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홈페이지의 영문 소개본. 언론 브리핑도 영어로 번역해 싣고 있다.(자료화면)
외국어로 사유하기에 대하여다른 나라의 언어로 사유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자신의 모어 -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어 공기처럼 물처럼 편한 언어 - 를 잠시 접어두고 스무 살이 넘어 배운 언어로 학문적인 언어를 구사하려고 덤비는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깝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지구촌 어느 구석의 작은 나라 - 아프리카도 좋고 유럽의 어느 나라도 좋은 - 에서 온 젊은이가 한국문학이나 역사를 공부해서 한국어로 학술논문을 쓰고 한국어로 학술토론을 하고자 할 때 한국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한국문화와 언어를 익힌 한국의 학자와 견주어 이루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며 몇 배의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뛰어난 업적을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불고 있는 영어 세계화의 바람이 이와 같이 매우 쉬운 비교적 시각조차 결여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울 뿐이다. 문학과 철학, 역사를 담당하는 선생들조차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다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면하는 탓인지, 아니면 찬성 논의를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권력에 미운털이 박히기를 두려워하는 보신의 처세에서 비롯된 것인 지 모르겠다.
한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오롯이 제나라의 언어로 기록되고 전승되지 않는 이상 그 나라 다운 문화적 특질과 정신을 계승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현재 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어강의나 영어 세계화는 우리의 모든 문화적 사유를 영어로 하기를 바라는 잠재의식이 내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앞선다.
신라 이래 한반도 내에서 이루어진 과거의 거의 모든 학술적 기록이 한문이어서 그 소중한 전승들을 지금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체화하는데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잘 안다. 70년대까지도 어느 문중의 묘비에는 한문으로만 쓸 것을 요구했다 하니 한문으로 쓰인 글이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것도 아닐진대 읽지도 못할 글을 써서 자랑하는 것은 헛된 권위의식 밖에 무엇이라 해석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오랜 기간 한문으로 학술활동을 영위해왔으면서도 우리네가 이렇듯 우리의 편한 글과 말을 지켜왔고 한문이나 중국의 현대문장을 모어처럼 구사하지 못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영어의 체득을 강조해 수천년이 지난다 해도 영어가 토착화 과정을 거쳐 한국어의 일부로 접붙여 질뿐 우리네 언어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수많은 한자 개념어를 섞어 사용하듯 말이다.
예를 들어 영어를 몇백 년 쓸 경우 "난 투데이에 북을 리드해야 해"라거나 "코리아의 아이텐티티가 잉글리쉬를 유즈하다보니 크라이시스야"로 바뀔 뿐이다. 이는 한국어에 일가견이 있는 고종석씨의 견해를 빌어 온 것이다. 난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어는 그렇게 지평을 넓히고 혼혈되어 자가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자의식을 담을 수 있는 우리 글을 가꾸고 다듬어 나가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접어두자는 말은 아니다. 하나의 언어로 사유의 깊이를 지속적으로 발전, 확대 심화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문화적 힘을 발휘하는 지는 그렇게 체화하고자 하는 영어만 봐도 알 수 있다.
1611년에 나온 킹제임스버전의 성경은 지금도 읽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글도 대학에서 문학적 교양을 쌓은 이라면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한다. 그네들은 적어도 한 가지의 언어로 400~500년을 지속적으로 사유하고 생각해왔다는 소리다. 그것이야말로 현재 영미권이 엄청난 문화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지금 우리가 영어로 따라잡겠다고? 셰익스피어가 자다가 웃을 일이 아닐까 싶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세종이 희대의 폭군이어서 한글창제 이후 모든 문자 활동에 한글본을 의무적으로 만들라고 강제했더라면 우리의 문자 생활이 그리고 우리의 정신세계가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고등학교 국어 과목에서 세종시대의 글을 배운 이라면 막힘없이 술술 읽고 한글의 어휘가 풍성해졌을 것이라는 상상 말이다.
수천 년 한문으로 학술활동을 하고 제대로 된 한글세대라는 자긍과 자의식을 가졌던 평론가 김현 세대로부터 지금까지를 다 헤아린다해도 30∼40년이 될까 말까 한다. 그런데 다시 고등교육을 한다는 대학에서 영어로 학문활동을 채우자고 한다. 다시 수천 년을 영어로 학술활동 해야 하는 운명인 것인가?
미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학문활동을 하신 선생님들조차 영어는 여전히 불편한 그 무엇이다. 예를 들어 미세한 머리카락을 집어 만지작거려야 하는 작업에 두꺼운 벙어리 장갑을 끼고 있는 답답함이랄까?
지금 이만큼의 내용을 영어로 쓰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 터이요, 문법적인 실수도 여러 번 고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한국어로야 앉은 자리의 소일거리다. 외국에 살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어로 고국과 소통하려는 수많은 네티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어가 그리 만만하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덧붙이는 글 | 이찬 기자는 하와이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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