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비구니 승가 대학이 있는 사찰에 어울리게 경내는 너무도 청결하고 모든 곳에서 여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정부흥
모처럼 원거리 등산인지라 약간 무리한 등반 계획을 세웠다. 운문사-천문지골-딱밭재-운문산 정상-아랫재-가지산 정상-쌀바위-학소대-운문사로 연결되는 원점회기 산행이다. 지도에서 측정 해보니 20km가 넘은 거리이다. 우리는 출발한 곳에 차가 있으므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겨울철 10시간 이상의 산행시간을 예상해야 하는 거리이다. 무리다 싶었지만 언제 또 가지산을 오랴 싶어 오전 6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5시에 산행을 마치는 10시간 산행과 1시간의 예비시간으로 산행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출발 시간부터 2시간가량 지체되고 있다.
딱밭재 입구를 지나치다요즈음은 도로공사도 많고 산에는 임도도 많아 지도에 미처 표기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에는 길을 잘못 들기 십상이다. 나의 지도에 좁은 등산로는 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되어있다. 딱밭재로 오른다는 것이 등산로 입구를 지나쳐 아랫재로 올라버리고 말았다.
능선의 안부에 이르자, 10여명의 파르라니 깍은 머리의 어린 예비 비구니 스님들이 대피소로 보이는 움막을 들랑거리며 음식공양이 한창이다. 스님이 되기 위한 과정 중인지 동안거 중이지만 체력단련을 위해 산에 오른 모양이다.
불교에 관한 책들도 많이 읽고 특히 선불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이들과 불교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특별히 누구를 지칭한 것도 아니고 그들을 향해 "이곳이 딱밭재" 이지요? 하고 물으면서 말을 건넨다.
대피소 아저씨로 보이는 사내가 나서며 "딱밭재는 저기 운문산 너머에 있고 이곳은 아랫재 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사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운문산이 개구쟁이 몸짓을 보내온다. 지도에서 현 위치를 확인해 본다. 맥이 빠지나 코스가 단축되어 2시간 늦은 출발을 자연스럽게 조정하였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어린 예비비구니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 코끝이 찡하게 저려온다. 어린 비구니들 특히 나와 얘기를 나눈 예비비구니는 너무 예쁘고 귀여웠으며 청초한 수선화를 연상케 하였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산행코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이 무거워져 그 애들하고 대화를 더 이상 나눌 수 없었노라고 하자 집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랫재를 떠난 지 50여 분 되어 1060고지에 도착하였다. 1060고지에서 가지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매우 훌륭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코스였다. 여기에 따사로운 햇볕이 곁들이니 더 없는 행복감에 집사람과 대화도 잃은 채 창조주의 걸작품 감상에 넋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