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민주노총과의 29일 예정이였던 간담회가 무산된 것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유성호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시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는 연일 급진적인 개혁과제와 처방을 쏟아낸 데 반해, 사회적 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해법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외면으로 일관했습니다.
인수위원회에는 노동관련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았고, 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신정부의 입장이 명료하게 제시되지 않아서 아예 노동정책이 없는 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었고, 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에 많은 우려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아직 취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정책의 윤곽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오직 규제완화와 투자활성화,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만이 강조되면서, 노동정책은 독자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경제정책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판단입니다. 새 정부가 사회갈등의 조정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사회정책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친기업적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은 특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노동보다는 기업에 편향되어 있고 경제정책을 위해 노동사회정책이 희생되거나 종속될 것이라는 인식은 노사간의 권력관계나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노사관계의 중요한 규제자이자 관리자라는 점에서, 어느 일방의 요구와 이익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노사로 하여금 대화와 적절한 타협을 유도하기보다는 공권력을 활용한 힘겨루기와 극한투쟁을 유인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노사관계에서 정부가 노사 어느 일방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중재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환경 개선만을 강조하고 사회갈등에 대한 공정한 조정이나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사회정책을 외면한다면, 노사간 권력관계는 왜곡되고 제도적 창구를 통한 이익대변에 한계를 느낀 노동자들의 극한투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노사관계에서 힘의 균형, 공정하고 중립적인 규제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노사협력은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정부의 노동사회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노사갈등이 격화되는 현실적인 조건을 꼼꼼하게 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일자리 창출만 강조... 노동정책 아예 없는 건 아닌지이 당선인은 투쟁일변도의 노동운동이 합리적·생산적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업의 동반자 의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서 노사협력과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노동운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선인께선 준법정신이야말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드는 근본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간 신뢰를 되찾는 것입니다. 노사간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고, 심지어 게임의 규칙인 법을 신뢰하기보다 극한적 투쟁을 선호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사간 신뢰의 회복은 단기적으로 가능한 것이라기보다 오랜 경험의 축적을 필요로 하며, 여기에는 노사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노사관계가 심각한 사업장은 사용자들의 노사관계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