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화 시대 거스르는 영어교육 정책 유감

등록 2008.01.26 16:41수정 2008.01.2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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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영어 교육 정책이 과연 지구촌화(globalization)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책입니까? 혹자는 과거 일제의 강압식 내선일체 교육보다 더한 미국을 향한 자발적 내선일체 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과거 조선조 시대 적지 않은 선비들이 강력한 중화관, 중국 사대주의관을 갖고 있었다지만 중국어에 이처럼 목매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이중언어 교육을 이미 저학년부터 학교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이민계 소수민족집단이 광대한 영어에 휩쓸려 자신의 언어와 문화, 역사를 잊지 말라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몇몇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영어 교육은 놀라운 방향으로 진행되어 한국 학생들에게 한국사조차 영어로 실시하고 있는 기이한 방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강좌 담당 교수들은 죽도 밥도 아닌 교육을 하고 있지만, 학교 경쟁력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할 뿐이라고 말하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과연 교수들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만이겠습니까? 교육은 그저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교수의 철학과 인격, 교수와 학생의 지식만이 아니라 감정도 교통되는 과정입니다. 대학에서도 이러한 현실에서 하물며 차기 정부 출범을 위한 인수위원회에서 초, 중등학교에서 영어로만 진행되는 영어 교육, 즉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보며 교육 현장의 한 사람으로서 몇 마디 생각을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지구촌시대에 맞는 외국어 교육에 대한 저의 인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구촌시대에는 자국어와 외국어가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현재의 정보화체계가 이러한 상상력을 현실화시켜 나갈 것이고, 사람들의 필요가 정보화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것입니다. ‘나는 나에게 있어서 편리한 언어를 쓰고, 상대방 역시 편리한 언어를 써도’ 최첨단 정보, 통신 체계가 의사소통을 가능하도록 하는 의사소통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문명사적 진보입니다.

지구촌화는 일원화, 획일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한국의 영어 중심적 외국어 교육은 영어 획일화 교육에 다름 아닙니다. 과거 1970, 80년대 고등학교 교육에서의 제2외국어 교육은 현재 거의 종적을 감추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촌화 시대에는 중국이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의 다양한 민족들의 언어, 아프리카 소수민족 언어, 중남미와 유럽의 다양한 언어 등과도 접하며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21세기형 외국어 교육이어야 마땅합니다.


현재 한국의 무역이나 경제 사정만 보아도 과거의 미국이나 일본 일변도의 무역을 벗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21세기에는 청년들이 세계 어느 나라라도 뻗어나가 상대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무역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바로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이 마련해 줘야 합니다.

둘째, 10년째 추세가 되고 있는 원정출산, 조기유학이 과연 외국어로서 영어만을 잘하기 위함인가요? 미국 시민권 획득이 한국 사회에서 권력이 되고, 특히 남아의 경우에는 시민권 획득은 합법적으로 병역 기피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육을 통한 계급의 재생산의 일환으로 조기유학이 사용되고 있음은 초등학생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미국 학력이 한국 학력보다 우월하게 여겨지는 풍조는 2007년도 신정아 전 교수 사건이나 그간의 사회 지명도가 높은 식자들의 사건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또한 우리 학문의 미국 종속성,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국 중심성을 여전히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풍조에서 초,중,고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완전히 영어로 진행하고, 대학교육을 영어로 진행한다고 하여 조기유학 풍조나 미국 학력 우선시 분위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망상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현재의 분위기가 그대로 간다면, 국내 영어 습득자와 미국 영어 습득자를 더욱 차별시하는 문화적 풍조가 확산될 뿐일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외국어학교가 과연 외국어 교육을 얼마나 충실히 하고 있으며 다양한 외국어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요? 한국의 외국어 교육이 나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한국어와 언어 교육 자체에 대한 고찰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세계 6,000여개 언어 중 문자를 가지고 있는 언어는 70여개밖에 되지 않으며, 자민족중심주의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세계 언어학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 한국어는 세계 어떤 말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는 과학적 문자 체계를 가진 몇 안되는 말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한국어는 다른 언어와도 교류가 잘 될 수 있는 음성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려서는 언어 교육을 교과서적인 문법 중심적 교육이 아니라 생활 속의 경험과 결합된 생활언어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영어에 익숙하게 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책이 아니라 인터넷오락임을 포착하면 다양한 언어 교육과 한국어 교육을 닫힌 교실, 닫힌 교과서가 아니라 한국과 남북,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교육에 언어교육을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비영어권 국민으로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우선 자국어에 충실해야 합니다. 자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영어적 표현도 엉망이 되고, 영어를 자국어로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다른 언어를 배울 때에는 자신의 언어 체계로 자유롭게 사고를 하고 자유자래로 표현할 수 있어야 사고에 이중 언어 체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어 교육이 영어에 익숙하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기형적인 한국인을 양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까?

셋째, 지구촌화시대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1외국어 교육과 동시에 제2외국어 교육도 실시되어야 합니다. 제2외국어 교육은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외국인 풀을 활용하여 비영어권 외국인들을 한국 현지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앞으로 교류는 더욱 확대되어 우리의 후손들은 세계 200여국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세계무대에서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모색해 주어야 합니다.

마쓰우라 고이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지적대로 ‘언어란 도구 이상의 것으로,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며, 사회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현실관계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척도’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로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학교의 공교육만으로 사람의 사고를 형성하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위정자가 공교육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방법에 불과합니다. 영어 교육 이전에 한국 사회에 깔려 있는 문제 자체를 먼저 바꾸기 위한 노력이 없을 때 국세를 낭비하면서도 사람들을 교육 허무주의에 빠뜨려 영어권으로의 유학이나 이민밖에는 길이 없다고 체념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 출범할 정부는 우리 국민에게 제2의 내선일체화 교육을 강요하지 말고, 지구화시대에 걸맞은 명실상부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체계와 내용을 만들어 나가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김귀옥은 한성대 교양학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분단과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꿈꾸며 이상과 현실을 강의와 연구를 통해 연결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귀옥은 한성대 교양학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분단과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꿈꾸며 이상과 현실을 강의와 연구를 통해 연결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영어교육 #지구촌화시대 #외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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