 훈련소 조교 호루라기 소리에 나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새로 배운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나는 훈련소의 절반 정도는 특기학교인 ‘헌병 교육대’에서 보냈다. 헌병교육의 특수성상 매일같이 이유 없는 기합을 받아야 했고 간접적인 폭력, 모욕적인 험담에 시달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조교의 통제에 따라야 했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부정해왔던 ‘폭력의 효용’을 배우게 된다. 군대에서 사람을 다루고 일을 시키려면 물리적인 통제를 해야 된다고. 또 앞으로 자대에 가서 후임 병을 받을 때도 조교가 했던 방법을 써먹어야 하겠다는 변태적인 발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훈련소에서 조교들의 물리적인 통제가 없어도 5주간의 시간이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유익한 시간이 된다면, 조교의 호루라기 소리 없이도 잘 따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훈련소의 근본 목적은 군 생활에 필요한 체력단련과 실무능력 교육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군 훈련소는 과거처럼 ‘외적 군기’를 잡는 곳으로 역할하고 있다. 개인적인 욕구는 온 데 간 데없이 사라지고 비생산적인 구타와 기합, 욕설 등이 난무한다. 또 이것을 훈련병들이 따라 배운다. 훈련소는 '군대 폭력문화의 학습소'였다.
앞으로 훈련소는 자대입대를 앞둔 병사들의 신나는 체력단련소, 유익한 자격증 학원이 되어야 한다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기초적인 군사능력 함양과 함께,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무능력 교육에 있어 자격증을 수여하는 방안을 마련해 보자. 그러면 폭력적인 통제가 불필요해지고, 폭력의 효용 역시 배우지 않게 된다.
이젠 ‘각’을 잡겠다는 이유로 훈련병들을 맨땅에 굴리게 하지 말자. 훈련소에 퍼진 병사들의 이기적 바이러스가 참여를 유도하는 건전한 동력이 될 것이다.
[이기적 바이러스 #3] 군대 가서 돈 벌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